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가장 강력한 자'는 누구일까? 무시무시한 전투력으로 무장해 상대방을 단숨에 제압할 수 있는 자? 침착하고 냉정한 판단으로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자? 무조건 오래 살아남는 자?

틀렸다. 가장 강력한 자는 게임의 규칙을 만드는 자들이다.

이들은 시장을 지배하고 조종하면서 수 많은 군웅할거의 역사를 관전하다 때가 무르익었다 싶으면 단숨에 게임의 규칙을 바꿔버린다. 버튼 하나면 끝난다.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다.

출처=위키디피아
출처=위키디피아

게임스탑 사태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는 서학개미들과 공매도 세력의 전투가 한창이다. 게임스탑 주식을 둘러싸고 주가를 올리려는 서학개미들과 주가를 떨어트려 이득을 보려는 월가의 공매도 세력이 정면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쟁은 여러가지 이야기거리를 남기고 있다.

우선 게임스탑의 '미친' 주가 변화는 그 자체로 투자업계의 전설이 될 전망이다. 올해에만 무려 1600% 이상의 상승세를 보인 가운데 하루만에 투자자들을 천당과 지옥으로 안내하는 롤러코스터가 됐다.

게임스탑 사태에서 서학개미들의 맹공에 힘을 쓰지 못하는 공매도 헤지펀드인 시트론은 한 때 SK텔레콤이 투자했던 나녹스를 공격했던 곳이기도 하다. 국내 투자자들에게 게임스탑 사태가 상당히 익숙한 이유다. 그 연장선에서 시트론에게 2019년 공격을 당했던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가 공매도 세력을 두고 "사기"라 일갈하며 사태는 더욱 흥미진진하게 흘러가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게임스탑 사태는, 지금까지 월가 헤지펀드들에게 형편없이 당하기만 했던 개미들의 유쾌하고 통쾌한 반란이 현실에서 드라마처럼 펼쳐졌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

실제로 서학개미들은 레딧에 모여 서로 토론하며 전략을 가다듬거나, 로빈후드와 같은 무료 증권앱을 통해 전격적인 전투를 벌여 기어이 골리앗을 무너트리고 있다.

기관이 볼 수 있는 자료와 개미가 볼 수 있는 자료까지 철저하게 차별하는 대한민국의 개미들이 이번 게임스탑 사태에 크게 흥분하는 이유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고, 벌떡 일어나 이빨을 드러낼 수 있다"

여담이지만 투자업계에서는 이번 게임스탑 사태를 이끌어낸 서학개미들의 '반란'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ICT 증권 플랫폼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본다. 로빈후드와 같은 무료 증권 거래 서비스들이 시장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은 가운데 증권 및 투자에 관심을 가진 서학개미들이 손쉽게 주식투자에 뛰어든 것이 바로 게임스탑 사태의 포석이라는 뜻이다.

국내에서는 조만간 토스증권을 출범시키는 비바리퍼블리카나, 카카오의 카카오페이 증권 등 다수의 핀테크 기업들이 ICT 기술을 바탕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이들은 주식투자를 하고 싶어도 방법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 다가가 '전 국민 주식투자 시대'를 열어준다는 각오다. 비바리퍼블리카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현재 주식투자를 하지 않지만, 앞으로 할 계획인 응답자 중 절반 이상인 54%는 하는 방법을 몰라서 주식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고 답한 바 있다.

토스증권이나 카카오페이 증권이 이 54%의 '주린이'들을 모아 주식시장에 투입한다면, 우리에게도 게임스탑 사태와 같은 유쾌한 반란이 마냥 꿈은 아니다. 

출처=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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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현 상황에서 게임스탑 사태는 서학개미들의 승리로 굳어가는 중이다. 공매도 헤지펀드는 투항에 가까운 백기를 들고 전선에서 철수하고 있으며, 개미들의 대장인 전직 보험사직원 키스 질은 조만간 꿈에 그리던 '내집 마련의 꿈'을 이룰 전망이다. 버니 샌더스 열풍으로 이어진 2011년 월가 1% 시위가 이제 현실이 되고 있다.

그러나 게임의 규칙을 만드는 자인 월가는 쉽게 주도권을 내어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7일(현지시간) 서학개미들의 아지트이자 게임스탑 주식의 매입 창구던 로빈후드가 개인매수를 막아 버렸다. 헤지펀드들은 자유롭게 게임스탑 주식을 거래할 수 있었으나, 서학개미들이 몰려든 로빈후드가 개인거래를 막아버리며 서학개미의 화력은 크게 반감됐다. 로빈후드는 "투자자와 시장을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으나 서학개미들은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한편 논란이 커지자 로빈후드는 28일(현지시간) 개인거래를 다시 시작했고, 그 즉시 게임스탑 주식은 시간 외에서 32% 폭등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29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로빈후드의 개인거래 중단에 대해 정식으로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출처=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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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을 만드는 자들
로빈후드가 개인거래를 한 때 중단하면서 서학개미들은 큰 혼란에 빠졌다. 이런 가운데 월가의 '거대한 권력'이 게임의 법칙을 바꾸는 장면에 새삼 전율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실제로 30일 현재 레딧 등 커뮤니티에는 "개인 투자자들의 맹공에 직면해 힘을 쓰지 못하던 월가가 아예 개인투자를 막아버리는 게임의 규칙 변경을 통해 최후의 발악에 나서고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이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한 사안이다. 자유경제주의체제 최후의 보루이자 탐욕스러운 자본주의자들이 지켜온 마지노선인 '게임의 규칙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회와 결과의 평등 원칙이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자본주의 체제를 지켜내고 수호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명분이 바로 '노력하면 올라갈 수 있다'는 전제였다. 물론 자본주의 체제가 곳곳에서 고장을 일으키며 2000년대 중반 글로벌 경제 위기 후 부의 불평등 문제가 대두되는 한편 '노력하면 올라갈 수 있다'는 전제는 월가 1% 시위로 그 생명력을 대부분 상실했다.

그러나 이제는 '노력하면 올라갈 수 없지만, 어떻게든 올라가도 게임의 규칙이 간단히 바뀌는 순간 다시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전제가 만들어지고 있다. 게임스탑 사태와 로빈후드의 개인거래 중단은 자본주의의 단말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일이 비단 월가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실리콘밸리도 마찬가지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1월 7일(현지시간)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우리 서비스를 계속 이용하도록 할 경우 너무 위험하다는 판단을 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페이스북 계정을 정지시켰다. 트위터도 비슷한 정책을 발표하며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입을 막아버렸다.

당시는 미 의회 난동 사건으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을 향한 비판이 고조되던 때였다. 무엇보다 그에 대한 탄핵까지 시사되며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돌발상황을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런 이유로 가짜뉴스를 남발하던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소셜 미디어 활용을 두고 급진적인 논의들이 있었고, 그 연장선에서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계정을 중단했다.

문제는 이러한 실리콘밸리의 선택이, 과연 어떤 기준을 바탕으로 '선과 악'을 정하느냐는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인플루언서가 위험한 콘텐츠를 올렸다고 플랫폼이 스스로 나서 그 진실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거대한 생태계를 창조한 이들이 스스로의 정의에 따라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도 마찬가지다. 시장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각 국의 제도권 금융당국은 대부분 비트코인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금세탁 등에 활용될 수 있으며 그 가치에 있어 확실한 증명이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도 분명히 토큰 이코노미 등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으며 중앙집중형 금융 시스템의 폐혜를 보완할 수 있는 잠재력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제도권 금융당국이 무조건 탄압에만 나서는 것이 과연 옳을까? 과연 그 선택을 그들에게만 맡겨도 되는 것일까?

게입스탑 사태 당시 로빈후드의 개인매매 중단, 페이스북 및 트위터의 트럼프 당시 대통령 계정 중단, 각 국 금융 규제당국의 일방적인 비트코인 탄압은 모두 '게임의 규칙을 정하는 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들을 과연 좌시해야 하는 것일까? 이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공공의 의무를 들먹이는 농간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는 증거는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그 무시무시한 권력을 어디까지 용인해야 하나? 많은 질문들이 쏟아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자들이 등판했다는 것은 그 게임이라는 시스템이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시스템을 뒤흔들고 깨트리며 더 새로운 길을 찾으려는 모험가들이 등장하면서 '끝판왕'인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자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뜻이다. 그 마지막 보루가 무너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 이후의 세상은 무엇일까. 우리가 지금 주목해야 하는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