[이코노믹리뷰=박자연 기자] ‘비건(vegan)’이 먹는 것을 넘어 입고 바르는 분야까지 점점 다채로워지고 있다. 일부 메뉴로 한정됐던 비건 식품은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주목받고 비건 아이템은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모든 제품 영역으로 확장 중이다. 특히 동물 실험을 하지 않은 화장품이나 동물성 원료를 쓰지 않고 친환경 소재를 사용한 패션 브랜드를 찾는 소비자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지속 가능한 식품...‘대체육’ 힘주는 식품업계

국내 채식 인구가 200만 명에 육박하면서 식품업계는 잠재 수요가 적지 않다고 판단, 본격 시장 공략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비건 식품 카테고리 중 주목 받는 품목은 식물성 고기 ‘대체육’ 시장이다. 미국 리서치업체 CFRA에 따르면 세계 대체육 시장은 2018년 약 22조 원에서 2030년 116조 원 규모로 427% 성장할 전망이다.

국내 시장은 초기 단계이지만 지난해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이 공개한 ‘대체식품 현황과 과제’ 자료를 보면 지난 2016년 4,760만 달러(542억 원)에 불과했던 국내 식물단백질기반 대체식품 시장 규모는 2017년부터 연평균 15.7% 성장해 2026년에는 2억 1,600만 달러(2,463억 원) 규모로 커질 전망이다. 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한 끼를 먹더라도 건강하게 먹자는 식문화가 소비심리에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식품업계는 국내 채식 인구를 잡기 위해 해외 유명 대체육 제품을 수입하거나 자체적인 개발에 나서고 있다. 국내에서는 대기업 중 동원F&B가 가장 먼저 시장에 진출했다. 동원F&B는 지난 2019년 3월부터 미국 대체육 생산업체인 ‘비욘드미트’와 독점 공급 계약을 맺고 ‘비욘드 버거’, ‘비욘드 치킨스트립’ 등 대체육으로 만든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현재까지 이마트를 비롯한 할인마트와 백화점, 온라인몰 등을 통해 약 15만개 이상 판매됐고, 지난해 4월 ‘비욘드 비프’와 ‘비욘드 소시지’를 추가로 출시해 라인업을 강화했다.

전사적으로 대체육 사업에 가장 공을 들이는 곳은 당연 롯데다. 롯데그룹은 롯데중앙연구소를 중심으로 식물성 대체육을 개발하며 롯데그룹 계열사들에 제품을 공급·유통하고 있다. 롯데푸드는 2019년 통밀·콩 추출 단백질을 사용한 대체육 브랜드 ‘제로미트’를 론칭해 비건 시장에 진입했다. 이는 국내 식품업계 최초로 식물성 대체육을 대량생산한 것이다. 옥수수와 대두 등 식물성 단백질을 활용한 이 상품은 1년 만에 판매량 6만 개를 넘어섰다.

롯데GRS의 롯데리아도 국내 프랜차이즈 업계 최초로 식물성 단백질 버거 ‘미라클 버거’와 대체육 버거 ‘스위트 어스 어썸 버거’를 출시한바 있다. 두 버거 모두 소스와 빵까지 달걀 대신 대두를 사용하고 우유 성분이 아닌 식물성 재료를 사용해 동물성 재료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농심의 비건 식품 브랜드 '베지가든'. 출처=농심
농심의 비건 식품 브랜드 '베지가든'. 출처=농심

농심도 올해 비건식품 브랜드 ‘베지가든’ 사업을 본격화한다고 밝히며 비건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베지가든은 농심 연구소와 농심그룹 계열사인 태경농산이 독자적으로 개발해낸 식물성 대체육 제조기술을 간편식품에 접목한 브랜드다. 베지가든은 식물성 대체육은 물론 조리냉동식품과 즉석 편의식, 소스, 양념, 식물성 치즈 등으로 구성됐다. 농심은 독자적으로 개발한 ‘고수분 대체육 제조기술(High Moisture Meat Analogue)’ 공법으로 실제 고기와 유사한 맛과 식감, 육즙까지 구현하겠다는 방침이다.

“착한 제품이어야 산다”...뉴노멀 된 ‘비건’ 패션·뷰티

 과거 식품분야에 한정됐던 비건 사업은 패션과 뷰티 분야로도 확대 중이다. 우선 비건 트렌드의 중심에 서있는 뷰티업계에서는 화장품의 성분뿐만 아니라 친환경으로 제작하는 이른바 ‘클린 뷰티’ 열풍이 불고 있다. 클린뷰티 제품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원료는 보다 안전한 성분을 사용해야 하며 동물실험을 배제, 친환경 포장재를 갖춰야 한다.

LF 아떼 어센틱 립 밤. 출처=LF
LF 아떼 어센틱 립 밤. 출처=LF

대기업 뷰티 브랜드 최초로 비건 화장품 브랜드를 선보인 것은 LF다. LF는 2019년 ‘아떼’를 론칭하며 일찌감치 시장 공략에 나섰다. 아떼는 동물성 원료 사용은 물론 화장품 제조 과정에서도 동물 실험을 진행하지 않는 비건 지향 화장품 브랜드다. 특히 국내 최초의 비건 인증 립스틱인 아떼의 ‘어센틱 립밤’은 출시 이후 수차례 품절될 만큼 큰 인기를 얻었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6월 비건 화장품 브랜드 ‘이너프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이너프 프로젝트는 남들 기준에 맞추지 않고 나에게 충분하면 만족하는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제안하는 실용주의 뷰티 브랜드다. 모든 제품은 채식주의자들을 배려한 비건 프렌들리 제품으로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 않았다. 가장 최근에는 클린뷰티 브랜드 ‘어웨어’를 론칭하며 친환경 뷰티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어웨어는 쿠팡 단독판매를 시작으로 소비자 반응을 살핀 후 온오프라인 판매 채널로 확장할 계획이다.

패션업계는 윤리적 소비와 친환경 소재 제품을 연계한 제품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비건 패션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동물도 인간처럼 고통과 감정을 느낄 줄 알며 삶을 영위할 권리가 있다고 본다. 따라서 의복을 만드는 과정에서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살아있는 동물의 털을 뽑거나 산 채로 가죽을 벗겨내는 등 학대를 가하는 것을 엄격히 지양한다. 이에 기업들도 가죽·모피·울 등 동물성 소재를 사용하지 않는 ‘비건 패션’과 재활용품을 활용한 ‘업사이클링 패션’ 등을 선보이며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는 추세다.

빈폴 ‘B-Cycle’ 라인. 출처=삼성물산 패션부문
빈폴 ‘B-Cycle’ 라인. 출처=삼성물산 패션부문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브랜드 빈폴은 ‘비 싸이클’을 중심으로 친환경을 상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재생 원료를 사용한 패딩 점퍼 등과 재생 가죽을 사용한 어반 스니커즈 등이 대표적이다. 신세계인터내셔날 역시 지난해 이탈리아 비건 패딩 브랜드 ‘세이브더덕’의 국내 판권을 확보해 온·오프라인에서 판매 중이다. 코오롱FnC는 지난해 9월 코오롱몰 내 지속가능성을 지향하는 30여 개 브랜드를 소개하는 ‘위두(weDO)’ 카테고리를 신설했다.

이처럼 소비자들은 제품의 성분과 소재의 친환경성은 물론 제작 과정에서 동물 실험을 하는지 등의 사회적 영향까지 고려해 소비하는 추세다. 단지 옷이 예쁘고 유명한 브랜드의 화장품이라고 해서 구매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최근 비건 화장품으로 모두 바꾼 한 모 씨(29·여)는 “SNS에서 유연히 화장품 관련 동물실험 영상을 보고 그때부터 비건 원료 공정을 거친 화장품을 쓰고 있다”면서 “원래는 성분만 따진 비건 라인 스킨케어 제품을 썼는데, 최근에는 용기나 패키징에도 친환경을 적용한 제품을 구매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