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엄청 추울 때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여자용 가죽 장갑 오른쪽 한쪽을

주워 경비아저씨에게 전달했습니다. 나이가 들은 건지, 긴장을 놓고 지내서 그런지

나도 올 겨울에 가죽 장갑과 등산용 장갑의 오른쪽을 각기 잃어버린 뒤 끝이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아침에 허둥지둥 나왔다가 무언가 허전함을 느끼고 이내 집에 다시 가서 마스크를

제대로 쓰고 나오는 일도 잦고, 우산도 자주 잃어버립니다.

이런 일이 잦아 찾아본 치매 쪽 자료에 지남력을 말하며 TPP 순으로 잊는다고 써있던 데,

T(Time)는 시간, P(Place)는 장소, 마지막 P(Person)는 사람을 말하는 겁니다.

아직 사물을 잊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까지 하게 되었지요.

암튼 한참 잊는데 익숙해지니 그 장갑을 잃어버린 사람의

투덜거림이 그려져 그게 제대로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려니 했는데, 저녁 때 돌아오는 길에 보니 아저씨는 그 장갑을

경비실 앞 의자에 무심히 놓아두었더군요.

경비아저씨는 그걸 찾아가길 바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인 현물 전시로 거기에 놓았겠지만,

다소 성의가 없어 보였습니다.

‘물건 귀한 것 너무 몰라주네... 최소한 경비실 앞의 알림문에 써놓기라도 하시지..’

그런 내 마음속 궁시렁 거림과는 다르게 장갑을 맡긴지 일주일,

아직도 의자에 그대로 놓여있습니다.

‘이건 뭐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건이 넘쳐나는 세상에 내가 공연히 꼰대 짓을 한 걸까요?

문득 머릿속에 여러 과거 일들이 스쳐갑니다.

우산을 자주 잃어버리는 사람이 대범(?)한 거라는 얘기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일상용품인 우산 챙김이 너무 쪼잔하게 비친다는 말이었겠지요.

또 생각납니다. 시골 가서 음식 남기고, 버리면 벌 받는다는 어른들의 막무가내 권유에

그걸 끝까지 먹고는 속이 불편해 힘들어했던 일도 떠올랐습니다.

경비아저씨를 불편하게 생각한 것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세상이 변했는데, 내가 꼰대같이 생각한 것입니다.

새해 이런 유사한 일이 내 주변에서, 또 집 안팎에서 많이 일어나겠지요.

어르신들은 여전히 마음에 안 들겠지만, 그럴 때 살짝 눈감아주는 마음을 가지려합니다.

내 스스로에게는 꼰대처럼 기준을 들이댈 수 있어도,

남에게는 그런 기준을 들이대지 않는 자세,

그걸 가져보려는 거죠. 좀 헐렁해지려는 겁니다.

그건 그렇고, 나처럼 오른손잡이들은 오른쪽 장갑을 잃어버릴 확률이 높을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왼손잡이들은 왼쪽을.

장갑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도 유사한 사례가 많이 있을 듯합니다.

그런 류들을 잘 모아서 서로에게 도움 되는 ‘잘 잊자’라는 커뮤니티를 하나 만들고 싶습니다.

잊었어도 그게 다시 쓰이게 되면 ‘잘 잊은 것’이 되니,

커뮤니티 모임을 ‘잘 잊자’로 해도 뭐 그리 큰 무리는 아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