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두산인프라코어
출처=두산인프라코어

[이코노믹리뷰=이가영 기자] 두산인프라코어가 중국법인 두산인프라코어차이나(DICC) 주식매매대금과 관련한 소송에서 법원으로부터 사실상 승소 판결을 받았다. 매각 작업이 성공적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 판결로 자구안 마련의 리스크를 덜 수 있을 전망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동반매도청구권 등 불씨가 여전히 남아있어 안심하기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법원, 상고심서 원심 판결 파기 결정

14일 대법원 민사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미래에셋자산운용, 하나금융투자 등 재무적투자자(FI)들이 두산인프라코어를 상대로 낸 매매대금 지급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매매대금 100억원을 지급하라는 원심의 판결을 깨고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두산인프라코어가 투자 소개서 작성 등에 대한 자료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는 등 원고에 대한 협조 의무를 위반했다는 원심 판단은 타당하다”면서도 “두산인프라코어가 원고의 자료 제공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신의성실에 반해 조건 성취를 방해했다고도 보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두산 측이 투자자들에게 실사 협조 의무를 위반하는 등 정보공개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지만 이 행위가 지분 매각을 방해한 것은 아니라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금번 소송의 발단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 2011년 DICC를 3년 안에 상장하겠다며 FI들에게 중국법인 20%를 3800억원에 팔았다. 대신 상장에 실패할 것을 대비, FI가 인프라코어가 보유중인 지분 80%를 함께 매각할 수 있는 동반매도청구권(DragAlong·드래그얼롱)도 단서조항에 포함했다. 

드래그얼롱은 소수 주주가 자신의 지분을 매각할 때 대주주의 지분까지 함께 팔도록 요구하는 권리를 뜻한다. 투자자 입장에서 드래그얼롱은 투자금 회수를 담보하는 일종의 안전장치인 셈이다. 

이후 2014년 DICC는 기업공개(IPO)에 실패했고 투자자들이 시도한 지분 매각도 무산됐다. 그러자 FI들은 두산인프라코어가 매각에 협조하지 않았다며 매매대금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진행된 1심과 2심의 판단은 엇갈렸다. 1심에서는 원고 패소로 판결하며 두산 측의 손을 들어줬다. FI들은 자신들이 권리를 행사하는 즉시 드래그얼롱의 효력이 발생한다고 주장했지만, 1심은 발효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두산 측이 드래그얼롱의 행사를 방해했다는 주장도 인정하기 힘들다고 판결했다.

반면 2심은 FI 주장을 받아들여 두산인프라코어가 10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심은 두산인프라코어가 매각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지 않는 등 드래그얼롱의 행사를 방해한 것으로 판단했다. 양측이 맺은 계약에 DICC의 IPO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두산인프라코어가 매각 절차에 협력할 의무가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는 이유에서다.

출처=두산인프라코어
출처=두산인프라코어

최종 승소 가능성 높지만… 불씨 남아

대법원이 두산인프라코어의 주장을 받아들이기로 하면서 두산은 우발 채무에 대한 부담을 한시름 덜어낼 수 있게 됐다. 추후 파기환송심 재판이 다시 열리게 됐지만 대법원이 두산인프라코어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만큼 최종 승소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업계에서는 소송가액과 이자를 포함해 최대 1조원 규모의 우발 채무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해왔다. 소위 '차이나 리스크'다.

FI가 청구한 금액은 100억원대지만 두산인프라코어의 책임이 인정될 경우 FI로부터 DICC 지분을 되사야해 이자 등을 더한 실제 지급 액수는 8000억원~1조원에 달할 것이란 관측이었다.

이는 두산인프라코어 매각의 변수로 꾸준히 지적돼왔다. 채무 발생시 인프라코어를 매각하더라도 그룹에 들어오는 돈이 없어 재무구조 개선안 이행이 차질을 빚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즉, 배보다 배꼽이 큰 상황이었다. 

하지만 DICC 소송이 일단락되면서 두산그룹의 3조원 자구안 마련을 통한 경영정상화에 속도가 나게 됐다.

현재 두산그룹은 클럽모우CC(1850억원), 네오플럭스(730억원), ㈜두산 모트롤BG(4530억원), 두산타워(8000억원), 두산솔루스(6986억원) 등을 순차적으로 매각하며 채권단과 약속한 3조원 자구안 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나아가 두산은 이달 말 현대중공업지주-KDB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과 인프라코어 주식매매계약(SPA) 체결을 앞두고 있다. 이 지점에서 소위 차이나 리스크가 일정정도 해소, 두산의 자구안에 서광이 비추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다만 일각에서는 두산이 최종 승소하더라도 안심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법원이 두산이 실사 협조 의무를 위반한 것은 맞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만큼 승소를 단언하긴 섣부르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승소하더라도 FI의 동반매도청구권은 유지된다. 즉, 투자자들이 권한을 행사하면 DICC는 언제든 제3자에게 매각될 수 있다. 이 경우 두산이 인프라코어의 매각을 성사시키기 위해선 FI들이 갖고 있는 지분 20%를 되사와야 해 추가적인 자금이 투입될 수 있다. 

두산그룹은 재판 진행여부과 별개로 두산인프라코어 매각은 예정대로 진행하겠다는 방침이다. 두산 관계자는 “이후 매각과 관련한 절차는 차질 없이 진행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업계 관계자는 “DICC로 인한 우발 채무 리스크를 털면서 인프라코어 매각도 속도를 내게 될 것 같다”며 “캐시카우인 밥캣을 매각에서 제외할 수 있게 됐다는 점도 두산그룹에는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라데나CC, 두산메카텍, 산업차량BG 등의 추가 매각으로 조기에 채권단 관리를 졸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