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최남수 지음, 새빛 펴냄.

이 책은 최근 국내외 경제 분야 핫이슈가 되고 있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와 기업 경영의 주요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같은 맥락에서 집중 분석한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는 기업이 주주의 이익뿐만 아니라 고객, 근로자, 거래기업, 지역사회 등 모든 이해관계자를 존중하는 경영을 하는 것을 뜻한다. 양극화 심화, 단기 실적 위주의 경영 왜곡 등 많은 부작용을 가져온 현행 주주 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개념이다.

저자는 먼저, 팬데믹과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으로 ‘자본주의 그레이트 리셋(Great Reset, 大개조)’이 이뤄질 것이며, 그런 움직임들 중 하나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의 전환일 것으로 예상한다.

◇美 대기업 총수 181인, 주주 자본주의 종언 ‘선언’

저자는 한국 전경련과 비슷한 성격의 미국 대기업 협의체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이 2019년 8월 발표한 '기업의 목적에 관한 성명(Statement on the Purpose of a Corporation)'이 “자본주의 역사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될 일”이라고 평가한다.

당시 성명서에는 GM, 보잉사, 뱅크오브아메리카, JP모건 체이스, 아마존, 애플 등 미국 대기업 총수 181명이 서명했는데, 이들이 주주 자본주의의 종언을 선언하고,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깃발을 올렸다는 것이다.

BRT 성명에는 다섯 가지 책무(commitment)가 포함되었다. 고객에게 가치를 전달하겠다, 근로자에게 투자하겠다, 거래기업을 공정하고 윤리적으로 대우하겠다, 지역사회를 지원하겠다, 주주를 위해 장기적 가치를 창출하겠다 등이다.

이어 2020년 초에는 다보스 포럼이 주주 중심의 기업 경영을 지양하고 기업과 연관된 모든 이해관계자의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고 선언하면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논의에 불을 붙였다.

저자는 미 바이든 행정부가 자본주의 체제의 개편과 혁신을 적극 추진할 것으로 예상한다. 바이든은 대선 기간 중 “기업은 근로자, 지역 사회, 국가에 대한 책임이 있다”며 주주자본주의를 끝낼 때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학계 “주주 중심 재무제표, 이해관계자 중심으로 바꿔야”

세계경제포럼(WEF)은 자본주의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기업이 실제로 이해관계자를 존중하는 경영을 하는지를 측정해 재무제표에 반영하는 등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작업에 나섰다고 한다.

저자에 의하면, 현재 세계경제포럼과 글로벌 공시표준 기관, 그리고 회계법인들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실천을 위한 통합 공시 기준을 만들고 있다. 이 기준이 마련되고 시행되면 이해관계자 중심의 장기적 가치 창출이 중시되는 새로운 자본주의 시스템이 가동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영국에서는 회사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된 상태이다. 법률과 제도는 물론 기업 경영, 회계 및 공시, 투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본주의의 대전환을 가시화하는 방안들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논의가 진행중이다. 가장 적극적인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기업의 미래가 돼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를 경영에 적극 반영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포스코, KT 등 기업도 이해관계자와의 소통을 중시하며 이를 반영하기 위한 다양한 ‘경영 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다.

학계에서는 현재의 주주 중심의 재무제표를 이해관계자 중심의 통합재무제표로 바꾸는 방안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투자자, ESG 친화적 기업 선호 ‘뚜렷’

ESG는 2006년 UN이 제정한 ‘책임투자 원칙(PRI)에서 처음 나온 개념이다. PRI는 기업에 대한 투자 여부를 결정할 때 ESG를 중시하도록 기준을 제시했다. 현재 세계적으로 2300개가 넘는 금융기관들이 이 원칙에 서명했다. 이들이 운용하고 있는 자산은 80조 달러를 웃돌고 있다.

ESG 중 E(환경, Environment)의 평가 요소는 기후변화 정책, 공기 및 수질 오염, 재생에너지 사용 등이다. S(사회, Social)는 인권, 제품 안전, 고객 관계, 지역사회와의 소통에 초점을 맞춘다. G(지배구조, Governance)는 이사회 구조, 투명성, 청렴성, 주주 관계 등을 집중 평가한다.

그간 기업 경영은 재무적 성과만을 중시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ESG와 같은 비재무적 요소를 핵심 요소로 고려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특히 ESG가 자본시장 투자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떠오르면서 요즘 주요 기관투자가들은 기업 가치를 평가할 때 ESG 준수 여부를 핵심적 기준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ESG를 중시하는 기업은 경영 성과도 좋은 것으로 나타난다. 2020년 7월 공개된 MSCI 보고서는 ESG 관리 수준이 높은 기업은 위험도도 낮고 수익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했다.

유니레버는 물을 훨씬 덜 쓰는 식기 세척 세제인 ‘선라이트’를 시판한 이후 기업 이미지가 좋아져 다른 제품까지 매출이 늘어나는 성과를 올렸다. 3M은 제조공정 개선과 폐기물 재사용 등 방식을 써서 22억 달러를 절감했다. 3만 5000대의 수송 차량을 전기차나 하이브리드 차량으로 전환하는 계획을 추진 중인 페덱스는 지금까지 20%의 차량을 교체해 연료 소비를 19억 리터 가까이 줄였다.

런던 비즈니스 스쿨의 연구진이 포천지가 선정한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을 대상으로 25년간에 걸쳐 조사한 결과 이들 기업의 주가 수익률은 다른 기업에 비해 2.3~3.8% 높게 나타났다.

국내 대기업들도 ‘ESG 경영’을 본격화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SK그룹과 현대자동차, 포스코, 네이버, 카카오, KB금융그룹, 신한금융그룹, 우리금융그룹 등이 ESG 경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올해는 ESG 가운데 환경 이슈가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미국이 파리기후변화협약에 재가입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각국 정부가 기후 변화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기업들도 잇따라 탄소 중립을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ESG에 대한 기업 입장도 뚜렷하게 바뀌고 있다. 종전에는 규제 회피 중심의 소극적 자세였다면 이제는 비즈니스 모델 측면에서 수익을 추구하는 적극적 입장을 보인다는 얘기다. 팬데믹 국면에서 경기 회복을 위해 각국 정부가 그린 뉴딜 정책에 나서면서 자금이 녹색 산업에 몰리고 있는 데다 자본시장에서 ESG 성과가 부진한 기업을 기피하는 투자자들의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핵심 가치는 기업 성장의 과실이 사회 전반에 흘러내리는 ‘낙수효과’를 복원해 골고루 잘 살고 환경 등 공존의 가치를 지켜 나가는 건강한 사회와 경제를 만들어 가자는 것”이라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