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지웅 기자] ‘빅 파마(Big Pharma)’. 단어 그대로 거대 제약회사라는 뜻으로 전 세계 제약 시장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들 빅파마는 크고 작은 인수합병(M&A)과 꾸준한 연구개발(R&D)을 통해 지금의 입지를 다졌다. 연간 1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블록버스터 의약품도 이들 빅파마가 개발해 가치를 높였다.

반면 매출 1조원 돌파에 의미를 부여하는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의 현실을 감안하면 빅파마는 허황된 꿈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바이오의약품과 같이 제조공정이 복잡한 약물이 등장하고, 대형 기업이 모든 분야에 대한 노하우를 보유하기 어려워지는 등 산업 지형에 변화의 바람이 불면서 또 다른 전환기를 맞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라는 사상 유례없는 팬데믹은 K바이오의 강점을 부각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삼성·SK·셀트리온 등 대기업들의 잇따른 해외 진출과 수출 확대를 통해 K바이오의 진면목이 드러나고 있다.

한국 의약품 시장의 현주소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서 공개한 ‘2019 제약산업 DATA BOOK’에 따르면 세계 제약시장 규모는 1조2048억달러로 최근 5년간(2014∼2018) 연평균 5.2%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국가별로는 전 세계 시장의 40.2%를 차지하는 미국(571조원·40.2%)을 필두로 중국(155조원·11.0%)·일본(101조원·7.2%)·독일(63조원·4.4%)·프랑스(43조원·3.1%) 등이 뒤를 잇고 있다.

국내 의약품 시장 규모는 약 23조원으로 세계 12위(1.6%) 수준이다. 세계 반도체 시장의 75%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의약 부문의 시장 점유율은 고작 1%대에 머물러 있다. 다만 지속적인 성장을 통해 점유율을 조금씩 끌어올리고 있다. 국내 의약품 시장은 최근 5년간 연평균 4.5% 성장률을 기록했다.

글로벌 빅파마들의 매출액을 살펴보면 화이자(53조원)·노바티스(49조원)·로슈(49조원)·미국머크(41조원)·존슨앤존슨(40조원) 등으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에서 매출 1조원을 돌파한 제약사는 유한양행, 한미약품, GC녹십자 등 10여 곳이 채 안 된다. 빅파마를 향한 길이 아직은 멀게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셀트리온·삼성·SK 등 빅파마 향한 무모한 도전

빅파마를 향한 K바이오의 무모한 도전은 코로나19 사태와 어우러지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최근 셀트리온그룹은 계열 3사 합병을 공식화하며 빅파마를 향한 첫발을 내디뎠다. 실제로 셀트리온 3형제가 합병에 성공할 경우 연구·개발부터 유통망까지 모두 갖춘 시가총액 52조원 규모의 기업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를 통해 자본력과 규모를 앞세운 빅파마와 대응할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셀트리온은 바이오시밀러 중심의 매출 구조에서 벗어나 바이오베터와 신약 개발로 사업 다각화를 꾀하고 있다.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램시마’의 제형을 기존 정맥주사(IV)에서 피하주사(SC)로 변경해 ‘램시마SC’를 개발했고 인플루엔자 멀티항체 신약과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치료용 항체를 개발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코로나19 항체치료제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삼성은 바이오의약품 '생산'과 '연구개발'을 이원화해 보다 현실적인 사업모델을 구축했다. 실제 삼성이 보유한 파운드리(반도체위탁생산) 역량을 바이오 사업으로 가져와 의약품 위탁생산(CMO)과 신약 개발 사업에 나선 것이다.

의약품을 생산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최근 코로나19 치료제 생산기지로 급부상했다. 지난 4월 미국 비어바이오테크놀로지와 4400억원 규모의 코로나19 치료제를 위탁생산하는 계약을 체결한 덕분이다. 2016년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이후 최대 규모 수주액으로 평가된다.

신약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바이오시밀러 사업의 호황으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이 회사의 매출은 7659억원, 영업이익은 1228억원으로 창립 8년 만에 첫 흑자를 달성했다.

SK의 신약개발 자회사인 SK바이오팜은 약 하나로 엄청난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는 블록버스터 의약품 발굴에 도전한다. 지난해 11월 뇌전증 신약으로 미국식품의약국(FDA) 시판 허가를 획득한 '세노바메이트'를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 출시해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유한휘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2012년 약가인하를 계기로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3번의 상승장을 경험했다”며 “1차는 2015년의 기술수출로 인한 상승기, 2차는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로직스에 의한 바이오시밀러 상승기, 그리고 현재 글로벌 플레이어를 중심으로 3차 상승기에 진입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올해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 큰 변화가 찾아오고 있다”며 “과거에는 주로 제약사나 중소 바이오 기업의 글로벌 기술 수출의 규모와 임상 결과에 주목했지만 이제는 결과(숫자)로 보여주는 기업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