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센징’은 일본인들이 한국인을 얕잡아 부를 때 쓰던 말이다. 단순히 조선인이라는 의미지만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한국인에 대한 멸시의 단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반대로 ‘쪽발이’라는 말로 일본인을 비하한다. 일본사람들이 신는 나막신의 일종인 ‘게다’를 일컫는 말인데 점차 일본사람을 경멸하는 말로 발전했다.

미국인을 비하하는 말은 ‘양키’다. 본디 뉴잉글랜드 원주민의 이름이다. 독립전쟁 때 영국인이 미국인을, 남북전쟁 때에는 남군이 북군을 조롱해 쓰던 말에서 유래됐다. 상대방을 존중한다면 이런 말은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 게 옳다.

우리가 별 생각 없이 쓰는 말 중에 그런 말들이 의외로 많다. 대표적인 게 ‘더치(Dutch)’와 ‘더치 페이(Dutch pay)’다. 한때 네덜란드 정부는 더치 대신 네덜란드라는 단어를 사용해 줄 것을 종용했을 정도다.

왜 그랬을까. ‘각자 내기’를 뜻하는 더치 페이의 유래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네덜란드와 영국은 오랜 기간 앙숙관계였다. 4차례에 달하는 큰 전쟁을 치뤘다. 대부분 해상권과 식민지를 둘러싼 전쟁이었다. 1600년대는 네덜란드가 해상을 지배했으나 1700년대 들어 영국이 신흥 해상강국으로 떠오르며 두 나라 간에는 100여년에 걸쳐 패권경쟁을 펼쳤다. 끝내 영국이 네덜란드의 항복을 받아내긴 하지만 그 이전까진 영국 입장에서 네덜란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었다. 당연히 네덜란드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 없었다.

그래서 영국인들은 네덜란드를 겨냥해 더치라는 단어에 경멸의 뜻을 넣어 유포시키기 시작했다. 더치 페이란 말도 이때 생겨난 것이다.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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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치 페이의 어원을 찾아보면 ‘더치 트리트(Dutch treat)’로 나온다. 트리트는 ‘한턱내기’ 또는 ‘대접’을 뜻한다. 남을 대접하는 게 네덜란드의 오래된 관습이다.

하지만 영국인들은 이 의미를 아예 바꿔버렸다. 트리트 대신 반대의 뜻을 지닌 ‘페이(pay)’로 바꿔 식사를 한 뒤 자기가 먹은 음식비용을 각자 부담한다는 뜻으로 쓰이게 했다. 이기적이고 쩨쩨한 네덜란드인이라고 비하하기 위한 용어였다.

더치가 들어간 영어 단어에 부정적인 말들이 유독 많은 것도 이와 무관치않다. 더치 액트(Dutch act)는 ‘자살행위’, 더치 엉클(Dutch uncle)은 ‘사정없이 비판하는 사람’, 더치 커리지(Dutch courage)는 ‘술김에 부리는 허세’를 의미한다. 또 더치 콘서트(Dutch concert)는 ‘각자 다른 노래를 동시에 부르는 소음’, 더치 리브(Dutch leave)는 ‘치사한 이별’, 더치 엉클(Dutch Uncle)은 ‘심한 잔소리꾼’을 뜻한다.

아임 어 더치맨(I’m a Dutchman)의 의미는 상상을 초월한다. ‘나는 네덜란드인이다’라는 뜻이 아니라 ‘성을 간다’거나 ‘내 손에 장을 지진다’라는 뜻이다. 모두 네덜란드를 조롱하는 영어식 표현으로 영국과 네덜란드가 격렬하게 다퉜을 때 생겨난 말들의 잔재다.

더치라는 단어는 또 ‘독일의(도이치·Deutsch)’라는 의미도 있다. 이는 이 단어가 원래 독일과 네덜란드를 포함한 게르만 일반을 가리켰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도이치 중에서 좀 더 열등한 저급 도이치가 더치라는 이미지도 풍겼다. 네덜란드가 더치라는 말을 싫어했던 이유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주식회사, 증권시장, 중앙은행이 네덜란드에서 가장 먼저 생겨났고 과열투기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튤립 파동’도 네덜란드에서 벌어졌다. 잉글랜드은행(영란은행)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행을 모방한 것이다.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한 이후 암스테르담이 유럽 최대의 주식거래 중심지로 부상하고 유럽 최대 증권거래소 운영업체인 유로넥스트가 암스테르담에 있는 것은 결코 우연히 아니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과 무관하게 네덜란드를 비하하는 의미를 담은 더치 페이는 우리에게 너무도 일반화된 단어가 됐다. ‘김영란 법’ 도입과 경기침체 여파는 이런 문화를 더욱 확산시키고 있다. 젊은 층 사이에서는 밥값, 술값은 물론 데이트 비용까지 각자 부담하는 분위기다. 더치 페이 앱까지 만들어졌을 정도다.

공정한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더치 페이 문화가 확산되는 게 나쁠 건 없지만 네덜란드를 비하하는 뜻이 담긴 이 단어는 가능한 다른 말로 바꿔 쓰는 게 좋을 듯싶다.  <편집국총괄 부사장 이용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