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똑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주말에 한참 출출하던 차에 라면을 두개나 끓이고 냉장고에 있던 햄이며,만두까지 넣었더니 커다란 냄비가 끓어 넘칠 듯 비좁았다. 결국 먹다가 다 먹지를 못하고 막내에게 도와달라고 했더니, 돌아온 대답이었다. 그 이후로도 비슷한 일이 여러 번이었다. 한동안 겨우 초등학교 5학년인 막내가 입버릇처럼 읊고 다니던 말이다.요즘 애들은 대체 어디서 저런 말을 배웠을까 하는 신기할 뿐이었다.어렸을 때부터 TV, 유튜브, 인터넷 등등 끝도 없는 미디어의 향연 속에서 자라난 아이였기에 접하는 말도 내가 어렸을 때와는 판이하다. 이렇듯 요즘은 겨우 초등학생만 되어도 이런 말을 잘 아는데,과연 그만큼 인간의 생각은 과거에 비해 훨씬 더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하게 되었을까?

어찌됐던 우리나라도 조만간 코로나 백신을 맞게 될 전망이다. 의료진부터 먼저 맞는 것은 확실한 것 같고, 내 차례가 언제가 될 지는 아직은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암흑 속이었던 펜데믹의 터널 끄트머리가 있기는 있구나 싶다. 화이자와모더나가mRNA를 활용한 백신으로 보급이 시작되고 있다. 그 뒤를 이어 다른 백신들도 거론되고 있고,치료제까지 조만간이라니 작년 이맘 때에 비하면 심적으로 부담은 한결 줄어든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mRNA 활용 백신 개발에는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백신 연구에 평생을 바쳐온 어느 한 사람의 지독한 헌신에 기인했다. ‘백신의 여왕’이라고 닉네임이 붙어 있을 정도인 헝가리 출신의 생화학자인 카타린카리코(KatalinKariko)박사가 그 주인공이다. 1955년 헝가리에서 출생한 그녀는 미국의 대학연구소에서 제안을 받고, 당시 공산체제의 헝가리를 목숨을 걸로 탈출한다. 하지만 연구의 성과는 더뎠고, 돈만 쓰게 만드는 카리코 박사를 대학들은 불법이민자로 협박하고 쫓아내기에 급급했다. 이때까지는 역사가 반복해온 흑역사의 연속이다. 필요에 따라 불렀다가 기대한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냉정하게 쫓아내 버리는 것은 자본주의가 더 심했다.

 

코로나 백신 개발도 합리성이 아닌 개인의 헌신 덕분

홀로 고군분투를 해오던 카리코 박사는 우연한 기회에 와이즈만(Drew Weissman) 박사를 만나게 됐고,부족하나마 연구비를 겨우 지원 받으며 공동연구를 진행할 수가 있었다. 그로부터 15년만에 안전성 문제를 해결했고 논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으니 그때가 2005년이다. 그녀의 연구가 있었기에 모더나와화이자가 코로나 백신을 전례가 없었을 정도로 짧은 기간에 백신을 개발하여 공급하게 됐다. 카리코 박사가 mRNA백신 개발에 매달린 지 3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 약이 되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카리코 박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합리성을 가장하여 그녀를 버렸지만,그녀 자신과 그녀의 가치를 알아준 와이즈만 박사 덕분에 세상은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라도 보유하게 되었다. 홀로 연구를 이끌어 온 것이나, 그녀를 국경을 넘어 초대하여 버린 환경이나 합리적인라는 면은 찾아 볼래야 볼 수도 없다. 그녀가 없었다면 또 다른 구세주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이 세상이 코로나의 터널을 벗어나기에는 훨씬 더 긴 시간을 암흑 속에서 보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최근에 인터넷에 올라온 모 군인의 글을 본 적이 있다.하사로 자대에 배치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겪은 에피소드를 인터넷에 올렸다. 먼저 모든 여군들이 이와 같지는 않을 것이고,여군이라 하여 비하하거나 할 생각은 전혀 없음을 먼저 밝힌다. 내용인즉슨 여군들의 어이없는 행태였다.남군이나 여군이나 할 것 없이 모든 군인들은 전쟁이 발발하면 부여 받은 임무를 완수하여 나라를 지키는 것이 기본중의 기본이다.그것이 곧 그 나라의 전투력이고,국방력이 된다.때문에 이런 역할에는 여군이라도 예외가 있을 수가 없다.

인터넷에 올라온 그 주인공의 부대에서는 달랐던 모양이다.특히 야외 훈련 시에는 D형 텐트를 치고 숙영을 하는 것이 기본이다.그런데 그 부대의 모 여군 중위가 가장 낮은 간부 계급에 있던 남군 하사를 불러서 하는 말이 “훈련 나가면 여군들 텐트를 칠 수 있는 병력을 잘 뽑고,훈련장에서는 지체없이 설치해야 한다”는 얘기였다.군인이라면 성별이나 계급을 막론하고 자신들의 숙영지는 책임질 수 있어야 하는데,여군들은 그 힘든 일을 남자 병사들에게 늘 미뤄 왔단다.

그러다 어느 날 대대장이 참석한 간부회의 말미에서 이 일을 넌지시 제기했고,이 말을 들었던 화가 난 대대장이 여군들을 불러모아 텐트를 치게 했다.하지만 어이 없게도 여군 간부들은 텐트 설치하는 작업도 제대로 알고 있지를 못했다.힘들고 귀찮다는 이유로 늘 야외 훈련에서 남자 병사들에게 시키고 닦달하기만 해왔던 이유였다. 여군이 되었던 남군이 되었던 장교나 하사관의 직급에 있는 군인이라면 병사들을 지도하고 감독하게 되어있고,이를 위해서는 병영의 각 사안들에 대해 먼저 알고 있어야 함이 당연하다.

결국 야외 훈련을 앞두고 그 부대의 모든 여군들은 텐트 치는 훈련부터 새로 받아야 했다. 평소대로 였다면 병사들에게 시키고 입으로만 전투하는 여군의 모습이었겠지만,그때 훈련은 달랐다. 물론 간부회의에서 문제를 제기한 그는 여군들의 눈엣가시가 되었겠지만 말이다. 텐트 하나도 제대로 칠 줄 모르는 군인이 병사들을 이끈다는 것,그럴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당연히 그러면 안 되지 않을까 심정이다. 이 정도가 합리성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이라 여길 수도 있겠다. 갈수록 가치관이라는 것의 폭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1707년 영연방이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스코틀랜드는 엄연한 독립 국가였다. 거기다가 파나마 지협의 다리엔이라는 곳에 식민지를 건설하여 제국이 되기를 꿈꾸고 있었다. 하지만 은행가이자 금융업자로 유명했던 윌리엄 패터슨이 제안하고 스코틀랜드 국민의 거의 모두가 동참하며 열화와 같이 타올랐던 세계 무역의 중심지를 건설하고 제국으로 건설하고자 하던 꿈이 나라 자체를 없애버리는 어이없는 결과로 끝을 맺었다.

1698년부터 그 이듬해까지 약 3,000명의 식민지 개척민들이 스코틀랜드에서 배를 타고 떠났다.민족주의를 내세워 국가 재산의 절반에 육박하는 엄청난 자산이 투자됐다. 패터슨은 다리엔지역에 낙원을 건설할 꿈에 부풀어 있었다. 뒤에 많은 사람들은 이런 일련의 사건을 두고 잉글랜드의 훼방 때문이라며 분노하기도 하지만 진정한 그 원인이 무엇이 되었던 간에 이해 할 수 없는 어이없는 것이 있다. 수년 동안 전국민들을 대상으로 투자를 권유하기도 하고, 설득을 해서 국민적인 열망을 불러일으켰음에도 패터슨은 다리엔에 단 한 번도 가본적이 없었다. 그가 카리브 제도에서 교역 활동에 참여했던 것은 맞지만 다리엔은커녕 파나마 지협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심지어 1968년 11월에 목적지에는 어찌어찌 도착은 했는데,대원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거기가 목적지라는 것도 모르고 배를 탔다. 배가 출항한 뒤에야 임무도 겨우 알게 됐다고 하는데,비밀에 부쳤던 이유가 경쟁사에 노출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결국 개척민으로 떠났던 3,000명 중에서 2,000명에 이르는 많은 사람들이 바다 위에서 그리고 식민 개척은 하지도 못하고 스페인과 잉글랜드의 틈바구니 속에서 희생됐다. 이처럼 한 국가의 명운을 결정하는 중요한 일에도 합리성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개인의 한계로 형성된 조직이 때로는 더 비합리적일수도

보통 개인의 합리성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조직을 만든다고 한다.하지만 조직생활을 하다 보면 합리를 가장한 불합리나 비합리가 너무나 만연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합리성은 일반적으로 논리 또는 이성의 적합성을 가리키는 개념이지만 사회과학에서는 어떤 행위가 목표 달성의 최적 수단이 되느냐의 여부를 가리는 개념으로 사용된다.현실에서는 어떤가 목표는 분명히 있지만 최적의 수단이냐 아니냐에 대한 것은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든다.

조직 생활을 하다 보면 실제 조직의 리더는 합리적인 전문가의 판단을 기대하기 보다는 자신이 내리는 판단을 보완해 주어, 자신이 듣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다.어찌 보면 그 길이 파국으로 치달을지라도 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 재무구조 개선이 요원해 보이는 대기업이 있었다. 그룹이 가지고 있던 땅이나 빌딩 같은 부동산은 물론 채권이나 계열사까지 팔아야만 하는 힘든 자구의 과정을 진행해야 했다.

괜찮은 계열사를 팔아야 할 때였다.그 계열사는 우리나라에서도 경쟁사가 드문 독특한 사업분야에 속해 있어서 두둑이 받고 팔 수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전략팀에서 딜을 진행하는 사람들에게 상당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 계열사를 제대로 된 가격에 팔고 나면 한동안은 재무적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지만,생각보다 지지부진 시간만 끌고 있던 프로젝트에 조바심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터지는 내부 외부 이슈에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것도 그런 기대감이 있어서 였으나, 그 결과는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예상치를 밑돌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전문경영인으로 있던 최고경영자는 비밀리에 자신의 회사를 프로젝트마다 참여시켜 귀신도 모르게 수수료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계열사를 매각하는 딜에 참여했던 인원들 중에서 여러 명이 딜에 자신을 끼워 넣어 함께 떠나갔다.회사의 적을 옮기는 것이야 개인의 선택이지만 당시로서는 충격이었다.

회사에서는 항상 전문가를 원한다고 하지만,실제로 전문가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곳이 많다. 전문가는 비전문가인 경영자의 의견을 그냥 두지 않기에 눈엣가시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결국 많은 회사들에서 전문가들의 의견을 좇기 보다는 즉흥적이면서도 문외한의 의견에 따라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합리성에 전혀 미치지 못한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항상 남들보다 먼저 나와서 미리 준비해놓는 사람이 있다. 꼭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열정적이고 능동적으로 일한다. 보통 다른 사람들 몫까지도 서슴없이 한다. 바보 같아서 남들이 해도 될 일을 떠 맡는 것이 아니다. 책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다.백신 개발에 수십년을 홀로 고군분투한 것,조직을 위한 것도 때로는 합리적이지 못하다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반대 쪽의 비합리적인 것은 조직을 망치고 나아가서는 나라까지 말아 먹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