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10일로 예정된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영업비밀 침해 사건에 대한 최종판결을 또 유예했습니다.

각자의 주장이 충돌하는 가운데 '누가 더 유리한가'를 두고 많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결론적으로 '오리무중'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실제로 ITC의 예비판결을 보면 LG에너지솔루션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ITC가 이례적으로 최종판결을 세 번이나 연기하며 바이든 행정부에 '판단의 공'을 넘긴 것을 보면 ITC가 조지아 공장 건설에 나서는 SK이노베이션을 의식하고 있다는 말도 나오기 때문입니다.

다만 ITC의 판단 유예가 두 회사 모두에게 '마이너스'에 가깝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누가 최종 승리를 하든 상처뿐인 영광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당장 K 배터리의 두 거인이 도합 4000억원이 넘는 비용을 '태우며' 미 법조계의 양적완화에 나서는 소모전에 몰두한 가운데 중국 배터리 업계는 조금씩 외연을 확장하는 한편 최근에는 국내 인력 빼가기에 나서고 있습니다. 결국 ITC의 판단유예는 '불확실성의 증대'를 의미하며, 이는 선명한 마이너스의 징후입니다.

엉거주춤
국내 배달앱 시장도 불확실성의 증대라는 늪에 빠졌습니다.

지난해 말 요기요를 보유한 딜리버리히어로는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의 합병을 선언했습니다. 관련된 기업결합 심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공정거래위원회는 현재 최종 결론 발표를 앞두고 있습니다. 딜리버리히어로의 요기요와 배달의민족이 합쳐질 경우 시장 독과점이 우려되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면밀한 조사에 들어간 것으로 파악됩니다.

문제는 장고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양사가 합병을 신청한지 1년이 지난 가운데 최종 결정은 계속 미뤄지고 있습니다. 당초 9일 관련 전체회의를 열 계획이었으나 이는 23일로 다시 연기됐고, 일각에서는 '해를 넘기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옵니다.

업계에서는 조속한 결단을 촉구하는 한편 공정위가 '큰 그림'을 봐야 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현재 국내 배달앱 시장 상황을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출처=갈무리
출처=갈무리

11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배달앱 시장은 배달의민족, 요기요, 배달통의 3강 체제가 완전히 깨졌습니다.

실제로 닐슨코리안클릭에 따르면 9월 기준 배달의민족 점유율은 59.7%로 독보적인 가운데 요기요는 30.3%, 쿠팡이츠는 6.8%, 위메프오는 2.3%, 배달통은 1.2%의 점유율을 기록하는 중입니다. 한 때 10% 내외의 점유율을 자랑하던 배달통 점유율이 하락하며 이를 쿠팡이츠와 위메프오가 나눠갖는 형국입니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대현 플랫폼 사업자의 영역도 커지고 있습니다. 홈플러스나 GS프레쉬 등 대형 마트와 손잡은 네이버의 동네시장 장보기 입점 시장 수는 70곳에 육박하고 있으며, 네이버는 스마트주문 개편을 통해 배달 중개 사업에도 속도를 내는 중입니다. 카카오의 카카오톡 주문하기도 50개 프랜차이즈가 입점해 상당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중입니다.

덕분에 시장도 커지고 있습니다. 이제 배달앱 시장 규모가 20조원에 육박한다는 말까지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공정위는 딜리버리히어로에 요기요를 매각해야 배달의민족을 인수할 수 있다는 의견서를 제출하는 선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는 모양새입니다.

시장의 크기가 커지고 플레이어가 다양해지고 있다는 뜻이며, 바꿔 말해 시장 자체가 역동적으로 흘러가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단순 배달앱 시장을 넘어 배달 중개에 있어 소상공인과의 연합을 전제로 하는 띵동이 띵마트를 포기하는 등 선택과 집중이 벌어지는 한편, 푸드테크 전반의 새판짜기가와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는 말이 나옵니다. 속속 등장하고 있는 공공 배달앱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공정위의 빠른 결단을 촉구하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시장 상황이 매 순간 달라지는 격변이 벌어지는데 공정위는 판단을 미루고만 있다"면서 "그 자체가 시장의 불확실성이다. 업계 1위 사업자가 처한 상황을 면밀히 파악하고 다양한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전격적인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출처=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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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판단이 필요할까?
공정위가 전격적인 판단을 내린다면, 그 지향점은 어디에 있어야 할까. 이 문제도 상당히 예민한 주제입니다.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공정위의 고민은 무엇일까. 우선 딜리버리히어로가 독일계 기업이라고는 하지만 회사는 최근 현지 서비스를 대부분 접었기 때문에, 배달의민족이 게르만민족이 될 것이라는 우려는 사실상 사라졌습니다. 실제로 최근 독일 현지 언론에서는 딜리버리히어로가 독일계 회사가 아니라는 비판이 쇄도하기도 합니다. 이 지점은 공정위가 고민할 대목이 아닌겁니다.

공정위는 두 회사의 합병을 승인했을 때 닥쳐올 시장 독과점의 폐혜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우아한형제들이 지난 4월 오픈서비스 사태를 일으키며 시장의 오해를 샀던 사례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공정위는 말 그대로 시장의 독과점에 따른 고객의 피해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장고의 배경이기도 합니다.

다만 '큰 그림'을 봐야 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딜리버리히어로와 우아한형제들의 합병에만 천착하지 말고, 김봉진 전 대표의 우아DH아시아의 비전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지금 인수합병 정국에서 많은 이들이 합병 그 자체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사실 우아DH아시아의 비전도 그에 못지 않은 관심을 받을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국내 인터넷 업계에서 역대급 엑시트를 시도하는 사례가 나온 상태에서, 김봉진 전 대표라는 매력적인 사업가가 딜리버리히어로와 만나 싱가포르에 합작회사(JV)를 만들어 우아DH아시아를 통해 아시아 시장을 공략한다는 대목에 무게를 둬야 한다는 뜻입니다.

배달의민족이 진출한 베트남 사업은 물론 딜리버리히어로가 진출한 아시아 11개 나라의 비즈니스를 모두 총괄한다는 설명입니다. 딜리버리히어로는 현재 대만, 라오스, 말레이시아, 방글라데시, 싱가포르, 태국, 파키스탄, 필리핀, 홍콩 등에서 배달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김 전 대표는 딜리버리히어로의 경영진 중 개인 최대 주주가 되며, 본사에 구성된 3인 글로벌 자문위원회의 멤버가 되기도 합니다.

아쉬울 것도, 주저할 것도 없는 도전의 시작입니다. 만약 이 아시아 시장 공략 여정이 성공한다면 딜리버리히어로가 국내서 '쪼잔하게' 수수료 장사에 목을 맬 이유가 있을까요? 없습니다. 푸드테크 전반의 판을 흔들며 아시아 시장을 공략해 글로벌 시장으로의 전격전을 벌이는데 왜 거마비에 집착할까요.

만약 합병이 이뤄진다면 전제로 배달의민족과 요기요는 독립 운영을 약속했고, 수수료 인상도 없을 것이라 못 박았습니다. 이 약속을 믿지 못한다면 추후 규제로 강력한 제어장치를 설정하면 끝입니다. 2009년 이베이코리아의 G마켓 인수 사례까지 거론할 필요도 없이, 토종 인터넷 사업가의 글로벌 시장 진격전 비전을 열어줘야 합니다.

아시아나항공을 살리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며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대한항공과 인수합병을 열어준 정부 국책은행 산업은행과 같은 과감한 비전은, 왜 인터넷 업계에서는 보이지 않을까요. 이런 상황에서 판단까지 늦어지자 배달의민족은 공격적인 마케팅을 불사하지 못하고 다양한 플레이어에 둘러싸여 기초체력만 소진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시장 전체로 보면 나쁘지 않은 상황이지만, 선을 넘으면 곤란합니다.

김봉진 전 대표가 대담회에 나서고 있다. 사진=최진홍 기자
김봉진 전 대표가 대담회에 나서고 있다. 사진=최진홍 기자

국경은 없다
미국의 최대 배달앱 플랫폼인 도어대시가 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됐습니다. 상장 직후 주가가 공모가 대비 85.79% 상승하는 잭팟을 터트리며 세상을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기업가치는 718억달러를 기록했으며 비전펀드를 통해 2018년부터 약 6억8000만달러를 투입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모처럼 흐뭇하게 웃었습니다. 부모를 따라 네 살에 미국으로 온 가난한 소년이던 토니 쉬 도어대시 창업자도 31억달러의 지분가치를 인정받으며 대부호가 됐습니다.

승승장구 도어대시의 현지 시장 점유율은 50% 이상으로 배달의민족 점유율과 비슷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도어대시는 강력한 존재감을 바탕으로 검색, 식사 사전 주문, 고스트키친까지 아우르는 대형 플랫폼으로 성장하는 중입니다.

여기서 인터넷 시대는 국경이 없다는 전제를 다시 한 번 들쳐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 소프트뱅크의 자본력으로 무장한 쿠팡의 쿠팡이츠가 이미 국내 배달앱 시장을 뒤흔드는 상황에서 국내 배달앱 시장이 글로벌 시장과 무관한 갈라파고스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언젠가는 영향을 주고받으며 글로벌 시장이라는 단일 무대에서 일전을 겨룰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시기가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언젠가 때가 된다면, 그리고 공정위의 전격적 판단 및 큰 그림이 없다면, 우리는 가장 유력한 대항마를 잃은 상태에서 맨 몸으로 디지털 식민지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출처=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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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전망이 쉽게 믿어지지 않는다면 우버의 사례를 살펴볼 필요도 있습니다.

미국 배달앱 시장도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속에서 연일 꿈틀대는 중입니다. 특히 도어대시에 이어 미국 배달앱 시장 2위 사업자 우버의 존재감이 선명합니다. 당장 우버의 3분기 실적을 보면 차량공유 사업의 분기 조정 순매출이 13억7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무려 52%나 줄었으나, 우버이츠를 바탕으로 하는 배달 사업의 조정 순매출은 11억4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190% 급상승했습니다. 총주문액은 배달사업이 85억5000만달러를 기록해 2분기에 이어 차량 공유 비즈니스(59억1000만달러)를 압도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런 가운데 우버이츠는 지난 7월 미국 4위 음식배달 업체인 포스트메이츠를 26억5000만달러에 인수했습니다. 우버이츠는 포스메이츠를 별도로 운영할 예정이며 이를 바탕으로 현지 시장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보입니다. 딜리버리히어로의 우아한형제들 인수와 비슷한 그림입니다. 반드시 미국식 모델이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합종연횡을 통해 힘의 응축을 끌어내며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는 우버의 사례는 국내 시장 독과점에만 천착하는 우리의 사정과 묘한 대비를 이룹니다.

심지어 도어대시의 대주주인 소프트뱅크는 우버의 대주주기도 합니다. 소프트뱅크는 산술적으로 미국 배달앱 시장 1위, 2위, 4위를 품어낸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때가 되면, 우리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공정위의 고민이 한없이 가볍다는 뜻은 아닙니다. 시장 독과점에 따른 폐혜, 그에 따른 소상공인의 피해는 분명 우리 모두가 치밀하게 고민하고 치열하게 해결해야 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우려가 되는 부분에는 강력한 견제 장치를 설정하고 비전이 보이는 곳은 과감히 밀어주어 '미래'를 대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인터넷 시대는 국경이 없습니다. 강력한 신식무기로 무장한 '이앙선'이 느닷없이 대동강에 나타났듯이, 우리는 이에 대비해 큰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IT여담은 취재 도중 알게되는 소소한 내용을 편안하게 공유하는 곳입니다. 당장의 기사성보다 주변부, 나름의 의미가 있는 지점에서 독자와 함께 고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