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 이상 모임 금지가 시행되기 직전이었지만, 코비드19 확진자가 세 자리 수에 육박하자 몇 안 되던 모임들도 하나 둘 취소되기 시작했다. 밖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던 몇몇이 그 중 한 사람의 집에서 모이기로 했다.

그 집에 초대받아서 가장 눈에 띈 것은 안주인의 아름다움과(글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추가했다), 거실의 한쪽 벽면을 거의 다 채우다시피 한 대형 TV였다. 우리 집 거실 벽 한 켠을 10년째 지키고 있는 TV를 떠올려보니 순간 초라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압도적인 크기의 그 대형 TV로, 넷플**, 유튜* 같은 영상들을 노트북이나 스마트폰 연결 없이 바로 볼 수 있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거냐고 신기해하며 물어보니, 그 친구가 날 신기해했다.

요즘 핫하다는 넷플** 시리즈물을 초 고해상도(UHD)로 보여주고 있는 그 스마트한 TV는 못해도 천만원 가까이 될 것처럼 보였고, 거실에 그런 시스템을 구비한 그 친구의 재력이 대단해보였다. 그런데, 슬쩍 물어보니 요즘 75인치 TV가 백오십 정도라며 85인치를 사고 싶었지만 너무 비싸서 못 샀단다.

어느 취업포털(인크루트)의 조사에 따르면, 2020년 2월 기준으로 신입사원의 세후 실수령액은 대기업 월 289만원, 중견기업 월 249만원, 중소기업 월 212만원으로 전망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신입사원 한 달 월급으로도 무려 75인치 TV를 살 수 있는 것이다. 필자가 성형외과 전공의를 할 때 한 달 월급으로는 뒤에 무거운 브라운관이 달린 40인치 TV도 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국내 기업의 과학기술 수준도 눈부시게 발달하고 대량 생산이 가능해진 것이다. 게다가 자체적으로 와이파이를 인식하고 플레이되는 영상 앱들이 탑재되어 있으니, 그 편의성이 놀라울 따름이다.

75인치 티비의 선명한 화면을 보고 있으니 몰입감이 느껴진다.

몰입은 내 의지가 필요한 능동적인 행위이지만, 몰입감은 그냥 나를 맡기면 되는 수동적인 것이다. 눈앞에 장관이 펼쳐지면 저절로 감탄사가 나오듯이, 시야를 가득 채우는 고화질의 대형 화면 역시 보는 이로 하여금 화면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압도적인 몰입감을 느끼게 하며 감탄을 자아낸다.

그러나 백오십만원의 돈으로 살 수 있는 몰입감은 온전히 내 것이 아니다.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 더욱 필요한 것은 몰입이다. <몰입의 즐거움>의 저자인 미국의 긍정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는 우리의 삶에서 행복감을 느끼기 위한 조건으로 순간순간 '몰입(flow)'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몰입하지 않고 맛보는 행복은 외적인 상황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반면, 몰입에 의해 오는 행복은 스스로의 힘으로 만든 것이므로 더 값지다는 것이다.

책에 따르면, 몰입(flow)은 ‘무언가에 흠뻑 빠져 있는 심리적 상태’를 의미하고,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심취한 무아지경의 상태를 말한다. 몰입을 ‘흐름’이라는 뜻의 ‘플로(flow)’로 명명한 것은, 몰입에 의한 심리적 최적 경험을 한 사람들이 ‘마치 하늘을 날아가는 자유로운 느낌’ 또는 ‘물 흐르는 것처럼 편안한 느낌’이라고 묘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몰입은 ‘완전한 집중’과 관련된 심리적 상태를 가리킨다.

여러 의사들의 집도를 옆에서 지켜본 경험이 많은 우리 마취과장에게 필자가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난 돌출입수술이 너무 즐거운데...다른 집도의들도 수술하는 걸 재미있어 하나요?”

답은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집도의는 외롭다. 환자는 마취되어 의사(意思)를 물을 수 없는 상태에서, 미적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순간순간 혼자 결정하고 스스로 디자인하고, 해부 생리학적으로 안전한 범위를 지키며, 자르고, 옮기고, 붙이고, 꿰매야 한다. 사실 이것은 엄청난 스트레스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몰입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과제의 도전수준, 즉 수술의 난이도는 높은데, 개인의 기술수준, 즉 수술 실력이 낮다면, 불안, 걱정, 각성과 같은 심리상태를 보이게 된다고 한다. 수술할 때 화내고 짜증내고 소리 지르는 집도의가 존재한다면 이런 이유일 것이다.

* * *

필자는 수술이 즐겁다.

광대뼈수술과 사각턱수술에도 몰입하게 되고 물론 즐겁지만, 특히 필자가 돌출입수술에서 몰입의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 것은, 몰입을 촉진하는 요인에 관한 긍정 심리학 이론으로 설명된다.

첫째, 목표가 분명하고 구체적인 과제에서 몰입이 잘 일어난다고 한다.

돌출입수술의 목표만큼 적확(的確)한 것이 없다. 튀어나온 입을 넣는 것이다. 단순하고 분명하다. 그런데, 돌출입 수술의 목표는 그냥 수술 전보다 보기 좋게 정도의 막연한 것이 아니고, 이상적인 기준선에 맞추어 누가 봐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수술 전 분석을 통해 잇몸뼈 절골 및 이동의 계획표가 밀리미터 단위의 거리와 실측 각도로 작성된다. 이것보다 더 명료하고 구체적인 수술계획이 있을 수 있을까? 거기에 환자의 취향을 반영해서 목표를 더 디테일하게 만드는 것은 과제의 난이도를 높여 더욱 더 몰입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둘째, 피드백이 빠른 과제가 더 큰 몰입을 하게 한다는 것이다.

돌출입수술만큼 수술 직후에 바로 그 결과를 볼 수 있는 수술은 드물다(물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수술을 할 수 있을 때 그렇다). 예를 들어 쌍꺼풀수술 직후의 쌍꺼풀은 결코 아름다울 수 없다. 만약 쌍꺼풀 수술 직후에 너무 아름답다면 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 이유는, 붓기가 빠지고 나면 쌍꺼풀이 거의 사라지거나 속쌍꺼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돌출입 수술 직후에 환자가 거울을 보고 만족해하고 감사해하는 모습을 보는 뿌듯함이, 필자가 돌출입수술에 몰입하게 하는 원동력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셋째, 과제의 도전 수준과 개인의 기술 수준이 모두 높을 때 몰입 상태를 경험하기 쉽다고 한다.

즉, 수술에 있어서 몰입 상태를 경험하고 몰입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려면, 과제의 도전 수준과 개인의 기술 수준, 즉, 수술난이도와 집도의의 수술 실력이 모두 높아야 하는 셈이다. 필자가 난이도 높은 수술에 집중하게 된 것은 아마 숙명이었을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기술수준이 높은데 과제의 도전 수준이 낮아지면, 권태감이나 이완감을 느끼게 되고, 이것은 사실상 강렬한 몰입이 깨진다는 의미이다. 20년 넘게 돌출입수술에 집중해오면서 수술이 손쉽게 느껴지면 결국 몰입도가 낮아질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그 이유는, 누군가의 가족인 건강한 환자가 전신마취된 상태에서 그의 인생 2막의 얼굴을 내게 완전히 믿고 맡긴 상황에 대한 사명감 때문이며, 또한 환자마다 조금씩 다른 해부학, 다른 요구가 존재해서 이완감을 느낄 겨를이 없이 항상 최고 수준의 주의를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돌출입수술 뿐 아니라 동시 턱끝절골 수술로 완벽한 입매를 만들기 위해 마지막 한 바늘이 끝나기 전까지 미학적 판단과 아름다움의 완성에 몰입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특히 턱끝수술은 과제의 난이도를 스스로 높여온 면이 없지 않다. 더 적합한 길이, 위치를 찾기 위해 1 mm 이하까지도 미세조정을 하는 것, 턱선에 남을 수도 있는 계단(2차각)을 제거하거나 더 매끈하게 다듬는 과정은 해부학적으로 난이도가 매우 높다. 턱끝신경(mental nerve)의 경로와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종종, 다 끝난 수술의 봉합을 다시 풀고 턱끝 위치를 재조정하기도 한다. 이런 과도한 완벽주의는 물론 환자를 위한 것이지만 어찌 보면 필자 스스로의 강렬한 몰입을 위한 것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연구에 의하면, 개인이 지닌 최고의 기술 수준을 발휘해야 하는 도전적 과제를 수행할 때 몰입이 더 잘 이루어진다고 한다. 환자가 어디선가 얻어 온 악결과로 인해 정말 거절하고 싶을 정도로 어려운 재수술인데 막상 수술이 시작되면 오히려 몰입하게 되고 즐겁게 느껴지는 것도 이것으로 설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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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수술장에서 나를 부르는 콜(call)이 올 것이다.

필자는 수술장에서 준비가 다 되었다고 해서, 다급하게 수술을 들어가지 않는다. 마시던 차를 더 마시기도 하고, 듣던 음악을 마저 듣거나, 읽던 글을 조금 더 읽기도 한다. 치던 피아노 소품곡을 마저 치기도 하고, 쓰던 글을 좀 더 쓰거나, 입원 환자를 잠깐 다시 보기도 한다.

물론 기껏 5분 정도 더 여유를 부리는 셈이지만, 운동으로 치면 시합이 시작되기 전에 스트레칭을 하거나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는 것과도 같다. 오랜 경험으로, 수술을 급하게 들어간다고 더 빨리, 더 잘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몰입하기 위해 달려드는 것은 진정한 몰입을 오히려 방해한다. 그 잠시 동안의 여유는 강렬한 몰입의 순간을 맞이하기 전, 안단테의 서막과도 같은 것이다.

수술에 들어가서 집중하기 시작하면, 몰입의 이론과 오버랩 되는 현상들을 경험한다.

이를테면, 얼굴뼈의 종합선물이라고 불리는 소위 윤곽 3종 수술과, 돌출입수술까지 같이 하게 되면 수술 시간이 세 시간이 넘어가기도 하는데, 그동안 대부분 서 있어도 다리나 허리가 아프다고 느끼지 못한다. 시간의 흐름도 망각한다. 긴 시간이 순간처럼 짧게 느껴지는 시간의 왜곡을 경험한다는 점도, 몰입 이론에 부합한다. 물론 집중한다는 명목으로 너무 긴 시간을 허비해선 안 된다. 미술 작품처럼 밤을 새서 몰입할 수는 없는 일이다. 환자를 위해서 수술시간, 마취시간을 가능한 한 줄여야하며, 돌출입수술의 경우 한 시간 이내에도 충분히 마무리가 가능하다. 환자의 안전과 합병증 가능성에 주의해야 함은 물론이다.

수술하는 동안 잠깐이지만 나는 환자의 인생을 산다. 이 환자가 내가 수술해주는 얼굴로 평생을 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필자에게 각성이나 불안이 아닌 즐거움과 설렘을 준다. 수술 부위가 확대경으로 본 것처럼 자세하고 또렷하게 보이게 되며, 몰입하는 대상과 하나가 된 듯 한 일체감, 몰아지경(沒我之境)을 경험한다. 어떤 잡념도 생기지 않는다. 몰입의 즐거움이란 이런 것이다. 수술이 끝나고서야 온 몸에 소위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오고 푹신한 소파에 잠시 나를 맡긴다. 몸은 힘들지만 방금 아름다운 비행을 끝내고 지상에 내려앉은듯한 아늑함과 달콤함이 덤으로 찾아온다.

소위 워라밸(work-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은 사실 일(work)은 괴로운 것이고, 그러므로 일을 끝낸 후 자기 삶(life)과 여가를 즐기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러나, 필자는 나의 일,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인 수술에 몰입하는 즐거움을 가지고 살고 있으니, 대단히 큰 축복이라고 여기며 감사한다. 몰입 경험은 그 자체가 즐거운 것으로서 자기 충족적인 속성을 지닌다고 한다.

그렇다고, 수술의 목표가 나의 즐거움인 것은 아니다.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그런 이타심은 결국 자기만족이고 그 사람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듯이, 필자의 몰입과 그 즐거움도 필자만을 위한 이기심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환자를 위한 길이다. 집도의는 즐겁고, 환자는 행복해진다면 더 바랄 게 없다. 필자가 돌출입수술과 얼굴뼈 수술에 전념해온 집중과 몰입이 앞으로도 계속 환자들의 인생에 긍정적인 삶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 환자들도 몰입의 즐거움을 경험해본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사실은, 몇 분 전 쯤 수술장에서 콜이 왔다. 이제 들어가야 한다.

오늘 환자는 얼굴에 이미 손을 많이 댄, 사연 많은 환자다. 돌출입을 어떻게든 커버해 보겠다고 환자는 여기저기서 참 많이도 수술을 했다. 그 중 몇 가지는 안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일찍이, 미국 성형외과 교과서 <맥카시 성형외과학>, 제 44장 <아시아인에서의 미용성형수술>을 집필한 일본 성형외과의사 키타로 오모리는, 아시아인에서 돌출입을 이마, 코, 턱끝의 실리콘 보형물 삽입 등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인위적인 느낌의 성형미인(整形美人;seikeibijin)이 된다고 설명한 바 있다. 소위 ‘성괴’(성형괴물)가 태어나게 되는 학문적 배경이 이것이다.

환자는 지금 수술대 위에서 인생의 마지막이 될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다름 아닌 돌출입수술이다. 필자는 잠시 후 수술실에서 편안하고 자유로운 그러나 완전하고 강렬한 몰입의 비행을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