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SK하이닉스가 인텔의 낸드 메모리와 저장장치 사업을 90억달러에 인수한다고 20일 발표했다. 이를 바탕으로 SK하이닉스가 글로벌 2위 낸드플래시 시장의 강자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SK하이닉스에 메모리 사업부를 넘기는 인텔의 행보에 시선이 집중된다.

인텔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터줏대감이자 역사 그 자체다. 1968년 산타클라라에서 노이스-무어 일렉트로닉스(Noyce-Moore Electronics)로 창립된 후 사명을 인텔로 변경, 지금까지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최강자이자 상위 포식자로 군림한 바 있다. 

다만 최근 상황은 위기의 연속이다. 2000년대 들어 PC 대신 모바일 시대가 활짝 열리자 PC 기반의 인텔은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으며 설상가상으로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시대 인텔은 반도체 결함 문제와 더불어, CEO 개인의 비위 사실까지 터진다.

후발주자의 맹추격도 눈길을 끈다. 대표선수는 AMD다. 리사 수 CEO가 2014년 CEO로 등판하며 AMD의 경쟁력은 날카로워지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최대 64개의 코어와 최대 대역폭을 갖춘 기업용 ‘라이젠 스레드리퍼 PRO(Ryzen Threadripper PRO)’ 프로세서 라인업까지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인텔의 내부도 흔들리고 있다.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CEO가 퇴임한 후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던 조직은 최근 인텔 CPU 설계의 핵심 리더인 짐 켈러의 퇴사라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마주했다.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CEO 시절 CPU 결함으로 홍역을 치른 인텔이 간신히 정상화 궤도에 올라설 무렵 터진 핵심인력 유출이다.

로버트 스완 인텔 CEO. 출처=인텔
로버트 스완 인텔 CEO. 출처=인텔

설상가상으로 미중 갈등에 따른 유탄까지 맞으며 인텔의 행보는 더욱 꼬이는 모양새다.

5G 영역에서도 한 발 늦었다. 애플이 퀄컴과 특허 분쟁을 치르며 인텔과 5G 동맹을 구축했으나 인텔은 의미있는 5G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고, 결국 애플이 퀄컴과의 분쟁을 마무리하고 다시 손을 잡아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했다.

AMD를 따라잡기 위해 생산하려던 7나노 차세대 반도체 생산을 포기해 종합반도체기업의 입지도 흔들리고 있다.

SK하이닉스와의 빅딜이 벌어진 결정적인 배경이다. 인텔 NSG(Non-volatile Memory Solutions Group) 부문 중 낸드 사업의 2020년 상반기매출액은 약 28억 달러, 영업이익은 약 6억 달러 규모인 가운데, 이를 과감하게 SK하이닉스에 넘기며 당장의 유동성 확보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 등이 버티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출혈경쟁을 하는 것보다, 차라리 중장기적 관점에서 AI 및 5G의 로드맵을 추구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도 풀이된다. 그 연장선에서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의 출혈을 피하고 시스템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바탕으로 TSMC 등 파운드리 업체와의 협력을 다지는 '느슨한 생태계 전략'이 자사의 앞날에 더 효과적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