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는 왜 멈추는가?> 한지원 지음, 한빛비즈 펴냄.

<자본론>은 경제 위기 때마다 소환되고 있다.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과 동시에 비주류 경제이론으로 강등당했건만 외환위기(1997), 금융위기(2008) 등 지구적 위기 때마다 주목받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계 경제가 미증유의 위기에 처하자 어김없이 <자본론>과 관련 서적들은 인기도서 목록에 올라있다.

그것은 현 자본주의 체제에선 도무지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단순한 답답함 때문일 지도 모른다. <자본론>의 등장이 매번 회고적인 반짝 인기에 그친 것을 보면 그런 짐작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한지원은 <자본론>을 매우 도발적인 용도로 등판시키고 있다. 그는 ‘지극히 현재적인’ 경제 이슈들을 한데 모아 놓고는 150여년 전 마르크스의 경제 이론들을 동원하여 답을 내놓는데 일말의 주저함이 없다.

인공지능로봇이 노동의 종말을 가져올까? 4차 산업혁명은 지속가능한 기술혁신인가? 공정한 임금은 도대체 얼마의 임금인가? 부동산 가격은 앞으로도 오를까? 소득 불평등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한국경제는 저성장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재벌을 개혁하면 공정한 시장이 확립될까?

한지원은 노동가치론, 착취론, 자본축적론 등 <자본론>의 핵심 이론들을 현재화하여 도발적 시선으로 이슈들을 분석하고 나름의 현실적인 답을 제시하고 있다. 1부 ‘상품과 화폐’에서는 노동가치론으로 인공지능 로봇, 디지털 경제, 비트코인, 재정확장 등 기술혁신과 관련된 쟁점을 따진다.

2부 ‘이윤과 임금’에선 착취법칙으로 직장 갑질, 공정임금, 임금분배율, 귀족노조 등의 노동 이슈들을 분석하고, 3부 ‘성장과 위기’에서는 자본순환론으로 부동산, 규제개혁성장, 소득주도성장 등의 정부 경제정책 쟁점들을 살핀다.

4부 ‘역사법칙’에선 자본축적의 일반법칙으로 경제적 불평등, 현실 사회주의의 실패, 최근 유행하는 21세기의 대안, 코로나19 사태 분석 등 자본주의 장기 비전과 관련된 쟁점을 다뤘다. 이 가운데 일부 내용이다.

◇“디지털 기업 혁신, 他산업 수탈로 이어진다”

인공지능 기계의 발전이 산업혁명이라 불릴 수 있으려면 그것이 노동과 자본을 모두 절약하는 중립적 기술진보여야 하고, 더불어 급격히 향상된 생산성이 상품 소비로 실현되어야 한다. 미래 공장으로 이야기하는 ‘스마트팩토리(smart factory)’를 한번 보자.

스마트팩토리는 주문, 생산, 물류를 빅데이터, 전자태그(RFID), 사물인터넷(IoT) 같은 디지털 기술로 통합하고, 3D프린팅, 인공지능 로봇을 사용해 생산을 자동화한 공장을 일컫는다. 미래 공장이란 현재의 이런 기술들을 더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을 절약하는 이 기술들이 자본도 절약하는지는 불분명하다. 이런 기술들이 자본을 절약했다면 자동차 기업들의 자산수익률이 장기적으로 상승했어야 하는데, 그런 상승은 관측되지 않는다.

디지털 서비스들은 추가 생산에 노동이 필요 없다. 예를 들어 윈도우(Windows)의 추가 카피나 구글의 추가 검색에는 노동이 더해지지 않는다. 개발에는 많은 지적 노동이 필요하지만, 일단 개발이 끝나면 추가 노동 없이도 서비스가 무제한 가능한 것이 디지털 상품의 특징이다.

그렇다면 현실의 디지털 서비스 기업들은 어떻게 돈을 벌까? 디지털 기업의 이윤은 그 본질이 지대(地代)이다. 이는 노동가치론으로 봐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노동가치론에서는 한 사회의 상품가격 총량과 지출된 노동 총량이 같다. 사회에서 노동 없는 상품이 가격을 가지면, 당연히 노동 있는 상품의 가격은 그만큼 줄어들어야 한다. 노동 없는 디지털 상품의 가격은 노동 있는 상품의 가격에서 이전된다.

이 제로섬게임은 당연히 국민경제 전체의 성장과는 연결되지 않는다. 디지털 기업들의 혁신은 전후방 산업으로 확산되기보다 다른 산업에 대한 수탈로 이어진다. 이렇게 지대를 추구하는 기업들이 경제를 주도하면 당연히 국민경제의 성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 “비트코인, 세계화폐가 될 조건 못 갖췄다”

비트코인이 화폐가 될 수 있을까? 화폐는 교환수단, 지불수단, 세계화폐라는 기능을 가진다. 보편적 등가물이어야 숭배대상이 되고, 교환수단도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비트코인은 교환수단조차 될 수 없다. 무의미한 연산으로 만들어지는 디지털 영수증에는 어떤 사회적 노동도 없다. 심지어 비트코인은 중앙관리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강제통용력을 가질 수도 없다.

비트코인이 지불수단이 될 수 없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컴퓨터 연산으로 만들어진 디지털 영수증으로 채권·채무 관계를 청산할 수는 없다. 채권자가 비트코인으로 채무를 청산해 얻을 것이 없어서다.

그렇다면 비트코인이 세계화폐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비트코인 찬양자들은 국경을 넘나들 수 있는 인터넷 암호화폐의 특징을 강조한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어느 나라에서도 보편적 등가물이 아니다.

더군다나 월스트리트 금융기관이 비트코인으로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미국의 항공모함이 비트코인으로 건조되는 것도 아니다. 달러가 세계화폐가 될 수 있는 조건을 비트코인은 아무것도 갖추지 못했다.

◇ “재정적자, 문제없다고? 완벽한 오류”

현대화폐이론으로 불리는 새로운 통화이론을 주창하는 경제학자들은 아예 재정적자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본>의 화폐 이론으로 볼 때 이런 주장은 완벽한 오류다. 보편적 등가물로서 화폐는 어떤 방식으로 발행되든지 간에 결국에는 시민의 노동에 토대를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노동이 증가하지 않는데 화폐만 무한정 증가할 수는 없다. 정부(중앙은행)가 발행한 돈으로 정부 빚을 갚는다고 정부재정이 화수분이 되는 것은 아니다. 확장적 재정으로 미래 성장률을 크게 끌어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위험이 미래 세대로 전가될 뿐이다.

정부 채무의 위험성 증가는 가계부채와 기업부채 문제에 대한 정부 대응 역량을 약화시킨다는 점에서 경제의 치명적 약점이 될 수 있다. 정부는 최후의 대부자로서 대응력을 확보해 놓아야 한다. 재정적자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손쉬운 선택일 수 있지만, 옳은 선택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