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지나간 세계>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부키 펴냄.

<철도원><파이란><칼에 지다>의 일본 작가 아사다 지로의 소설이다. 1951년 태어나 고도성장기에 청년 시절을 보내고 대기업에서 근무하다가 정년퇴직을 맞은 ‘평범한’ 남자의 인생 이야기다.

주인공 다케와키 마사카즈가 지하철에서 뇌출혈로 쓰러진다. 그의 나이 예순다섯. 대기업 계열사 임원을 지낸 그는 이날 정년 퇴직 송별회를 마치고 큰 꽃다발을 안고 귀가하던 중이었다.

병원 집중치료실에서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사흘 동안 누워 있던 다케와키는 잇달아 찾아오는 미스터리한 방문자들에 이끌려 이세계(異世界) 여행을 체험한다. 실제로는 뇌 속에서 자기 삶을 복기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숨겨진 비극적 과거가 드러나고, 잊혔던 기억이 떠오르며, 애써 억눌렀던 감정들과도 마주하게 된다.

다케와키는 부모가 누구인지, 언제 태어났는지 모른다. 고아로 보육원에서 자랐다. 하지만 불행을 딛고 고학으로 공립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했다. 그렇게 ‘평범한 사람’이 되려는 꿈을 이뤘다. 자기 출생의 비밀을 아내에게도 숨겨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는 가족을 위해 40여년간 앞만 보며 일해왔다. 회사가 세상의 모든 것이었다. 노후를 위한 취미나 꿈조차 없다. 돌이켜 보니 삶은 회한 뿐이다. 그런데 직장의 정년퇴직이 인생의 정년퇴직이 되다니. 그는 아직은 죽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제서야 “인생의 행복과 불행의 양이 똑같다면 내게는 아직 행복의 시간이 남아 있어야 해요.”라고 항변한다.

저자는 직장에서, 출퇴근길의 지하철에서, 집으로 가는 골목 어귀에서 부대끼는 사람들 모두가 저마다의 고통과 상처를 감내하고 있다면서 그런 타인을 관대한 시선으로 바라보라고 조언한다.

이 소설의 출간에 즈음한 인터뷰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사람에 대해 쓰려고 했다. 부자이거나 지위가 높은 사람이 아닌, 자기반성을 할 줄 아는 남자, 인망이 있는 사람을. 그런 사람이야말로 위대한 사람이 아닌가”

소설은 2016년부터 1년간 마이니치 신문에 연재된 것을 정리해 2017년 첫 출간됐다. 원제목은 ‘모습(おもかげ, omokage)’이다. 신문 연재 당시 독자들로부터 ‘아사다 지로 감동 문학의 결정판’이라는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소설을 읽은 뒤에도, 첫 방문자 ‘마담 네즈’가 주인공에게 건넨 위로가 귀에 남는다. “당신은 참 열심히 살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