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코로나19는 글로벌 경제를 불확실성의 경계로 밀어 넣었으나 온택트 트렌드의 확장을 끌어내어 디지털 경제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그러나 이커머스 및 게임 등 비대면을 전제로 한 사업만 코로나19의 수혜를 받은 것이 아니다. 각 국의 공격적인 양적완화에 펜트업 수요가 맞물리며 가전 시장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초 프리미엄 가전 시대가 왔다'는 단편적인 접근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따른 코로나 블루(우울증) 및 레드(분노) 현상, 나아가 펜트업 수요 확대와 홈 이코노미 전반의 흐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아가 보복소비의 행간에서 부의 양극화를 경계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삼성전자의 웨비나가 열리고 있다. 출처=삼성전자
삼성전자의 웨비나가 열리고 있다. 출처=삼성전자

'억억억'
11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가전 부문 매출은 각각 14조900억원, 9조8252억원으로 전년 대비 27.3%, 15% 급증했다. 대부분의 라인업이 고른 성장을 거둔 가운데 특히 TV에서는 도쿄 올림픽 특수를 상쇄하고도 남을 역대급 성적을 기록해 눈길을 끈다.

여세를 몰아 제조사들은 초 프리미엄 TV까지 속속 선보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10일 웨비나(Webinar) 시스템을 활용해 '마이크로 LED TV' 110형 신제품을 전격 공개했다. 2018년 처음으로 B2B 시장을 겨냥한 마이크로 LED 디스플레이 '더 월(The Wall)'을 출시해 호평을 받은 가운데, 이번에는 가정용 마이크로 LED TV를 전격 공개한 셈이다. 출고가는 1억 7000만원으로, 12월 중 예약 판매를 진행하고 내년 1분기에 본격 출시 예정이다.

마이크로 LED는 프리미엄 TV의 강자인 OLED TV를 넘어서는 강력한 무기로 평가받는다.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초소형 LED를 이용해 백라이트나 컬러필터 같은 구조를 없애고 LED 자체가 스스로 빛과 색을 내는 진정한 자발광 TV라는 점에서 OLED TV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지만 마이크로 LED의 RGB(Red, Green, Blue) 소자는 기존의 TV 디스플레이들과는 다르게 각 소자가 빛과 색 모두 스스로 내는 유일한 제품으로, 실제 사물을 눈으로 보는 것과 같은 자연 그대로의 색상을 경험할 수 있다.

800만개가 넘는 각각의 RGB소자가 따로 제어되기 때문에 화면의 밝기와 색상을 아주 정밀하게 표현할 수 있다. 무엇보다 무기물 소재를 사용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무기물 소재는 유기물 소재와 달리 수명이 10만 시간에 이르기 때문에 화질 열화나 번인(Burn-in) 걱정 없이 오래 사용할 수 있다. 번인 이슈가 종종 벌어지는 OLED TV와는 차별성이 크다.

삼성전자는 110형 마이크로 LED TV를 공개하며 반도체 사업으로 축적된 실장 기술도 보여줬다. TV에 보다 더 적합하도록 기존 제품 대비 더 촘촘하고 정밀한 소자 배열을 통해 110형 상용화에 성공했으며, 110형보다 더 작은 크기의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기술도 이미 확보했다는 설명이다. 디자인면에서도 콘텐츠와 스크린, 스크린과 벽의 경계를 없앤 '모노리스(Monolith) 디자인'을 적용하고 로고도 옆면으로 배치해 마이크로 LED만의 정체성을 살릴 수 있는 제품 디자인을 구현했다.

사운드는 5.1채널의 자체 사운드를 통해 '아레나 사운드(Arena Sound)'를 적용했으며 영상 속 사물의 움직임에 맞춰 사운드가 스피커를 따라 움직이는 삼성만의 차별화된 사운드 기술인 'OTS Pro(Object Tracking Sound Pro)'를 적용한 것도 강점이다. 신제품에는 110형 화면을 50형 화면 4개로 분리해서 볼 수 있는 '쿼드뷰 (4Vue)' 기능도 도입했다.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한종희 사장은 "현존하는 최고의 디스플레이 기술이 집약된 마이크로 LED TV를 선보이게 돼 기쁘다"며 "마이크로 LED TV는 기존 TV와는 차원이 다른 혁신적 기술을 품은 새로운 디스플레이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가정용 마이크로 LED TV에도 약점은 있다. 삼성전자는 대량생산 체제를 빠르게 자신하고 있으나 아직은 업계의 의문부호가 달리는데다 소자 문제로 110형 TV에 4K만 지원한다는 것도 미흡한 대목이다. 소자에 자본을 투여하면 더 높은 화질이 가능하지만 아무래도 가정용 TV로 출시하기 때문에 내린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마이크로 AI 프로세서(MICRO AI Processor)'를 통한 보정 작업이 들어가는 이유다.

한편 LG전자도 한 칼이 있다. 1억원대 가격이 책정된 LG 시그니처 OLED R이 그 주인공이다.

패널 뒤에 강화유리를 붙인 ‘픽처온글래스’ 그림이 벽에 붙어 있는 듯한 ‘월페이퍼’별도 주변 기기 없이 TV 전체를 벽에 밀착하는 ‘갤러리 디자인’ 화면을 말았다 펼치는 ‘롤러블’로 무장했다. 65형(대각선 길이 약 163센티미터) 화면을 통해 화소 하나하나가 스스로 빛을 내는 OLED의 강점을 잘 표현했다는 평가다.

백미는 역시 롤러블 TV라는 점이다. 고객이 시청할 때는 화면을 펼쳐주고 시청하지 않을 때는 본체 속으로 화면을 말아 넣는다. 외관에는 리얼 알루미늄을, 스피커에는 명품 패브릭 브랜드 크바드라트(Kvadrat) 원단을 적용해 클래식하면서 고급스러운 디자인도 강점이다.

LG전자는 LG 시그니처 OLED R을 공개하며 세계적 명차 브랜드 벤틀리(Bentley)와 공동 마케팅을 진행하기도 했다. 초 프리미엄 가전의 강점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LG전자 한국HE마케팅담당 손대기 상무는 “초프리미엄 고객들의 라이프스타일까지 고려해 LG 시그니처 올레드 R만의 차별화된 가치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지속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단 TV에만 초 프리미엄 가전의 트렌드가 스며드는 것이 아니다. 삼성전자는 프로젝트 프리즘을 중심으로 비스포크 등 다양한 라인업을 공개하고 있으며 LG전자는 시그니처 브랜드에 강력한 동력을 집중시키고 있다. 여세를 몰아 LG 오브제컬렉션까지 출시하며 다양한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중이다. 최근 LG전자는 러시아 푸쉬킨미술관,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American Ballet Theater), 이탈리아 라 스칼라(La Scala) 오페라극장 등과 협업해 LG 시그니처의 예술적 감성까지 강조하고 있다.

출처=LG전자
출처=LG전자

코로나 레드, 그리고 펜트업
초 프리미엄 가전제품의 상승세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업계에서는 코로나19 사태와 큰 관련이 있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코로나 블루 현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이 만 18세 이상 전국 2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8월 기준 코로나19 뉴스를 통해 '분노'를 느낀다는 답변이 무려 25.3%를 기록했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며 이제 우울증을 넘어 분노의 단계까지 이르렀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현상이 펜트업과 맞물리는 한편 각 국의 공격적인 양적완화를 만나는 순간 초 프리미엄 가전에 대한 '보복소비' 패턴으로 이어진다는 말이 나온다. 강경민 GLT 마인드섹터연구소 부소장은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되며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코로나 레드 현상도 심각해지고 있다"면서 "재난지원금 등 유동성 공급이 단행되며 각 가정에서 일종의 보복소비에 나서는 분위기가 역력해지는 것은 사실"이라 말했다.

서울시 강서구에 거주하는 주부 윤 모씨도 "하루종일 집에만 있으며 아이들을 돌보면 무료함을 넘어 화가 날 지경"이라면서 "눈에 들어오는 것이 집과 가전제품이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으니 자연스럽게 가전제품을 바꿔 볼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비단 가전제품 시장에서만 연출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올해 11월까지의 수입차 판매량은 24만3440대를 기록했으며 이는 역대 최고치다. 전년 동기 대비 21만4708대 대비 13.4% 증가하며 놀라운 성적을 기록하는 중이다. 심지어 백화점에서는 1000만원이 넘는 초 프리미엄 침대가 전년 대비 100% 성장하기도 했으며 인테리어 시장도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주요 6개 업체 기준 3조3600억원의 결제가 이뤄져, 전년 대비 54%의 증가율을 보였다.

코로나19로 이동이 어려워지며 홈 이코노미 전반의 분위기가 뜨거워지는 대목도 엿보인다. 인테리어 비용의 증가와 더불어 홈 시어터 등 가정의 모든 용품과 배치, 환경을 재편하려는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24일 발표한 ‘11월 소비자동향 조사 결과’에 따르면 11월 중 소비자심리지수는 97.9로 전달보다 6.3포인트 올라갔으며 이는 코로나19 직전인 2월 96.9를 웃도는 수치다.

ICT 기술의 발전도 이러한 흐름에 큰 역할을 했다. 오프라인 상점 이동이 어려워지며 온라인을 통한 이커머스의 영역이 확장, 소비의 진입장벽을 크게 낮추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11번가는 지난 3일 지난 1년간 11번가를 통해 계약 및 출고된 자동차 수가 1800대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일반 자동차 영업사원이 한달에 5대씩 1년에 60대의 차량을 판매한다면, 11번가에서만 30명의 영업사원이 1년간 판매한 차량이 고객에게 전달된 셈이다. 즉, 기존에는 온라인으로 구매하기 어려웠던 제품들이 속속 편입되며 소비의 진입장벽이 낮아졌다는 뜻이다. 코로나19의 후폭풍 중 하나다.

출처=11번가
출처=11번가

양극화 문제도 있다
코로나19가 온택트를 비롯해 홈 이코노미의 가능성을 키우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양극화의 문제에서 진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내 소비심리가 다시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나 코로나19 상황이라는 불확실성이 여전하다는 쪽에 주목해야 한다는 뜻이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법인 EY한영은 지난 2일 EY 미래 소비자 지수(EY Future Consumer Index) 5차 보고서를 통해 글로벌 소비자 42%는 연말 지출 규모를 줄일 것이라 답했다고 밝혔다. 큰 틀에서 코로나19 사태가 여전한 가운데 쉽게 지갑을 열지 못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국내도 비슷하다. 한국은행이 10일 발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고용시장은 장기화 국면으로 이미 접어들었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종사상 지위나 산업별 등 부문별로 고용 회복 속도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결국 양극화다. 한쪽에서는 소비심리가 살아나고 있으나 전반적인 시장 상황이 어렵다면, 이는 보복소비의 트렌드보다 일종의 부의 양극화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 것으로 봐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6일 부유세 도입을 공개적으로 제안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문제는 쉽게 생각할 대목이 아니다. 지난 2000년대 중반 글로벌 경제위기 당시 부의 양극화 문제가 대두된 바 있으며, 이를 통해 온디맨드 플랫폼 비즈니스가 성과를 내며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보여준 적이 있다. 빛도 분명하지만 지위가 불안정한 특수 고용 노동자 양산 등 그림자도 선명했다는 점에서 특히 한국에서 외환위기 직후 양산된 비정규직 문제가 더욱 꼬여버린 바 있다.

경고는 이미 선명하다. 스위스 은행 UBS와 회계·컨설팅 업체 PwC 보고서는 지난 10월 보고서를 통해 억만장자의 부는 지난 2017년에 비해 13% 증가한 반면 빈곤층의 숫자는 더욱 많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전세계 극빈층 수가 코로나19로 인해 20년만에 처음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세계은행의 발표까지 나왔다. 전 세계 극빈층이 최대 1억5000만 명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