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어느 시인의 산문시를 읽다가 가외의 소득을 얻었습니다.

평소 안 쓰거나 잊고 있었던 단어나 표현들의 세례를 받은 거죠.

산 그림자, 산굽이, 보따리를 말하는 보퉁이, 쇠약한 빛, 뒤안 등.

또 옛날 옛적에 신발에 들어가 살던 귀뚜라미 등.

요즘 아는 어휘도 잘 안 쓰면 생각이 안 나서 거기 거기 몇 번 하다가 넘어가는 일이

잦은 데, 시인의 이런 표현들을 접하다보니 친구가 보내준 사진을 보면서 머뭇거리던 표현이 금방 생각이 났습니다.

친구가 남쪽에 갔다가 오며 문자를 보냈는데,

‘공기도 좋고, 날씨도 좋은데 사람이 없다’고 시골 역사를 찍어 보냈는데,

그 모습의 느낌이 생각이 안나 주저주저했는데 바로 휑뎅그렁한 풍경이더라구요.

또 같은 산문시에서 만난 어떤 구절이 나를 시골로 인도했습니다.

‘산굽이 돌아 마을로 가는 길,

어느 시냇가 징검다리에 잠시 멈춰 서서

물 밑바닥에 내 그림자를 담갔다 꺼내보고 싶었다‘

마침 그 주에 저 남쪽 구례를 잠시 다녀왔습니다.

틈을 내서 섬진강을 가로지르는 징검다리를 만나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찾지 못했고,

대신 고택을 찾아 동백꽃, 산수유, 매화 등이 피어난 신선한 모습들이

오래된 고택과 대비되는 모습들을 즐겼습니다.

지난 연휴동안 친구들과 주변 산을 올랐는데, 거기서도 또 많이 배웠습니다.

남쪽에는 이미 피어난 매화, 산수유등이 이제 막 꽃 봉우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이번 주는 피어나지 싶었습니다. 거기도 기온이 말해주는 시간이 필요한 게지요.

입구의 곧 꽃이 필 나무들과 다르게

산속에는 그저 조용히 봄 준비를 하는 수많은 나무들의 아우성이 들려왔습니다.

나무들의 성장기에 봄 준비라면 어떤 것이 있을지 생각해보셨는지요?

그 또한 사람들의 성장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배웠습니다.

나무의 성장을 준비하는 시기를 유형기라 하는데,

어떤 고난이 닥쳐도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을 비축하는 시기로,

뿌리에 온힘을 쏟는 어린 시절을 말합니다.

따듯한 햇빛이 아무리 유혹해도,

주변 나무들이 보란 듯이 쑥쑥 자라나도,

결코 하늘을 향해 몸집을 키우지 않는거죠.

대신 땅속 어딘가에 있을 물길을 찾아 더 깊이 뿌리를 내리는 시기로 삼습니다.

물론 이시기를 잘 넘기고 또 다른 계절이 오면

하늘을 향해 성장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가겠지요.

봄날 초입의 나무들은 이들 삶의 사계까지를 깊이 생각하게 했습니다.

내 인생 사계도 그처럼 계절에 맞게 잘 넘어가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