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세계 최초로 코로나19 접종

코로나19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영국. 세계 주요국 수장 가운데 최초로 보리스 존슨 총리가 감염되었고, 이후 내각의 일부 각료까지 확진 판정을 받았다. 12월 12일 현재, 총확진자는 1,811,381명, 사망자는 63,554명을 기록했다.

지난 12월 8일, 그런 영국에서 또 한 번의 세계 최초가 발생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 것이다. 영국 공영 BBC 방송은 첫 접종자는 북아일랜드 에니스킬린 출신 90살 여성 마거릿 키넌이라고 전했다.

이날 오전 6시 31분, 키넌은 잉글랜드 코번트리 대학병원에서 미국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엔테크가 공동 개발한 백신을 맞았다. 그리고 키넌은 “코로나19 백신을 처음 맞게 되어 아주 영광스럽다”고 감개무량하게 소감을 밝혔다.

이와 함께, 키넌은 “지금까지는 거의 혼자서 지냈는데 새해에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만날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가장 좋은 생일 선물을 미리 받은 것 같다”며 “90살 먹은 나도 맞았으니 당신들도 맞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키넌의 첫 접종 이후, 영국 정부는 전국에서 80살 이상 노인을 상대로 백신 접종에 들어갔다. 잉글랜드 지역에 50개 거점 병원을 지정했고 다른 지역도 병원을 중심으로 접종을 실시했다. 백신 접종은 2차례 접종으로 마무리된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의 정치학

영국에서 코로나19의 공포는 중세시대 페스트 수준이었다. 물론 14세기에 창궐한 페스트는 7,500만 명에서 최대 2억 명까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므로, 지난 1년간 63,554명이 사망한 코로나19와 직접 비교는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최첨단 의료 과학을 자랑하는 선진국 영국이 코로나19 창궐로 인해 받은 충격은 상상 이상이다. 존슨 총리가 중환자실에 입원한 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당황한 국민을 위해서 특별 연설을 해야 할 정도로 매우 심각했다.

그래서 영국은 여러 이유를 들어 접종을 주저한 미국과 달리, 코로나19 접종을 바로 실시했다. 키넌의 첫 접종 이후, 맷 핸콕 영국 보건장관은 “코로나19 백신을 접종을 시작하는 이번 주는 역사적 순간이 될 것”이라며 감격했다.

그런데 코로나19 백신 접종에는 영국 정부의 은밀한 정치학이 숨어 있다. 바로 브렉시트와 관련된 영국 정부의 국가 경영 방식이다. 무심결에 지나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키넌의 접종 이후, 영국은 브렉시트에 관해 하나가 되었다.

첫 접종자 키넌은 영국 정부가 고심해서 발탁한 인물이다. 북아일랜드 출신, 90살, 여성. 키넌은 브렉시트를 반대하고, EU에 잔존하려던 북아일랜드 출신이다. 코로나19의 공포감을 잠재운 백신 접종. 키넌의 발탁은 우연이 아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영국은 하나다.

여성 최초로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한 사람이 키넌이라면, 남성 최초로 접종한 사람은 81살의 윌리엄 셰익스피어이다. 영국 언론 매체들은 이 남자의 이름이 공교롭게도 영국을 대표하는 유명한 극작가와 이름이 똑같다고 보도했다.

정말로 공교로운 일에 불과할까? 81살 남성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거주지는 잉글랜드 중부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 인근. 잉글랜드 워릭셔 주 남부에 위치한 이 도시는 16세기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출생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키넌과 마찬가지로, 셰익스피어의 접종도 영국 정부가 미리 정한 일이다.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가 바로 99살 남성 마이클 티브스이다. 티브스는 제2차대전 당시 최전방에 섰던 영국 해군 참전용사 출신이다. 우연이 아니다.

몬머스셔 주 뉴캐슬에 사는 우간다 태생의 은퇴 교사 부부 하리 슈클라(87) 박사와 그의 아내 란잔(83)도 백신 접종을 받았다. 출생지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슈클라 박사 부부는 정통 영국인이 아니다. 지극히 상징적인 인물이다.

잉글랜드 전역의 50개 병원을 비롯해, 영국 전역의 거점 병원에서 실시된 코로나19 백신 접종. 영국 정부는 브렉시트를 염두에 둔 접종자 선택을 했다. 백신 접종을 통해, 영국 정부는 북아일랜드에게 의료 국경을 확인시켜 주었다.

 

코로나19가 가른 영국과 EU

코로나19 창궐 이전, 브렉시트에 대한 영국의 의견은 결집되지 못했다. 북아일랜드가 문제였다. 브렉시트를 주장하는 영국과 달리, 북아일랜드는 EU에 잔존하려고 했다. 북아일랜드는 궁극적으로 아일랜드와 통일하려는 계획이었다.

영국은 어떻게든 북아일랜드와 함께 브렉시트를 단행하려 했고, EU는 영국에 대해서 북아일랜드의 자치권을 강요하지 않도록 압박을 가했다. 경제 통일은 정치 통일의 초석임을 아는 영국과 EU의 미묘한 줄다리기가 계속되었다.

구교 중심의 아일랜드와 신교 중심의 북아일랜드는 16세기부터 갈등이 시작되었다. 1921년 아일랜드는 독립, 1949년 북아일랜드 영국 잔류를 선택했다. 그러나 신구교 간 갈등이 벌어지자, 1969년 영국 정부는 유혈진압에 나섰다.

그러자 1972년부터 영국 정부에 대한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의 저항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양자간 처절한 갈등 관계는 “북아일랜드의 귀속 문제는 북아일랜드인들의 자유의사에 맡긴다”는 1998년 벨파스트 합의로 겨우 봉합되었다.

그런 가운데 진행된 브렉시트. 북아일랜드는 영국으로부터 분리되어 아일랜드와 통일을 꿈꿨지만, 코로나19가 찬물을 끼얹었다. 영국 정부는 아일랜드 제공할 수 없는 코로나19 백신으로 북아일랜드를 품었다. 브레시트는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