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 한 마디가 젊은 선수들의 마음을 그렇게 흔들어 놓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난 1월 31일 일요일 오후 남자 배구 경기에서 있었던 놀라운 일이었다. 7개 팀 중에서 4위와 6위 팀 간에 벌어진 리그 경기이지만, 객관적인 전력은 내가 응원하고 있던 우리카드 팀이 약간 우위에 있었고, 팀 리빌딩 중인 현대캐피탈 팀은 꼴찌 다음으로 리그를 힘겹게 운영하고 있었다. 당연히 4위에서 좀 더 상위권으로 가기 위한 승점 3점을 위한 재물 정도로 생각됐고, 1세트와 2세트를 내리 따 내면서 시합 분위기는 그렇게 가는 듯 했다.

3세트에 접어들어서도 초반에 현대가 우세를 점했지만 중반에 접어 들어서 14대 15로 역전을 당했고, 이대로라면 세트 스코어 3대0으로 끝이 아닌가 싶을 즈음이었다. 코트 위 선수들을 불러들인 최 감독은 선수들을 다그치기 보다는 질 때 지더라도 활기찬 모습을 보여달라는 의미로 마법 같은 주문을 던졌다. 주포 공격수인 허수봉 선수에게 주문한 것이다. “너의 최고 장점은 싱긍벙글 웃으며 경기장을 뛰어다니는 거야. 가서 신나게 뛰어 다녀!” 이때까지만 해도 그 한 마디가 그렇게 큰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당시 팀은 2연패를 당했고, 승기를 놓친 상태에서 경험 부족한 나이 어린 선수들은 움츠러들고 의기소침해 있었다. 이런 우울함을 깨뜨린 감독의 한 마디가 그날의 경기를 뒤집어 놓았다. 허수봉 선수는 공격 성공을 하고 난 뒤에는 코로나로 인해 관중석이 텅 비어 있었지만 그 앞까지 냅다 달려나가며 세리머니를 펼쳤다. 시합은 지더라도 경기는 즐겁게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먹혔던지 그 몇 번의 공격 성공에 이은 분위기 반전은 상대팀 분위기를 뒤 흔들기에 충분했다. 갑자기 허둥지둥 안 하던 실수까지 연발하면서 다 잡은 게임의 양상이 달라졌다. 그렇게 3세트를 따온 현대 팀은 고참 선수들도 참여해 군데군데 힘을 보태는 통에 4세트를 손쉽게 따냈고, 결국 게임은 5세트 듀스 접전까지 갔다.

태도 하나 바꿨을 뿐인데, 연패 탈출의 승리가

일요일 오전 늘 하던 등산을 다녀온 뒤에 샤워하고 개운한 마음으로 경기를 관전하던 나였던 지라 3세트 후반부터 우왕좌왕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대하자 마음이 쓰려 왔다. 결국 4세트에 접어들어서는 차마 경기를 관전할 수가 없어 채널을 돌리고 말았다. 나중에 뉴스로 확인해 보니 그렇게 한번 잡은 우세를 끝까지 놓치 않은 현대 팀이 마지막 5세트에서 27대 25로 승리를 거두며 게임은 끝이 나 있었다.

무엇이 선수들을 그토록 달라지게 만들었을까. 예년에 비해 현대캐피탈 팀은 많은 것이 달라졌다. 전통 명가로 늘 우승 후보로 점쳐지던 팀이었다. 전광인, 문성민, 신영석, 여오현 등 한 두 명만 보유한다고 하더라도 강팀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선수들을 모두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는 나이 어린 팀원들로 구성되어 중간 허리가 약할 수 밖에 없었다. 누구나가 이 팀이야 말로 최고의 정점에 올라와 있는 팀이라고 생각하던 그때 감독은 과감한 결정을 했다. 나이 어린 선수들을 체계적으로 길러 강한 체질이 뿌리내린 팀으로 리빌딩 하는 것이었다. 입대한 전광인, 부상에서 회복중인 문성민, 그리고 트레이드로 다른 팀에 보낸 신영석 그리고 코칭 플레이어인 여오현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어린 선수들에게 많은 기회가 돌아가게 했다. 단순한 승리보다는 다양한 많은 경험을 갖고 팀이 단단해질 것을 주문했다.

그래서 지고 있는 그 순간에도 ‘싱글벙글 웃으며, 시합을 즐겨라’고 주문했던 것이다. 그것이 선수들의 태도를 바뀌게 했다. 지고 있던 시합의 분위기에 주눅들어 상대팀이 점수를 낼 때에는 고개를 숙였고, 자신들의 공격이 실패로 돌아갈 땐 속수무책의 상태가 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져도 괜찮으니 웃고 떠들고 신나게 즐길 것을 주문 받은 선수들의 태도는 한순간에 확 바뀌었다. 공격이 성공하면 더 큰 함성을 질렀고, 실패해도 서로서로 껴안고 의기를 다졌다. 패색이 짙어 움츠러든 손을 어찌할 수 없던 것을 애써 떨쳐버리고 하나 둘 점수를 낼 때마다 광적인 움직임과 함성으로 코트를 뒤덮었다. 현실은 그대로였지만, 선수들이 임하는 태도 하나 바꿨을 뿐인데 분위기가 달라졌고 승패가 뒤집히는 결과로 나타났다. ‘팀 전력이 열세라 어쩔 수 없지’ 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코로나로 인해 지난 추석에 이어 설연휴에도 고향을 찾지 못하고 집에서 지냈다. 다가올 추석은 부디 사람들이 북적대며 예전처럼 떠들썩 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외출을 하기도 뭣하고 등산 외에는 집에서 아이들과 지내면서 우연히 TV프로그램에 등장한 왕년의 두 축구 스타를 봤다. 자연인을 찾아 다니며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각종 에피소드를 담고 있는 내용인데, 그 두 주인공은 황새 황선홍 감독과 테리우스 안정환이었다. 안정환 선수야 그간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종횡무진 활약했지만, 스포츠 뉴스에나 간간이 등장하는 황선홍 감독은 등장 자체가 화제였다. 특히나 68년생인 황선홍은 안정환 보다 무려 열두 살이나 많아, 안정환 선수가 쩔쩔매기 일쑤였다.

예능 방송 출연이 처음이라서, 그 동안 축구 밖에 몰라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축구장을 벗어난 황선홍 감독의 모습은 무기력 무능력 그 자체였다. 그 동안 선배의 입장에서 다른 출연자를 부려먹기만 했던 안정환 선수를 잡아 먹는 대선배의 캐릭터로 방송이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장작불을 피우지도 못하고, 갯벌에서 엉성한 삽질로 일관하며 단 한 마리의 개불도 잡지 못한 모습, 한 밤에 맨손으로 망둥어 잡이에서도 역시나 스스로 발견해 잡지 못하는 모습은 여전했다.

그가 보여준 모습은 설렁설렁 삽질하면서도 ‘왜 잡히지 않는 거야?’며 화만 내기 일쑤였다. 또, 캄캄한 가운데에서는 망둥어가 보이질 않는다는 불평만 연발했다. 그러다 보니 테이블 위에 벗어둔 안경이 바람에 날려 바닥에 떨어지고 밟혀 망가지는가 하면, 꼬치 구이를 만들기 위해 쇠꼬챙이를 다루다 손을 찔려 다치기까지 한다. 한마디로 뭔가 할 줄도 모르고 할 의욕도 보이지 않으면서 하기 힘든 상황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핑계거리가 계속 쌓여가는 것이다. 안 하려 하면 못할 일만 계속 생기게 된다.

‘나는 모른다,’ ‘나는 모른다’만 반복하는 리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예전에 군 입대 전 아르바이트 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대학교 2학년이던 그때 울산의 한 기계공장에서 몇 달 동안 일을 했었다. 철로 만든 큰 구조물의 녹을 벗겨내고 칠을 하는 공정이었다. 녹을 벗겨내는 과정이 핵심이었는데, 안이 텅 비어있는 철 구조물 바깥에서 엄청난 속도로 모래를 쏘는 방식이었는데, 구조물 내부에 이어 붙여 둔 방패처럼 생긴 철판이 닳으면 주기적으로 보수하고 교체해야 하는 것이 주된 일이었다. 그런데 내가 속한 공무반이 해야 했던 거의 전 과정이 쇠를 자르고 깎고 다시 용접해 붙이고 하는 과정이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심부름 하는 정도가 다였다.

당시 나는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고 있긴 했지만, 학과에서는 장학생으로 교내 신문사에서는 취재부장이네 하면서 세상 물정 모르고 나 잘난 맛에 취해, 너무나 어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용접을 배워서 뭐하나?’, ‘공무반 형들과 시간만 대충 보내면 퇴근이야’, 거기다 ‘공장 사람들 대부분이 공고 출신들이나 잘 해 봐야 전문대 수준’ 이라는 생각에 공장 안을 어슬렁거리기만 했다. 사실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 모두가 내가 잠깐 일 하다 갈 사람 밖에 안됐기에 뭘 바라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작업 반장이 기계 위에서 내게 뭔가 심부름을 시키면서 몇 마디 말을 건넸다. 다른 사람이 작업하던 것을 옆에서 붙들어 주고 있던 내가 작업 반장의 부르는 말에 귀 기울여 듣기 위해 다가간 것까지는 좋았으나, 쇳가루와 기름이 범벅이 된 장갑 낀 손을 등 뒤로 돌려 뒷짐을 진 것이 화근이었다. 그때까지는 그런 태도가 위 아래가 엄격한 사회생활에서 문제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연세가 지긋한 작업 반장이 지시를 하는데, 나이 어린 아르바이트생이 뒷짐을 지고 듣는 모습은 참기 어려웠던 것이었다. 말을 하던 작업 반장이 나를 보고 냅다 큰 소리로 야단을 쳤다. “이 놈의 새끼가 어른이 지시를 하는데 뒷짐을 지다니, 어디서 버르장머리 없는 짓이야!” 사실 야단을 맞는 그 순간까지도 내가 뭘 잘 못했는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다른 사람이 나를 툭툭 건드리며 뒷짐지지 말라고 알려주고 나서야 황급히 자세를 고쳤다. 그때 내 모습은 누가 시키지 않으면 그냥 우두커니 앉아만 있는 이방인의 모습일 뿐이었다.

예전에 사업부에서 그때까지 해오던 것과는 다른 신제품을 개발했던 적이 있었다. 회사의 많은 사람들이 새로 개발되어 나오게 될 그 제품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고, 경영진 역시 지대한 관심을 넘어서 그 다음 단계로 기업의 성장을 이끌어줄 중차대한 계기로 생각하고 있었다. 때문에 제품 개발의 성공 여부와 함께 외부 공인기관에의 품질 검사 그리고 인증서 확보 등에 따른 프로세스와 함께 단계별 대외적인 홍보 역시 중요했다.

기자 간담회로 하느냐 아니면 시내 호텔이라도 확보해서 투자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초빙이라도 해야 하는 지 미리부터 홍보실에서는 고민에 들어갔다. 방송 카메라맨들까지 참여할 수 있으려면 제품이 가지는 긍정적인 경제 기여 효과부터 제품의 특장점까지 단박에 매력을 선보일 수 있어야 했기에, 여러 가능성을 두고 기획을 하면서 해당 사업부에 좀 더 참조가 될만한 자료들을 요청했다.

하지만 엔지니어들로 채워져 있던 그 개발팀 구성원들이나 리더인 임원조차도 제품을 제대로 잘 선보인다는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거기다가 개발이 완료될 시점은 물론 대외적으로 검사에 어느 정도의 시일이 걸릴 지에 대해서도 일말의 예측도 못하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대외적으로 제품 경쟁력을 올리기 위해 제대로 홍보가 필요하다’고 하자, ‘나는 모른다. 홍보는 나는 모른다’만을 마치 주문이라도 외우듯이 반복할 뿐이었다.

개발자가 제품 홍보까지 다 고민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개발한 제품의 특장점과 개발 스케줄 그리고 제대로 홍보가 잘 되면 제품의 매출 증가로 이어질 것에 대해서는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회사라는 조직으로 뭉쳐있는 이유다. 하지만 ‘엔지니어이기 때문에 홍보는 모른다’는 마법의 주문만 읊조리는 리더라면 제품의 미래도 뻔하다. 조직의 리더가 한 두 달 멍 때리다가 가버릴 알바생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 리더를 보유한 조직, 그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이 그렇게 만들어 오고 있는 것이 실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