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2021년 2월의 마지막 날 게임이 끝나자,한국 여자 배구리그의 1위 팀이 바뀌었다. 27게임만이자 6라운드 두번째 게임을 치르고 난 결과다.지난해 10월 18일 개막전이 치뤄진 지 넉 달 하고도 열흘 만에 흥국생명이 독주해온 리그 1위 자리를 GS칼텍스 팀이 빼앗아 갔다.어우흥이라고‘어짜피 우승은 흥국생명’이라는 말로 리그를 시작했는데, 12월에 찾아온 어두운 그림자로 인해 리그의 막판 전개가 초반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몸값 때문에 국내리그 복귀가 요원할 것만 같아 보였는데,몸값을 형편없이 낮추면서 돌아 올 수 있었던 김연경 선수가 그 한 가운데에 있다.일본 리그,중국 리그 그리고 터키 리그를 돌면서 도장 깨기로 각국의 배구판을 평정해온 그녀였다.올해 여름으로 연기된 도쿄올림픽을 위해 손실과 희생을 감수했고,김연경이 포함된 흥국생명팀은 리그의 다른 팀들과는 너무나도 엄청난 전력 차이 때문에 질 수 없는 팀으로 생각됐다.

당시 남자 배구 리그 준비에 한창이었던 후배와의 대화가 생각난다. “그 정도 전력이면 여자팀에서는 상대할 만한 팀은 없고,차라리 남자 배구 리그로 돌려도 해볼 만 하지 않겠냐?” 농담이었지만,그 정도로 강한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아니나 다를까 리그가 개시되자 흥국생명이 가는 길에 패배는 없어 보였다.그러다가는 패하는 게임이 나오긴커녕 한 세트라도 다른 팀이 뺏을 수 있을까 하는 정도였다.아무리 프로라지만 그렇게 월등한 전력을 지닌 팀이 모든 승점을 가져감으로써 리그 자체를 싱겁게 만들어 버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마저 많았다.

리그 도중 외국인 선수 문제도 있었기에,걱정하던 것처럼 전 게임 승리는 아니었다.하지만한 라운드에 5게임씩 치뤄지는 가운데, 4라운드를 마칠 때만 해도 2위 팀에 비해 승점이 12점을 앞서는 독보적인 1위 자리를 유지했다.그러던 중 팀 내 주축 선수이자 국가 대표급 간판 선수 2명이 학교폭력 문제로 결장을 하게 되면서 팀이 크게 흔들렸다.중간에 급하게 데려온 용병의 실력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덕분에 최근 치뤄진 7경기에서 겨우 1승만을 나머지는 6게임을 모두 패하며 가파른 내리막 길을 내달렸다.

리그시작 때만 해도 불가능이었지만,지금은 1위로 굳어져

국내 리그에서는 대적할 팀이 없고,시합에서 지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은 온데간데 없고 이젠 리그 선두자리마저 내줘 버렸다.너무나도 어려워 보이던 팀 패배였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이었는데,지금은 그 어떤 팀과 붙어도 승리를 장담하기 힘든 종이 호랑이로 변했다.두 명이 빠졌다고 이렇게 달라질까 싶고,세계 최강 김연경의 건재하지 않는가?배구는 리시브부터 시작해서 세터가 토스를 해줘야 공격에 득점까지 이어질 수 있는 스포츠다.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리시브고 그 다음이 토스다.아무리 김연경이라 해도 나머지 5명과의 유기적인 결합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2위 팀의 입장에서 본다면 올해 리그는 하나마나로 시작했다.그저 한 팀이 압도적인 승점 차로 우승을 하는 데 들러리만 서다가 끝나는 것 아닌가 하기도 했다.처음부터 우승은 정해졌고 2위 싸움이 어떻게 벌어지는 가에 더 관심이 쏠렸다.하지만 리그는 길었다.리그 시작 전 코보경기에서 최선을 다해서 어찌어찌 이겨는 봤지만,그 뒤로 승리는 요원해 보였다.하지만 전투에서는 질 수 있더라도 전쟁에서의 승리가 중요한 법,2위를 달리던 GS칼텍스 팀은 분열이 시작되는 1위 팀을 보면서 악착 같이 덤벼들었고,승점을 챙겨가며 뒤쫓던 가운데 리그 시작 120일만에 승점은 동률이지만 간발의 세트 득실 차로 1위에 올랐다.

세 경기만 남겨 놓은 지금,한 경기를 더 치른 3위팀과 승점 차이가 무려 13점이니 선두로 리그를 마치는 것이 더 확실해 보인다.처음에는 불가능처럼 보이던 것이 실낱 같은 희망으로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더 커진 가능성으로 다가오다가 지금은 거의 굳어가는 대세가 된 것이다.스포츠가 아무리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하지만,이번 리그는 전체가 그냥 하나의 게임이라는 느낌이다.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는 말을 확인하게끔 한다.

닮고 싶은 미국인 중 한 사람인 지그지글러가최근 한 말이 있다. ‘All things are difficult before they are easy.’ 쉬워지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어렵다는 말이다.그 말을 접하고 보니 에베레스트의 정상 등극사가 떠오른다.겨우 836미터의 북한산도 매번 오를 때마다 헉헉대면서도 입으로는 히말라야에 가고 싶다고 함부로 남발해왔다.무려 8848미터에 이르는 에베레스트는 감히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1953년 에드먼드 힐러리가 최초로 그 산 정상에 올랐다.8천미터 이상급의 고산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 산이었기에 이런 산은 없었다는 의미로 붙여진 것이 Ever Est라고 불리는 산이다.힐러리가 오를 때에만 해도 베이스 캠프는 3천미터 이하에 설치하는 것이 정설이었고,이후로 한동안 그 누구도 그 위치에 베이스 캠프를 설치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거나 하지 않았다.3천미터급의 베이스 캠프를 출발해서 무려 5천여 미터의 높이를 공격해 나간다.생각만 해도 아찔하다.몇 날 며칠 동안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을 극복해 가면서 정상을 공격해 나가는 것은 감히 상상도 되지 않는다.중간에 목숨을 잃은 사람도 부지기수이고 그런 도전을 다큐멘터리로 기록하기도 한다.

그런데 어느 날 한 무명 산악인이 이런 기본적인 정설을 깨버리고 무려 6천미터급 높이에 베이스캠프를 차려버렸다. 3천미터급 베이스캠프에서 출발하여 8천미터급으로 오르는 데에는 걸리는 시간과 그 시간 동안 일어나는 예측 불가한 상황들 때문에 아무나 정상 등극을 못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베이스캠프가 6천미터급에서 차려지고,정상과는 불과 2천미터 내외의 높이에서 정상을 공격하는 것은 그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쉬운 일로 만들어 버렸다.그렇게 6천미터급에 베이스캠프를 치는 것이 대중화 되면서 지금은 거의 웬만한 사람들도 에베레스트 정상에 등극하는 상황이 되었다.때문에 사람들이 몰리는 시즌에는 에베레스트 정상 부근에는 체증을 유발하는 병목현상까지 발생된다고 한다.

그 무명 산악인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나는 그가 원망스럽다.에베레스트는 좀 더 신성한 측면을 가지고 있어도 좋을 법 한데, 그가 정상 등극을 쉽게 해버린 통에 그 전까지만 해도 웬만한 사람들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지금은 한 해에도 수 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만만하게 오르는 상황을 만들어 버렸다.

과거에도 미래에도 쉬워질 수 없는 건,커뮤니케이션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그 모든 일들이 처음에는 불가능에 가까운 어려운 일들이었다.누군가가 우연히 또는 직을 걸고 과감히 도전하여 거둔 성공의 결과들이 살아남아서 지금의 조직 운영 방식이 되고 있다.사회 초년병 시절 대체연료와 관련해서 일을 했을 때만해도 수소차,전기차는 아이디어로는 가능하지만 절대 현실적으로는 실현이 불가능한 것일 뿐이었다.당시 궁극적인 대체연료는 지구를 뒤덮고 있는 내연기관의 생명력을 좀 더 연장시켜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어려움을 넘어 기술적으로 가능하기는 하겠지만,누가 감히 그런 미친 상상을 할 수 있을까 하던 것들이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대부분이다.이런 것을 생산하는 가장 저렴한 생산수단이 사람의 손이었던 것이 불과 얼마전이다.지금은 사람의 손이 가장 비싼 생산수단이 되었다.어떻게 하면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 뭔가를 계속 생산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지속 성장 기업의 과제가 되고 있다.

사실 기업 현장에서 어렵고 힘든 일들은 너무 많다.좋은 제품 잘 만들고 잘 팔면 되는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사실 그렇게 가기 위해 버둥거리다가 사라져 버리는 기업들이 부지기수다.잘 되는 듯 보이지만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기업들도 많다.그리고 한 두 번은 잘 돌아 갔지만 그 과거에 너무 얽매어 있다가 좌절에 이르기도 한다.처음에 성공하기까지 수없이 실패 만을 거듭 하다가도 어떤 성공의 때가 되면 그 일이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것이 분명한 이치이지만,사실은 기업이 더 큰 실패에 이르게 되는 것은 어려운 것을 쉽게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쉽게 하고 난 뒤가 더 문제다.

물질적이고 하드웨어적인 것에서의 거둔 성공이 사실 눈에 보이지 않는 커뮤니케이션에서 발생하는 문제들로 인해 좌초하게 된다.그래서 세상의 모든 것들이 어렵다가 쉬운 것이 되는 것이 당연하지만,내가 생각하기에 유일한 한 가지는 절대 어려움의 영역에 남는 것이 있으니 바로 커뮤니케이션이다.그래서 수천년 전부터도 인간들은 커뮤니케이션을 그렇게나 강조해왔다.

경험했던 기업 생활에서 가장 큰 어려움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어설픈 초기 아이디어가 제대로 살아 남는 것’이 아닐까 싶다.나도 몇 번 성공해보지 못한 것 같다.처해 있는 상황은 늘 있지만,몸 담고 있는 조직원들은 늘 생각이 달랐던 것 같다.그래서 조직이 제대로 가야할 길을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제안해 봤지만 인정 받지 못했던 때가 너무나 많았다.서로가 따지는 이해득실이 달랐다.커뮤니케이션이 어려운 이유였다.

흥국생명이라는 팀이 내리막길을 걷게 된 배경에도 커뮤니케이션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팀을 위해 개인의 이해득실을 조금은 내려 놓고 배려하고 헌신하겠다는 팀 구성원들의 마음이 같았다면 오늘 날과 같은 상황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작년 가을 팀이 처음 구성되었을 때만해도 패할래야 패할 수가 없는 팀이었다.하지만 모든 것을 다 가진 그 팀이 한 가지가 부족한 것이 있었으니,약간의 개인적인 희생은 하더라도 팀을 위하겠다는 커뮤니케이션이었다.때문에 리그가 진행되면서 엇박자가 나기 시작했고,가장 성공한 최정상의 위치에서 추락하고 있는 것이다.리그를 평정하기 위해 모든 것이 갖춰졌고,모든 것을 가지고 이루었다고 생각하던 그때가 무너지는 지점이었다.사람을 둘러싼 모든 것은 쉬워지기 전까지 어려운 것은 분명하다.하지만 앞으로도 절대로 쉬워지지 않을 것이 있으니 그건 커뮤니케이션이 아닐까 싶다.지그지글러에게 얘기해 주고 싶다. ‘절대로 쉬워지지 않는 것도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