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올해 글로벌 반도체 업계는 시장의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 가격이 하락하는 현상이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다. 나아가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반도체 공급 규제로 수요는 더 줄었고 이는 전 세계 반도체 기업들에게 타격을 주고 있다.

분석업체들은 올 연말 반도체 가격의 폭락을 예상했고 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게 분명한 악재였다. 그러나 연말에 접어들자 반도체 가격 하락 폭은 줄어들었고 내년에는 반도체 수급의 안정화가 이뤄진다는 전망도 나오기 시작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대응에 시선이 집중된다.

모든 문제의 원인 '공급 과잉'  

현재 글로벌 반도체 가격의 하락세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메모리 반도체, 특히 그 중에서도 D램 가격이다. 서버용 D램(32GB)의 글로벌 거래가격은 올해 5월 143.1달러를 기록하며 연중 최고가를 기록했다. 여기에는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한 언택트 기술 구축 수요의 증가로 인해 증가한 수요가 반영됐다.

오름세에 있는 반도체 가격을 고려해 미리 대량의 반도체를 구매해 비축해두는 전자 기업들도 있었다. 이러한 수요에 맞춰 각국의 반도체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제품을 생산했고 시장 공급량은 점점 늘어났다. 그러나 이러한 수급은 곧 시장의 불균형을 불러일으켰고 지난 5월을 기점으로 서버용 D램의 가격은 하락하기 시작한다. 5월 143달러 수준이었던 서버용 D램의 가격은 7월 134달러, 8월 128달러, 9월 122달러 그리고 지난 10월에는 112달러까지 하락했다. 5개월 동안 약 21.67% 하락한 것이다.      

PC용 D램(DDR4 8Gb)도 사정은 같았다. 3달러 이상에 마무르던 PC용 D램의 가격은 지난 10월 2.85달러까지 떨어졌다. 이러한 가격 하락의 원인은 명확했다. 바로 공급의 과잉이었다. 제품별로 가격 등락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었으나, 산업적 가치가 있는 거의 모든 반도체들은 ‘공급과잉으로 인한 가격하락’이라는 큰 틀 안에서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9월부터 시작된 미국 정부의 화웨이 반도체 공급 규제는 강제적으로 가뜩이나 모자란 반도체 수요를 더 줄이는 효과를 냈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해 3분기와 4분기 D램의 가격이 지난해 대비 15%에서 최대 18%까지 하락할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2020년 3분기, 4분기 D램 가격 전망. 출처= 트렌드포스
2020년 3분기, 4분기 D램 가격 전망. 출처= 트렌드포스

하락세의 둔화 

끝을 모르고 하락하던 반도체 가격은 11월에 접어들면서 그 하락의 속도가 줄어든다. PC용 D램,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가격의 하락세가 이전과 비교할 때 확실히 더뎌진 것이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11월 PC용 D램(DDR4 8Gb) 글로벌 거래가격은 지난 10월과 동일한 2.85달러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낸드플래시의 가격도 10월과 변동 없이 유지됐다. 다만 서버용 D램 가격은 이전과 비슷한 수준의 하락세를 이어갔다. 

물론, 공급과잉으로 인한 반도체 가격하락의 추세 자체에는 큰 변화가 없다. 화웨이 수요분은 여전히 완벽하게 대체되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시장에 넘치던 반도체의 재고들이 서서히 소비되기 시작하면서 서버용 D램을 제외한 품목들의 가격 하락이 당초의 예상보다 더뎌지기 시작했다.    

“멀리 본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반도체 가격의 하락은 분명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게 부정적인 시장 변동이다. 그러나 두 기업은 상황에 따라 생산량을 약간씩 조정하는 대응 외로는 특별히 현 상황을 ‘위기’로 인지한 방안을 내놓지는 않았다. 대신 곧 정상화될 시장의 상황을 고려해 장기적 관점에서 반도체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더 주력하고 있다. 

지난달 마이크론 사가 세계 최초로 176단 적층 낸드플래시를 공개하며 업계는 “글로벌 낸드플래시 1위 업체인 삼성전자의 입지에 드디어 위기가 찾아왔다”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당초 ‘싱글 스택’임을 강조한 마이크론의 낸드플래시는 실제로는 더블 스택이었고 결론적으로 이는 삼성전자의 128단 싱글 스택 낸드플래시보다 기술력이 떨어지는 제품이었다.

공개 초기에는 싱글스택임을 강조했으나 실제로는 더블스택 제품이었던 마이크론의 176단 낸드플래시. 출처= 마이크론
공개 초기에는 싱글스택임을 강조했으나 실제로는 더블스택 제품이었던 마이크론의 176단 낸드플래시. 출처= 마이크론

낸드플래시 적층 단수에서 묘하게 자존심에 상처가 난 삼성전자는 지난 11월 30일 열린 ‘삼성전자 투자자 포럼 2020’에서 256단 적층 ‘더블 스택’ 차세대 V낸드(vertical NAND) 플래시 생산에 도전할 것이라고 공표했다. 당장의 시장성은 불투명하지만 멀리 내다본 관점에서 고효율 플래시메모리의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삼성전자의 계산이었다.  

SK하이닉스 역시 멀리 내다보는 관점으로 자사의 반도체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 10월 20일 SK하이닉스는 미국 인텔 사의 낸드플래시 사업부문을 약 10조원에 인수하겠다는 계획을 공표했다. 이를 통해 SK하이닉스는 낸드플래시 부문에서 삼성전자에 이은 업계 2위 기업으로 도약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빅 사이클이 온다?  

여러 가지 조짐들을 통해 현재 글로벌 반도체 업계는 시장의 정상화와 ‘반등’의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업계에서는 2021년 D램을 포함한 반도체 업종은 1분기 중 실적 저점을 찍고 이후에는 반등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2021년 D램의 총 수요는 서버 업체들의 재고 정상화, 스마트폰 업체들의 경쟁적 제품 출시, 콘솔 게임기 판매 호조 등의 영향으로 올해 대비 17%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러한 전망은 시장 전반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는 것을 의미하는 ‘빅 사이클’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분위기 반전은 스마트폰이 이끌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현재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화웨이가 잠시 주춤하며 점유율이 줄어든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삼성전자, 오포, 비보, 샤오미 등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이러한 경쟁은 내년 초부터 예정된 신제품 스마트폰의 조기 출시와 각 제품들의 출하량 경쟁으로 이어져 모바일 D램의 수급 상황을 개선할 전망이 나오고 있다.  

키움증권 박유악 연구원의 D램 수급 전망. 출처= SK하이닉스 뉴스룸
키움증권 박유악 연구원의 D램 수급 전망. 출처= SK하이닉스 뉴스룸

키움증권 박유악 연구원은 “2021년 D램 수급 상황은 올해(Oversupply Ratio 5.1%) 대비 크게 개선돼 소폭의 공급 부족(Oversupply Ratio -0.2%)으로 전환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덧붙여 박 연구원은 “주요 전방 산업별 수요 성장률(Bit Growth)도 대체로 증가세가 예상되며 스마트폰용 반도체는 올해 대비 22%, 서버용은 올해 대비 28%, 그래픽용은 올해 대비 24%, PC용은 전년 대비 17% 증가할 것으로 각각 예상된다”라면서 “특히 스마트폰용의 경우 판매량 회복이 기대되며, 서버의 경우 판매량과 탑재량 모두 동반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