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전지현 기자] 코로나에 힙입어 급물살 탄 택배 시장이 올 들어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하지만 택배 기사들은 늘어난 짐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례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135조2640억원. 2001년 3조3470억원에 비하면 40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올해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9월 누계 기준 116조4310억원에 달하면서 155조원 돌파가 예상되고 있다. 온라인쇼핑이 급증하면서 택배 이용도 덩달아 늘었다. 국토교통부와 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2000년 국민 1인당 2.4개에 그쳤던 연간 택배 이용횟수는 지난해 53.8개까지 증가했고 올해는 64개를 수령할 것으로 예상되는 중이다.

한달에 5~6개 꼴이다. 지난해 국민이 이용한 택배 27억8980만 상자를 쌓아올리면 높이가 81만km에 이르러 지구에서 달(38만km)까지 왕복하고도 남는 거리가 된다.

수익성 늪에 빠진 국내 택배사

하지만 국내 택배기업들의 수익성은 맥을 못추고 있다. 국내 3대 택배기업으로 평가되는 CJ대한통운, 한진택배, 롯데글로벌로지스의 지난해 택배사업부문 영업이익률은 0%~3%대 수준을 보였다. 시장점유율 91.5%에 육박한 3대 택배사들 매출은 꾸준히 증가하지만, 영업이익률 이 초라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특히 롯데글로벌로직스는 2014년부터 영업이익이 감소하다 2017년 영업손실 204억원을 정점으로 지난해 적자 73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엔 코로나19 수혜로 그나마 상황이 나아졌다. CJ대한통운 영업이익율은 2~3%대에서 5.51%까지 올라섰고, 1~3% 수준을 유지하던 한진택배도 4.7%까지 늘었다. 롯데글로벌로직스도 영업이익 14억원을 기록하며 적자탈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황금시대를 구가하는 택배산업의 영업이익률치고는 턱없이 낮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원인은 택배시장 평균단가에 있었다. 그간 업계 특성상 차별화가 어려워 '치킨게임'을 하던 주요 택배기업들이 저단가경쟁을 무기로 삼았기 때문이다. 1990년대까지만해도 택배단가는 개당 5000원에 육박했다. 그러나 한국통합물류협회와 상공회의소에 따르면 2006년 2807원이었던 국내 택배시장 평균단가는 2018년 2229원으로 낮아졌다가 지난해 2269원이 됐다. 지난 12년간 단 한차례의 인상없이 하락했던 가격이 지난해에야 겨우 40원 오른 것이다.

반면, 최저임금 상승, 작업환경 개선비용과 안전시설 보강 등에 따른 비용 부담은 계속 늘었다. 지속적인 시설 투자의 어려움과 고객 차별화 전략 사이에서 택배 업계 부담감은 가중되고 있다.

삼정KPMG 경제연구원은 '국내 택배산업 해법 찾기' 보고서를 통해 "대형택배사가 택배 단가 인하를 주도하고 있다"며 "택배 산업은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대규모 인프라를 갖추고 고객을 확보할수록 효율성이 높아져 단가 인하 여력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출혈경쟁이 부른 약자의 희생

'출혈경쟁'에 대한 상처는 고스란히 택배기사에게 갔다. 택배업체간 과당경쟁으로 평균 단가가 '헐값'이 되면서 대형화주, 택배회사, 대리점, 택배기사 4자가 나눠 먹는 수익분배 구조상 택배기사들이 수수료 한푼을 더 벌기 위해 노동강도를 높여갔기 때문이다. 하루 평균 노동 12.1시간, 한달 평균 물품 배송 4421건, 건당 배송수수료 800원이 택배기사들 몫이었다.

각각이 건당 2200원 수준의 돈을 요율에 맞춰 나누다보니 택배노동자들에게 떨어졌던 건당 수수료는 2002년 1200원에서 지난해 기준 400원이나 뚝 떨어졌다. 이마저도 세금 및 차량 감가상각비, 기름값 등 각종 비용을 제외하면 실제로 남는 돈은 500원 남짓이 고작이다.

수익성이 낮은 택배사들은 양적으로 성장한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채 기사 처우 개선을 위한 투자를 진행할 수 없는 '기형적 구조'도 자리잡았다. 설상가상으로 장기화된 코로나19 여파로 택배 물량은 급증했다. 수익성을 쫓던 택배사들은 '속도'를 강조했고, 제한된 시간내 최대한 많은 물량을 소화해야 했던 기사들의 노동강도는 더 극한으로 치달았다. 길위를 질주하던 노동자들은 그렇게 올해만 15명이 목숨을 잃었다.

'분류작업'에 대한 '공짜노동'도 현장에서 지목하는 문제다. 택배산업은 판매자→택배기사→서브터미널→허브터미널→서브터미널→택배기사→소비자 등 총 6단계를 거치는데, 택배기사들은 허브터미널에서 배송순서대로 물량을 차로 옮기는 분류작업도 해야 한다. 분류작업은 택배기자들의 몫으로 묵시적 합의에 의해 관행적으로 지속됐다. 택배기사 과로의 주원인으로 꼽히는 분류작업은 하루 3~4 시간씩 노동이 투자되면서 장시간노동을 유발하는 주원인이라는 게 노동자들 입장이다.

주 5일제, 심야배송 금지...탁상행정에 그친 정부 대안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부는 주 5일제, 심야배송 금지란 대책안을 내놨다. 정부가 지난 12일 발표한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수고용직) 신분이기에 주 52시간제 등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했던 택배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 제한과 산재보험 확대 등이 골자다.

여기에 택배기사 배송수수료 하락요인으로 작용하는 대형화주 백마진(1건당 약 600원 내외) 관행도 조사키로 했다.

하지만, 현장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탁상행정이란 비판이 나온다. 택배기사들의 심야배송 마감시간을 제한한 것은 차치한다쳐도 주 5일제로 인한 주말업무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관련업계는 주말 배송을 금지할 경우 월요일에 물량이 몰려 택배기사들의 과로사를 더 키울 것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