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는 가을 햇살이 블라인드를 뚫고 들어오는데, 오늘의 돌출입수술은 이미 끝났다. 수술은 당근 무탈하게 잘되었다. 환자도 이미 마취에서 잘 깨어나, 거울도 보고 셀카도 찍느라 바쁘다. 

언제부터 ‘당근이지’를 ‘당연하지’ 대신 써도 뜻이 통하게 된 것인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하이텔, 유니텔, 천리안과 같은 80년대 중후반의 PC통신 시대에, 채팅을 할 때 ‘방가방가’로 인사하던 그 시기와 비슷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당연하지와 발음이 비슷해서 쓰인다고도 하고, 당연하지의 경상도 사투리에서 유래했다고도 하며, ‘당연하지’ 게임과 관련 있다는 설도 있다. 

당근 하면 떠오르는 것 중에는 당근을 좋아하는 말[馬]이나 토끼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약국에 가서 당근을 찾는 토끼 이야기도 있고, ‘말밥이지’는 ‘당근이지‘와 동의어다. 당근과 채찍이라는 비유적 표현도 흔히 쓰이고, ‘상대 진영에 당근을 제시했다’와 같이 쓰이기도 한다. 

요즘 웬만한 알림은 모두 무음으로 설정한 필자의 핸드폰에서 가끔씩 울리는 알람이 있다. 

‘당근!’

스마트폰 앱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한 중고 마켓의 메시지다. 심심풀이로 들여다보다가 반쯤 중독이 되고 말았다. 초등학교 바자회에서 꼬마들이 서로 물건 내놓고 사는 게 설레듯이, 동네 사람들이 무슨 물건을 내놓고 파는지가 재미있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다. 벼룩시장이 손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도저히 팔 수 없을 것 같은 물건을 몇백 원에 내놓기도 하고, 아예 무료 나눔을 하기도 한다. 그걸 또 사가거나 보내 달라는 사람들이 있다. 살 빼서 입으려고 샀다가 택(tag)도 못 떼어봤다는 몇백 짜리 명품브랜드 옷도 있고, 잃어버린 강아지 찾는다는 사진과 사연도 있다.

‘아동 양말을 잘못 산건지 제 발목이 안들어가요‘ 라는 설명글과 함께 800원에 내놓은 새 양말도 있고, 꽤 큰 곰인형인데 파는 이유가 ’우리 애들이 안 좋아해서요‘인 것도 보았다. 사진에는 아무 죄 없어 보이는 커다란 곰인형 한 마리가 벽에 기대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아이들한테 사랑받지 못하거나, 주인의 발목이 통과하지 못해서 시장에 나온 사연이 재미있기도 하고 한편 애틋하기도 하다. 부자가 되려고 몇백 원이나 몇천 원에 물건을 파는 건 아니겠지만, 멀쩡한 물건인데 그냥 쓰레기로 내다 버리지 않고 누군가에겐 쓸모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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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마켓에 신생아를 20만원에 판매한다는 게시글이 올라와 공분을 산 적이 있다. 경찰조사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인공지능(AI)이 모조품, 생명체 판매 등 불법게시물을 걸러낸다고 해도, 신생아를 돈 받고 입양 보내겠다는 게시물은 AI도 처음이었을 것이다. 

사람을 팔고 사지는 않지만, 첫 눈에 반한 이성의 마음을 사기 위해 최고의 데이트나 귀한 선물을 준비하거나, 프러포즈를 위해 값비싼 반지를 준비하는 것은 그 사랑을 이루어내기 위한 노력, 소중함, 헌신을 화폐의 가치로 환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환심을 ‘사다’라는 표현도 있다. 마음의 선물이 더 중요하다고 해서 정말 마음만 주고 받아서는 되는 일이 거의 없다. 생일 날 3천원짜리 연필깎기를 선물로 받은 유치원생은 감동하겠지만, 사랑 고백과 함께 3만원 짜리 목걸이를 선물받은 직장인은 모멸감을 느낄 것이다.

오우 헨리는 ‘황금의 신과 사랑의 신’ 이라는 단편에서, 돈이면 다 해결된다는 벼락부자 아빠에게 반기를 들고 짜증스러워하는 아들의 사랑 이야기를 썼다. 아들이 사랑하게 된 사교계의 스타 아가씨를 극장까지 마차로 데려다주는 동안, 마차와 자동차로 교차로가 뒤범벅이 되어 여자는 극장 공연 관람 시간을 놓치게 되고, 마차 안에 갇힌 동안 사랑고백이 이루어진다는 스토리다. 그런데 반전은, 그 교통체증은 부자 아버지가 사람들을 고용해서 만들어낸 것이었다. 모든 사랑을,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돈으로 살 수는 없다는 반어법이었을 것이다.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미술작품도 있다. 수술비나 미술 작품의 가격 역시 그 가치에 따라서 가격이 매겨질 것이다.
그런데, 사실 어떤 작가가 어떤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매우 치밀하고 어려우며 오랜 시간이 걸리고 섬세한 작업이라고 해서, 그 작품이 높은 가격에 팔리지는 않는다. 결국은 그 작품이 아름답고 가치 있어야 비싼 작품이 된다. 난이도가 높은 수술이 더 고가인 것은 맞지만, 그 어려운 수술의 결과가 나쁘면 헛된 일이다.

결국은 ‘결과’에 따라서 가격이 매겨지는 셈인데, 돌출입수술이나 쌍꺼풀수술을 비롯한 성형수술의 결과가 아름다운 것과, 미술작품이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는 것에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어느 유명작가의 추상미술 작품이 과연 아름다운가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수십억을 들여 경매에서 그 그림을 사려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그림의 가치를 모르거나 별로 아름답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필자가 주로 하는 돌출입수술이나 윤곽수술 경우, 그 환자의 취향과 최신의 트렌드를 모두 반영한다손 치더라도, 기본적으로 한국인에서 골드스탠다드한 이상적인 기준선으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아야만 한다. 그래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름답다는 느낌을 갖게 하고 인정을 받는다. 성형수술의 결과는 전문가 몇 사람이 아니라, 주위 모든 사람이 심사위원이다. 그래서, 성형수술은 추상 미술이 아니고 극사실주의 미술에 가깝다. 

직장이나 학교에 자타가 공인하는 여신 급의 퀸카나 킹카가 있는 것은, 사람들의 눈과 그 평가가 거의 일치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직장이나 학교 벽에 걸려있는 추상화에 대한 평가는 제각기 다를 것이다.

가령 어느 재력가가 수십억짜리 추상미술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까막눈인 누군가가 ‘이게 무슨 그림이지? 내겐 별로 아름답지 않군.‘이라고 한다면, 이 작품이 한국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최고가를 기록한 김 화백의 60억짜리 그림이라고 힘주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가격이 가치를 담보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함량미달의 돌출입수술의 결과 합죽해지거나 길어진 당신의 얼굴을 보고 주위 모든 사람의 평가가 나쁘다면, ‘모르는 소리, 이게 얼마짜리 수술인줄 아느냐’고 대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처럼 성형수술의 결과에 대한 평가는 더 냉혹하며, 주위의 모든 사람이 누구나 쉽게 느끼고 판단할 수 있다. 아름답다는 느낌의 저변에는 미학적인 기준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주관적인 듯 하지만 객관적이다. 바로 이 점이 실력있는 집도의에게는 즐거운 일이고, 부족한 집도의에게는 두려운 일일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아름다운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수술이 극도로 정제(refinement)되었을 때 제대로 된 수술비를 받을 자격이 있다. 유명 작가의 작품도 일반적으로 초년작보다는 중, 장년의 전성기 작품이 완성도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고 높은 가격을 형성한다. 필자는 하루에 단 한 개의 돌출입수술을, 보조 의사의 도움 없이 단 한 시간대에 한다. 수술하는 동안은 산책하듯 즐거운데도, 수술이 끝나면 반 탈진 상태가 된다. 열과 성을 쏟아 붓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요즘 수술비를 덤핑하면서 공장처럼 수술장에서 대량생산을 하고, 박리다매를 하는 성형수술에는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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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 시장[마켓]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고, 환자들은 성형외과 의사를 고르는 닥터를 쇼핑하는 시대가 되었다. 발품을 팔기 전에, 일단 홈페이지나 영상을 통해 여러 병원과 전문의를 비교해보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 된 듯하다. 중고 마켓에서 필자가 어떤 물건을 사기로 결정하는 과정을 스스로 관찰하면서, 필자를 선택해준 환자들이 ‘성형 마켓’에서 나를 집도의로 결정한 이유를 돌아보게 된다. 환자들이 돌출입수술 전보다 더 행복하게 살고 있다면, 그것은 병원의 규모나 외형, 멋진 수술명칭이나 특수한 수술기구, 화려한 홈페이지 때문이 아니고, 결국은 안전하고 만족스러운 수술결과 때문일 것이다. 환자들의 행복을 위해서는, 안전을 전제로 했을 때 아름다운 결과에 가장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필자는 당근 마켓과 아무 연관이 없지만, 여기서 당근은 ‘당신 근처의 마켓’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내 평생 성형외과 전문의로서 가장 많은 시간을 바쳐온 곳은 항상 ‘당신의 돌출입 근처’였다. 만 시간의 법칙을 뛰어 넘은지는 오래고, 몇 만 시간을 돌출입과 광대뼈, 사각턱, 턱끝을 다듬고 조각하는데 할애하고 있다.

오랜 시간이 갈수록 더 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골동품뿐이라면서 골동품 수집에 열심인 지인이 있다. 일면 수긍이 가는 이야기다.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의 두 후보는 한국나이로는 80세와 76세였다. 

필자도 세월을 비껴갈 수 없는 것은 당근이다. 언젠가는 손끝이 떨리고 기력이 쇠할 것이다. 그 때가 오기 전까지 필자는 수술장에서 환자의 돌출입과 얼굴뼈 곁에 머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