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USB에 대한 상상력

키에누 리브스 주연의 영화 ‘코드명J’(1995)는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영상화한 작품이다. 스마트폰도 고안되지 않았던 시대의 상상력이라고 하기에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다. 영화 발표 당시, 한국은 무선호출기에서 휴대폰으로 옮기는 시기였다.

영화 속 시간은 바로 올해 2021년이다. 대기업이 세계를 지배하고, 치료법도 없는 질병, 신종 신경쇠약증 NAS가 인류를 위협한다. 로텍스를 비롯, 대기업에 반발하는 지하 저항 단체가 생겨나 무장 투쟁을 전개하고 대기업의 컴퓨터에 침입하려 한다.

저항 단체 공격을 막기 위해 대기업은 최대의 범죄 조직 야쿠자를 고용하는 한편, 최신 정보와 극비 자료를 탈취당하지 않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한다. 정보를 자신의 뇌에 이식해서 운반하는 정보 밀사가 등장한 것이다. 뇌내 USB를 심는 것이다.

뇌내 USB를 이식한 키에누 리브스는 비밀정보를 입력한 후 의뢰인에게 전달하는 스페셜리스트이다. 그는 이 프로그램을 장치하기 위해 어린 시절 기억을 송두리째 지웠다. 그러나 키에누 리브스는 뇌내 USB를 제거하고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으려 한다.

셔터스톡
셔터스톡

2021년 오늘. 26년 전 영화적 상상력이 실현되고 있다. 플로피 디스크를 쓰던 당시, ‘코드명J’의 제작자들은 사람의 뇌를 정보전달 수단으로 활용할 생각했다. 기억은 정보이고, 뇌는 정보저장 창고라고 생각한 것이다. 컴퓨터의 드라이브로 여긴 것이다.

그래서 사람의 뇌를 비우고 그 안에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를 채우는 상상을 한 것이다. 사람의 뇌 속에 저장된 정보는 뇌를 열어보지 않고서는 도무지 내용을 알 수 없다. ‘코드명J’는 인간을 정보전달을 위한 미디엄으로 여기는 발상의 전환을 했다.

 

스마트폰으로 이관되는 개인 정보

그러나 ‘코드명J’의 상상력은 현실에서는 반대로 실현되고 있다. 뇌내 USB 대신,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으로 개인 정보가 옮겨지고 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인간의 기억이 정보화되어 내외 USB로 이관되는 상상력은 실현된 것이다.

스마트폰은 단순 통화 장치가 아니다. 모바일 컴퓨터이다. 많은 앱을 통해서, 스마트폰은 각종 기능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개인 기록이나, 정보도 앱 속에 저장되기도 한다. 전화번호, 메모, 스케줄, 명함, 금융정보, 사진, 동영상 등 바로 그런 정보이다.

이제 개인이 암기하거나, 기록했던 정보들이 스마트폰의 개발 이후 저장공간 안으로 옮겨지고 있다. 물론 스마트폰 자체 저장 장치도 있지만, 이미 스마트폰은 다양한 앱이나, 포털과 연동되어 있다. 스마트폰은 거대한 저장공간을 연결하는 미디엄이다.

거대한 저장공간은 클라우드를 의미한다. 데이터를 스마트폰을 통해서 중앙컴퓨터에 저장해서 인터넷에 접속하기만 하면, 언제 어디서든지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스마트폰과 마찬가지로, 이제 컴퓨터 또한 클라우드를 연결하는 미디엄이다.

머지않은 장래에는 클라우드 안에 각종 앱과 프로그램까지 저장되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통해서 클라우드에 연결해서, 업무를 처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찾아오면, 인간의 모든 기억은 클라우드로 이관될 것이다.

 

스마트브레인의 구동장치 스마트폰

용도가 불분명한 웨어러블 컴퓨터는 스마트폰이 스마트브레인으로 역할이 정착되면, 기능 향상이 이루어질 것이다. 현재까지 스마트폰을 통해서 클라우드로 이관되는 정보는 사용자가 직접 입력하는 정보 중심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항공기의 비행기록장치(Flight Data Recorder)와 조종실녹음장치(Cockpit Voice Recorder)를 넣어둔 블랙박스나, 자동차의 이동상황을 녹화하는 블랙박스와 같은 역할을 스마트폰이 하게 될 것이다. 물론 스마트폰은 클라우드에 전송하는 미디엄이다.

앞으로 개인의 말과 행동은 스마트글래스를 통해서 수집되고, 스마트폰을 통해서 클라우드로 전송될 것이다. 자동차용 블랙박스가 저가에 공급되는 것을 고려하면, 실현 가능한 일이다. 차량 운행 기록처럼, 개인 일상 정보가 기록될 수 있다는 말이다.

법률 시장, 의료 시장의 판도가 바뀔 것이고, 자연스럽게 AI에 의한 소송, 의료행위가 정착될 수밖에 없다. 카네기멜런 대학 교수인 일라 레자 누르바흐시 박사의 ‘로봇이 온다 4차 산업혁명의 비밀병기, 로봇’(2017)은 이런 시대를 미리 예견한 책이다.

개인의 대화를 저장하거나, 외국어로 통역해주는 스마트스피커, 미각과 후각을 상실한 환자에게 냄새와 맛을 감지해서 신경을 통해서 전달해주는 스마트노우스와 스마트마우스 등도 가능하다. 시각정보를 영상으로 전달하는 스마트아이는 실현 직전이다.

 

어나더 미 스마트폰

스마트폰의 활용은 개인적인 기억과 지식을 클라우드에 저장하기 위한 미디엄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집단이 공유하는 기억과 지식을 공유하는 미디엄으로도 활용될 것이다. 검색 장치를 통해 궁금한 정보를 획득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이해가 가능하다.

역시 키에누 리브스 주연의 ‘메트릭스’(1999)를 보면, 집단 지식을 개인이 활용하는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스미스 요원과 싸우는 해커 키에누 리브스는 클라우드에 있는 무술을 순식간에 익혀서 전투에 활용한다. 그런 상황은 조만간 충분히 가능하다.

자율주행은 자동차는 물론, 배, 비행기에도 활용될 것이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스마트비히클의 조정이다. 선박 항해사, 비행기 조종사는 클라우드에 자율주행 기능을 장착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 된다. 모든 일은 스마트폰으로 가능하다.

스마트폰은 스마트하우스의 콘트롤러가 될 것이다. 개인의 건강 데이터를 입력한 스마트폰은 스마트하우스에 정보를 전송해서, 습도, 온도, 환풍을 조절할 것이다. 또 가전제품 전체를 구동해, 청소, 요리, 육아, 휴식 등 생활 전반을 관리해나갈 것이다. 2007년 스마트폰 출현 이후 세상이 바뀐 것보다 더 큰 충격이 찾아올 것이다. 사회 변화를 선도하지 못하는 대학은 폐교되고, 스마트폰을 통해 세계 명문대학만이 화상 접속 교육을 하며 살아남을 것이다. 세계 대학 교육은 스마트폰으로 통합될 것이다.

스마트폰은 기억, 정보. 지식과 활용하는 사회적 데이터 수준과 역량을 보여주는 어나더 미가 된다. 스마트폰으로 어떤 사회적 클라우드에 접속할 수 있느냐가 IT 시대의 사회적 계급이 될 것이다. 이제 스마트폰 없는 세상은 절대로 꿈도 꿀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