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대한·서울상공회의소 차기 회장이 SK 최태원 회장으로 확정된 가운데 재계의 관심은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의 새로운 수장이 누구일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경련의 간판인 허창수 회장의 임기가 2월 끝나는 가운데 ‘유력후보군’도 없기 때문이다.  

명예의 자리? 독이 든 성배?  

4일 재계 등에 따르면 국내 3대 경제단체(전경련·대한상의·경총)의 수장은 거대기업의 총수라고 해서 누구나 쉽게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닌, 철저한 명예직이다.

기업이 창출하고 있는 경제적 가치, 기업의 재계 내 위상, 경영자의 인품에 대한 주변 인물들의 평판 그리고 수많은 경제인들의 다양한 의견을 조율할 수 있는 리더십 등을 오랜 기간에 걸쳐 검증받은 기업인만이 그 자리에 오를 수 있다. 

바쁜 업무 속에서도 경제계 내의 안건들에서부터 정치권과의 의견 조율과 노동 단체들과의 대화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런 가운데 전경련의 새로운 수장이 누가 될 것인지 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전경련의 ‘원죄’ 

전경련의 입지는 다른 경제단체들과 비교해 상당히 좁아졌다. 지난 정권의 국정농단에 휘말려 여론의 지탄을 받았기 때문이다. 삼성이 전경련을 탈퇴한 가운데 진보적 성향의 정당이나 시민단체들은 “전경련이 국정농단 세력의 ‘수금기관’으로 전락했다”고 강하게 비난하면서 전경련의 즉각 해체를 요구하기도 했다. 

국내 주요 기업들이 각자의 필요에 의해 혹은 지난 정권의 ‘무언의 압박’으로 인해 국정농단 세력과 연루된 것은 여러 차례의 재판을 통해 사실로 드러났다. 그러나 전경련 자체를 둘러싼 논란에 따라 대외적 이미지가 많이 훼손된 것은 사실이다. 회장 '후보군'도 가늠이 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진 이유다.

정부의 대(對)기업 프레임

전경련의 '새로운 회장 찾기'가 재계의 관심사로 부상한 가운데, 당분간 적임자를 찾기 어렵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최근 정계와 경제계의 심각한 불통이 이어지는 중이라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현 정부 기업 정책의 제1원칙은 ‘대기업 그리고 각 기업의 총수로 집중된 권한의 분산’으로 요약된다. 상법개정안이 포함된 공정경제 3법, 각 사업주들에게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과 그 처벌을 강화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의 국회 통과가 대표적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정부와 여당이 가장 직접적인 당사자인 기업들의 의견을 거의 무시하고 법안의 통과를 강행했다는 것이다.

전경련, 대한상의, 경총 등 국내 주요 경제단체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대한상의 박용만 회장의 경우는 국회를 찾아가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당대표,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을 직접 만나서 경제계의 의견을 전달하기도 했다. 전경련과 경총은 정부·여당 인사들과 만나는 회의를 개최해 당시에 추진 중인 기업 법안들의 맹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경제단체들의 의견이 거의 무시된 법안들을 국회에서 연이어 통과시켰다.

이러한 정부·여당의 명확한 관점은 정치권을 향한 국내 경제단체들의 발언권이 큰 의미가 없음을 보여줬고 그에 따라 경제단체들의 입지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좁아졌다. 이는 전경련 수장의 자리를 기업인들이 썩 반기지 않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경제계 한 관계자는 “어떤 내용의 사안도 결국에는 정부와 여당이 의도한 대로 결론이 난다는 것을 경제단체들이 깨닫기 시작했다”라면서 “경제계가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현 정부 하에서 의미가 있겠는가’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전경련의 ‘고군분투’

국내 경제단체들의 대내외적 활동의 여건은 매우 좋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가운데에서도 최근 전경련은 국내 기업들의 경영 환경 개선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잊지 않기 위해 여러 모로 애쓰고 있다. 

바로 여당의 주도로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코로나19 이익공유제(이하 이익공유제)’에 대해 전경련이 국내 경제단체들 중 유일하게 공식적 ‘반대 의견’을 낸 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익공유제는 코로나19 확산 시기, 사업의 특수성으로 실적을 개선한 기업들의 수익 중 일부를 사회기금으로 환원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당대표의 제안이 있은 후 문재인 대통령이지지 의사를 표명하면서 정치권에서는 이를 제도화시키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제도의 실행으로 예상되는 여러 단점들로 인해 각 기업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으나, 이번 사안에 대해 국내 경제단체들은 공식 의견을 내지 않았다. 

지난달 28일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개정 상법 대응을 위한 기업 설명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권태신 전경련 부회장. 출처= 전국경제인연합회
지난달 28일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개정 상법 대응을 위한 기업 설명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권태신 전경련 부회장. 출처= 전국경제인연합회

반면 전경련만이 지난달 17일 ‘이익공유제의 쟁점사항 5가지’를 제시하고 정치권의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여기에서 전경련 측은 이익 산정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보장하는 주주의 재산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점, 외국계 기업에게 적용되지 않아 국내 기업에 대한 형평성 문제가 있다는 것 등 이익공유제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근거를 들어 지적했다.   

'지금은 지탄을 받더라도 미래를 위해 할 말은 하겠다'는 의지다. 그 연장선에서 할 말은 하는 전경련에 새로운 회장이 부임, 조직의 방패막이가 되어주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전경련에 대한 대중의 시선이 곱지많은 않지만, 다양한 현안들을 다루며 전경련의 존재의의는 씽크탱크 등 다양한 영역에서 증명됐다"면서 "신임 회장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적당한 인물이 전경련의 수장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