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봄이 왔을 때 쯤 어느 노시인의 시집을 본 일이 있습니다.

몇 해만에 시집을 내었는데, 대부분의 시들이

겨울을 나면서 봄을 기다리는 시 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숱한 계절이 오고갔는데,

왜 유독 봄을 노래한 시들로만 채워진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내 알게 되고, 나도 같은 길을 감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1월에 친구 부부와 설악산을 찾았습니다.

눈이 흔한 올 겨울이라 오고가는데 눈 때문에 지장을 받지 않을까하는 걱정도 없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이왕 금요일에 한가하게 떠난 일정이니 눈에 푹 파묻혀 보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만약을 대비해 아이젠까지 준비했지요.

기대와 달리 다음날 설악산을 찾으니 눈 대신 비가 왔습니다.

코스를 바꾸어 권금성을 케이블카로 오르기로 했습니다. 케이블 운영 업체에서 권금성 정상이 짙은 안개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그걸 알고 티켓을 구매하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잠깐 망설였지만 그래도 거기를 오르기로 했습니다.

기다리다 케이블카를 타려는 순간까지도 그곳 직원들은 지금이라도 취소하여도 된다고

과잉친절을 베푸는데, 사람을 자꾸 흔드는 것 같아 은근히 화가 났습니다.

좀 있다 케이블카가 빗속에 출발했는데, 오십여 미터쯤 올라가자 비가 눈으로 변했습니다.

그 모습이, 그 경계가 신비로웠습니다. 정상에 오르자 눈 세상이 펼쳐졌습니다. 전망이 약간은 가리기는 했지만, 오히려 우리가 오른 산 능선의 눈 세상에 온전히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코스를 바꾸어 급할 게 없던 우리는 거기 눈 세상, 올해 마지막 보는 눈세상이라 생각하고 한참을 머물며 이리저리 돌아다녔습니다.

그러고 현실 세계로 내려오니 비가 내리며, 우리가 잠시 전 눈 세상 다녀온 걸

우리 스스로도 믿기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아는 지인에게 눈 세상의 모습과 아래 비가 맺힌 나뭇가지를 클로즈업한 사진을 보내며

‘이제 겨울은 끝! 봄 시작입니다‘라고 보냈습니다.

그러고 얼마 후에 설악산은 물론, 도심에도 넓고 깊게

다시 눈 세상이 펼쳐졌고, 영하 이십도 혹한이 찾아왔습니다.

이렇게 추위가 찾아오고, 눈이 더 오고, 찬바람이 불고, 찬비가 더 흩뿌린 후에

봄이 왔던 걸 잊고 또 요란을 떤 것입니다. 이제까지 매번 그렇게 봄을 맞았음에도 말입니다.

노시인은 긴 기다림 속에 기대와 실망으로, 또 희망과 좌절의 반복됨 속에

세월이 흘러갔던 쫄여진 인생을 시에 담았던 것이겠지요. 그러니 봄노래가 인생이겠지요.

내 스스로가 그런 길을 가고 있는 겁니다. 어떤 마음이 더해져야할까요?

얼마 전 추운 날 모임같이 하는 친구 단톡방에 한 친구가 ‘보일러가 꺼졌나 왜 이리 방이 춥나?’라고 뜸해진 친구들의 소식을 기대하는 말을 했는데,

다른 친구가 ‘보일러 꺼져 엄청 춥겠다‘라며 따듯한 마음을 전하는 그런 헛발질.

또 지인과 점심 후 찾은 공원에 모처럼 아이들의 환한 웃음소리가 들려 쳐다보았더니

공원관리 하는 아저씨가 낙엽을 한쪽으로 모는 기계로 길에 쌓인 눈을 날리는 걸 보며

아이들이 즐거워하고 있던 겁니다. 이런 순한 마음.

직선으로 오지 않는 봄에 나도 그처럼 갈지자로 마음을 더해 기다리면 될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