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덕호 기자]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는 '구조적 타살'입니다. 사회적 감시를 통해 악순환을 함께 끊어내야 합니다."

지난 2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민주노총, 참여연대 등 노동·시민단체로 구성된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대책위)'가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입니다. 

이어 "재벌 택배사들의 놀부짓, 정부의 무능과 나태 등의 악순환을 함께 끊어내야 한다"는 강력한 비난도 함께 이뤄졌죠. 기업과 정부를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인 비난. 올해에만 14명의 택배 기사가 숨졌으니 이해할 만 합니다.

그리고 지난 22일 박근희  CJ대한통운 부회장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택배기사들의 과로사를 막기 위한 조치들을 발표합니다.  ▲분류작업 인력 투입(1000명→4000명 확대) ▲산재보험 100% 가입 ▲분류 자동화 확대 추진 등 노조의 요구 사안을 전격적으로 받아들이는 조치를 내놨습니다. 

특히 주목을 받은 것은 택배기사 과로사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분류작업' 업무 절감 부분입니다. 1000명 수준인 분류작업 인원을 4000명으로 확대하고, 이를 통해 과로 원인을 없앨 것 이라는 대책이죠. 

사과하는 박근희 부회장. 사진=이코노믹리뷰 임형택 기자

노조, 박 회장 '발언'은 환영…'시행'은 못믿어

CJ대한통운에 따르면 현재 물류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는 물품 분류인력은 약 1000명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CJ대한통운 택배노조는 다소 다른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물품 분류인력 중 350여명은 CJ대한통운이 인건비를 부담하고, 고용하는 사람들이지만 나머지 650여명은 택배기사 혹은 배송 대리점이 비용을 대고있는 인력이라는 것이죠. 이에 노조에서는 어째서 1000명을 본사가 고용한 것 처럼 밝혔냐는 의문을 말합니다.

직접 고용한 인원들의 고용 형태와 시점 역시 석연치 않은 감이 있습니다. 노조에 따르면 이 인원들은 지난 9월 발생했던 ‘택배기사 분류작업 거부’ 사태 무마를 위해 투입된 인력들입니다. 역대급 배송 물량에 지친 택배기사들이 작업 거부를 주장했고, 이에  본사가 울며 겨자먹기로 ‘어쩔 수 없이 그냥  늘려준 인력'이라는 주장이죠.

인원 파악에 대한 근거가 틀린 탓에 노조는 이번에도 회사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고 있습니다.

한 택배 노조 관계자는 "공개석상에서 이를 밝힌 것은 진일보한 행보"라면서도, "언급만 있을 뿐 명확한 시행 방침을 밝히지 않은 '반쪽' 대책"이라고 말합니다. 가장 중요한 '돈'을 누가 내느냐 하는 점을 밝히지 않고, 의지만을 밝혔다는 것이 불만의 핵심이죠.

실제 박 부회장은 지난 22일 기자회견에서 이 비용을 "협의를 통해 진행한다"라고 얼버무렸습니다. "무엇을 하겠다"라는 발표는 멋졌지만 "어떻게 해 나가겠다"라는 내용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애매한 대책 발표 탓에 노조와 회사, 각자의 관계자들은 박근희 CJ대한통운 부회장이 말한 "협의를 통해 진행한다"라는 내용을 해석하기에 바쁩니다. 노조는 "기사에게 비용 전가하려는 꼼수"로 회사는 "의지를 밝혔다"로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사실 CJ대한통운의 경영 여건을 볼 때 분류인력 고용비용은 회사와 택배기사가 나눠 부담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소요되는 금액(약 500억원)이 워낙에 많아서죠. CJ대한통운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830억원입니다. 한 분기(3개월)에 415억원씩 벌어들인 셈입니다. 회사가 모두 부담하려면 1년 수익의 1/4 이상을 고스란히 인건비로 돌려야하는 상황입니다. 

갈길 먼 노조…세력·합리적 요구 갖춰야

위에 언급했듯 택배노조는 '과로사=구조적 타살'이라는 공식으로 회사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재벌들이 돈을 불리는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택배기사들이 숨져갔고, 그들의 공짜노동이 이뤄졌다는 주장입니다. 

택배기사들이 하루 평균 4~11시간을 공짜노동에 할애하고 있다는 점을 볼 때 이들의 주장은 이해가 가는 것이 사실입니다.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고, 여론도 택배기사들을 향해 꽤 돌아선 듯 합니다. 

지금 이 상황을 가장 신경쓰는 곳은 아마도 경쟁사인 한진택배(한진)와 롯데택배(롯데글로벌로지스)가 아닐까 합니다. 관망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서 언론과 노조에 말을 아끼는 모습입니다. 

CJ대한통운이 시장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은 만큼, 지금 CJ대한통운의 이슈가 향후 한진·롯데택배에도 그대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겠죠. CJ대한통운이 보이는 적극적인 듯하면서도 애매한 스탠스, 그리고 노조와의 대화 방식을 참고하지 않을 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마음 속으로 보내는 조용한 응원도 함께요.

CJ대한통운이 대책을 발표한 만큼, 이들도 각각의 조치를 내 놓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대기업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노조리스크’가 택배업으로 미칠 수 있는 만큼 노조의 인정에는 다소 소극적인 모습입니다. CJ대한통운이 노동자의 복지 향상 문제를 'CJ대한통운 택배노조'가 아닌 '노사상생위원회'와 협의 하겠고 밝힌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택배노조들의 역량이 제한적인 탓이기도 합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택배연대노동조합, 전국택배노동조합, 공공운수노조 산하 택배노조 등 3개의 노조가 난립한 탓에 강력한 힘을 낼 수 있는 교섭단체가 없다는 말이 나오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