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이코노믹리뷰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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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믹리뷰=박민규 기자]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LG화학(051910)과 SK이노베이션(096770)의 배터리 영업 비밀 침해 소송에 대한 최종 결정을 또 미뤘다. 이로써 두 배터리 업체가 미국에서 약 1년 6개월 동안 벌이고 있는 배터리 소송전의 결과는 오는 12월에야 나올 전망이다.  

미국 ITC는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제기한 영업 비밀 침해 소송에 대한 최종 결정을 다음 달 10일로 연기한다고 26일(현지 시간) 밝혔다. 

이날은 ITC가 이미 한 번 유보한 바 있는 최종 결정을 내리기로 한 날이다. 당초 ITC의 최종 결정은 이달 5일 발표될 예정이었으나, 지난달 25일에 이어 이날까지 총 두 차례에 걸쳐 연기됐다.

ITC는 이번 결정 보류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사유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그 배경을 두고 세간의 관심이 쏠리는 모양새다. ITC가 두 번이나 최종 결정을 연기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일각에서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모두 미국에서 전기차용 배터리 사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ITC가 최종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추측도 나온다. 최근 미국에서는 코로나19발 경기 침체로 일자리 이슈가 가장 부각되고 있다. 즉, ITC가 양 사의 잠재적인 일자리 창출 능력을 비교하면서 고심하고 있을 것이라는 풀이다.

SK이노베이션은 현재 미 조지아주에 총 25억달러(약 2조9700억원)를 들여 21.5기가와트시(GWh)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고 있으며, 해당 공장은 일자리 2000개 이상을 만들 것으로 예상된 바 있다. 이와 관련, SK이노베이션의 고객사인 미국 포드·폭스바겐 등 자동차 업체들과 조지아주 당국은 지난 7월 SK이노베이션의 현지 생산을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문을 ITC에 제출하기도 했다.

또 SK이노베이션은 미국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 내 한국인 불법 고용 의혹을 수습하고자, 내년 말까지 1000명 이상의 현지 인력을 채용할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LG화학 역시 현지 완성차 업체인 GM과 오하이오주에 합작 법인을 설립, 차세대 배터리인 '얼티움'을 함께 개발 중이다. 또 LG화학은 올해 3분기 경영 실적 발표 콘퍼런스 콜에서 북미에 배터리 생산 공장을 추가적으로 지을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가운데,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ITC가 또 한 번 최종 결정을 유보한 것에 대해 상이한 해석을 내놓았다.

SK이노베이션은 ITC의 최종 결정 연기가 기존 결정에 대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앞서 ITC는 지난 2월 SK이노베이션에 '조기 패소' 예비 결정을 내린 바 있으나, 이에 대한 SK이노베이션의 이의 신청 또한 받아들여 현재 해당 소송에 대한 재검토를 진행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측은 "ITC가 앞서 최종 결정 발표를 21일 연기한 데 이어 추가로 45일이라는 긴 기간을 연장한 사실로 비춰 볼 때, 해당 소송의 쟁점을 심도 있게 살펴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LG화학은 ITC의 이번 연기 또한 현지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보고 있다. ITC가 LG화학-SK이노베이션 소송보다 앞선 소송들에 대한 판결도 2차적으로 연기했으며, 이에 따라 해당 소송 결과 발표가 순연됐다는 것이다.

한편, 소송 장기화에 따른 부담으로 양 사가 합의를 가속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LG화학은 "앞으로도 (해당 소송에) 단호하게 임할 것"이라며 강경한 태도를 강조하면서도 "SK이노베이션이 진정성을 가지고 소송 문제 해결에 나선다면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는 것이 (LG화학의) 일관된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SK이노베이션 또한 "양 사는 소송 장기화에 따른 불확실성을 없애기 위해 조속히 분쟁을 끝내고 본연의 사업에 매진해야 할 것"이라 언급했다.

양 사는 현재 국내외에서 10건 가량의 민형사 소송을 벌이고 있으며, 이 가운데 ITC의 최종 결정에 가장 주목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ITC의 판결은 다른 재판들에서도 준거로 쓰이기 때문이다.

이번 소송에서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자사의 배터리 사업 관련 핵심 인력을 빼갔으며, 이를 통해 얻은 영업 비밀로 폭스바겐과 포드 등 자동차 업체들의 전기차용 배터리 물량을 수주했다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을 배터리 특허 침해 혐의로 제소한 데 대한 ITC의 판결이 아직 남아 있다. 해당 소송에 대한 청문회가 오는 12월 10일부터 11일까지 이틀 동안 화상 회의 방식으로 개최될 예정으로, 올 연말 양 사의 '배터리 전쟁'이 또 한 번 불붙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