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의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을 도운 영국의 의적 로빈 후드(Robin hood). 뛰어난 활 솜씨와 기민한 움직임으로 그는 수백 년간 여러 이야기에서 재가공되며 명궁이자 매력적인 영웅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특히 민중의 편에 서서 악한 권력자들에게 통쾌한 반란을 선보이는 모습은 시대를 초월해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그의 이야기가 소설,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소재로 활용되는 것도 그를 통한 대리만족이 크기 때문이다.

단순히 영화만 살펴봐도 그가 얼마나 매력적인 캐릭터인지를 쉽게 알 수 있다. 1912년 무성영화 <로빈 후드>를 시작으로 1991년 <의적 로빈 후드>, 2010년 <로빈 후드>, 2018년 <후드>에 이르기까지 여러 편이 제작됐다.

모두 로빈 후드가 수 십 명의 호걸들과 힘을 합쳐 불의의 권력인 영주에 대항하고 그들의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게 주 스토리다.

이런 로빈 후드가 세계 금융의 중심지 월스트리트에서도 명성을 날리고 있다. ‘금융의 민주화’를 표방하며 신설된 온라인 주식거래 플랫폼 ‘로빈 후드’에 미국 개인투자자(개미)들이 몰려들어 월스트리트의 엘리트 금융 권력에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게임스톱 대첩(大捷)’이다.

게임스톱 대첩은 지난 1월 말 공매도 투자로 유명한 미국 헤지펀드들이 게임스톱을 공매도하겠다고 공개선언한데 반발해 개미들이 대거 주식매수에 나서면서 게임스톱 주가를 끌어올리는 대반전을 이뤄낸 사건이다. 공매도는 특정 종목의 주가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면 해당 주식을 보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주식을 빌려 매도 주문을 내 주가를 떨어뜨린 뒤 낮은 가격에 되사 차익을 남기는 매매기법이다. 막강한 돈과 정보로 무장한 월스트리트 기득권 세력의 전략이다.

이에 반발한 개미들이 “공매도 세력에 본때를 보여주자”며 게임스톱 주식 매수에 나서면서 주가가 급등, 헤지펀드들이 엄청난 손실을 입고 공매도 포기를 선언하기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첩이란 말이 어울리는 개미들의 압승이었다.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의 새로운 버전이라는 말이 나온 것도 그래서다.

영국 노팅엄 성의 로빈 후드 동상. 셔터스톡
영국 노팅엄 성의 로빈 후드 동상. 셔터스톡

하지만 게임스톱 대첩으로 인해 누린 승리의 기쁨은 채 10일을 넘지 못한다. 급등하던 주가는 다시 급락해 제자리로 돌아가면서 개미들의 비명소리로 넘쳐흘렀다. 뿐만 아니라 개미들의 성지로 알았던 로빈 후드가 게임스톱에 대한 거래제한 조치를 취하면서 주가가 급락, 개미들의 분노를 한 몸에 받는 신세로 전락했다. 줄소송도 당했다. 전설적인 영웅 이미지의 몰락이라고나 할까.

실제 로빈 후드가 경제 분야로 넘어오면 부정적 이미지로 변색된다. 이른바 ‘로빈 후드 효과(Robin hood effect)’다. 가진 자의 것을 빼앗아 없는 자에게 나눠주면 일하는 사람이 갈수록 줄어들어 결국 없는 자만 남게 된다는 의미다. 예전의 공산주의나 지금의 좌파 논리에 반대하는 보수 우파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특히 자본주의 경제에서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부를 재분배할 경우 오히려 전체적인 부가 축소되는 부작용을 낳는다고 비판한다.

부유층에 대한 세금확대도 마찬가지 논리로 반대하고 사치세와 같은 부자세에 대해서도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천재 경제학자 그레고리 맨큐마저도 자신의 경제원론에서 부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요트와 개인비행기 등에 대해 사치세를 부과하면 그 세금은 부자가 아니라 다른 계층이 떠안게 된다고 설명한다. 부자들은 요트나 개인비행기를 구매하지 않고 다른 것을 사면되지만 이를 생산하는 업체와 노동자들은 다른 상품을 공급할 수 없어 결국 가격을 낮추는 방법으로 세금을 부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상류층으로부터 세금을 더 걷어 가난한 사람들을 지원하려하자 ‘로빈 후드 법’이라며 강력 반발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로빈 후드 효과는 불법 다운로드에 대한 피해를 얘기할 때 쓰이기도 한다. 저작자나 판권 소유자에게 돈을 내야 좋은 영화가 계속 나오게 되는데 불법 다운로드가 범람하면 이런 구조가 무너지면서 결국 그 피해는 소비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어우러져 돌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빚어지는 양극화 문제는 단순히 로빈 후드와 같은 뜨거운 가슴만으로는 풀 수 없다.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화합을 이뤄낼 수 있는 차가운 머리와 세심한 조율(tuning)이 필요하다. 경제학자 앨프리드 마셜이 “경제학자는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이유다. <편집국총괄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