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가 늘고 있으나 피해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스스로 피해를 지원할 수 있는 보험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불충분한 통계, 피해액 산정의 어려움, 보험사기 우려, 소비자의 낮은 가입 니즈 등으로 성범죄 보험의 실효성은 낮다는 분석이다.

성범죄가 증가하고 있다. 8월 31일 경찰청이 제시한 ‘2011년 범죄 통계’에 따르면 2007년 1만3396건이었던 성인·아동청소년 대상 강간·강제추행 범죄가 2011년 1만9498건으로 늘어났다. 4년 간 약 46%증가한 셈이다. 잇달아 발생하는 성범죄에 따라 정부에서는 처벌을 강화하고 피해자 지원책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일례로 9월 10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성폭력 근절대책’을 들 수 있다.

대책에 따르면 피해자 1인당 지원금액은 연 300만원~500만원 범위이며 500만원 초과 시 지자체의 심사를 받도록 돼 있다. 하지만 민간단체에서는 턱없이 부족한 비용이라고 말한다. 단체 관계자는 “평생을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겪어야 하는데 500만원은 외상 치료비로 충당하기에도 부족한 비용”이라면서 “지난해 성폭력 피해자 의료비 지원예산은 10억여 원으로 정부에 치료비 지원을 요청한 성폭력 피해자 9720명이 받은 1인당 평균 지원액은 고작 6만1000원”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올해 예산 또한 제자리걸음인 10억여 원에 불과해 예산 확충이 절실하다”고 했다. 성범죄는 늘어나는데 지원 예산이 부족한 지금, 지원 창구의 다양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다소 팍팍한 생각일 수 있으나 스스로 피해 지원을 마련해야 하지는 않을까”하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성범죄 피해를 보장해주는 ‘보험’은 있을까.

성범죄보험, 실효성 없다 왜?
해답은 없다. 한 때 미국에서 이 같은 보험을 판매했던 적이 있다. 1990년대 초였다. 어슈어런트 보험사에서 선보인 이 보험은 ‘폭력범죄희생자보험’으로 강도와 강간에 의한 피해를 주로 보상했다. 보험사측은 모든 주에 상품인가신청을 냈으나 루이지애나주만이 인가를 허락했다.

약관에 따르면 강도나 강간의 피해자가 된 경우 이 보험에 가입된 계약자는 재산손해에 대하여 1000달러(약 112만원), 입원비용으로 2000달러, 생활복귀치료비로 2000달러를 한도액으로 보상받을 수 있었다. 또 취업불능의 경우에는 상실소득의 85%까지, 단 주급 150달러를 한도로 하여 13주간 지급했다. 일상생활이 어려운 경우에는 파출부 또는 요리사를 쓰는 비용으로 하루에 15달러를 보상 받았으며 정신적 고통에 대해서도 50달러가 주어졌다.

사망한 경우에는 상속인에게 3000달러가 지급됐다. 이 보험사는 플로리다주에서 ‘범죄희생자보험’을 판매하기도 했는데 주로 강간(rape)을 대상으로 해 강간보험(rape insurance)라고도 불렸다. 하지만 현재 해당 보험사 상품 목록에서 이는 찾아볼 수 없는 상태다. 이와 관련 지영구 보험개발원 일반손해보험서비스팀장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성범죄 관련 보험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전했다.

보험상품은 시대적 이슈를 반영한다. 최근 들어 성범죄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법무부, 경찰청, 여성가족부 등 정부 부처에서 쏟아내는 대책은 피해에 따른 경제적 손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한데 성범죄 보험은 왜 없을까. 서영수 서울사이버대 교수는 “사회적으로 필요성이 제기된다고 해도 민영보험사 입장에서 이 같은 보험을 출시하는 데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우선은 손해율이 예측되지 않기 때문이다. 손해율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보험료 책정이 필요한데, 이마저도 난해하다는 것이 서 교수의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보험료를 책정키 위해서는 ‘특정집단’이 ‘주기적’으로 피해를 입는다는 통계와 이에 따른 경제적 손실이 산출돼야 하는데 현재까지 누적된 성범죄 데이터로는 부족하다.

즉, 모집단이 없다는 얘기다. 보험사기에 대한 노출도 크다. 서 교수는 “보험은 ‘우연한 사고’에 의해 경제적 손실을 얻었을 때 성립되는 것”이라면서 “고의로 사고를 내고 고지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을 경우 이를 증명할 가능성이 적은 성범죄의 경우, 우연한 사고인지의 여부를 파악하기가 모호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와 같은 ‘역선택’으로 발생한 보험사기는 선의의 계약자들에게 보험료를 떠안게 하는 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계약자 차원에서도 정신적 치료가 더 필요한 경우와 외상 치료가 절실한 경우 등 피해형태가 동일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피해액에 대한 범용성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 또한 걸림돌로 작용한다. 특히 정신적 치료의 경우 그 피해정도를 산정하기가 난해하다. 우여곡절 끝에 상품이 출시됐다고 하더라도 사후관리가 문제다. 손해사정을 통해 가입자의 신변을 일일이 돌봐야 하기 때문에 업무에 과부하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 대표 손해보험사 관계자들 또한 모두 이 같은 보험의 실효성을 회의적으로 분석했다. LIG손해보험 상품개발 관계자는 “일반인의 경우 본인이 강력범죄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드물다”면서 “보험은 예방효과 없이 단순히 사후보상 받는 상품으로 소비자의 가입니즈가 약할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피해정도에 대한 객관적인 물적 산정이 어렵고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숨기는 경우가 많아 보험금 지급과 관련된 민원이 발생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면서 판매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신해용 동부화재 홍보부장은 “성폭행 등 사회적 범죄에 대한 관심은 급증하고 있지만 그 이미지 자체가 너무 부정적이기 때문에 소비자의 실제 가입까지 이어질지 여부가 불확실하다”면서 “보험금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실제의 검찰 처분 과정에 대한 증빙이 필요한 등 과정상의 복잡성도 있어 가입 후 실제 소비자의 만족도 측면도 보장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현대해상 상품개발 담당자 또한 의견을 함께 했다. 이 담당자는 “성범죄에 대한 보장을 집중화 한 상품은 도덕적 위험이 커 현재로서는 회의적이며, 성인 성폭력범죄의 경우 아동 성폭력과 달리 보험사기가 우려된다”면서 “현대해상의 경우 성폭력사고 보장을 하는 상품을 판매하고 있으나 미성년에 한해서 최소 금액을 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계자들의 의견에 따르면 불충분한 통계치, 피해액 산정의 어려움, 보험사기 우려, 소비자의 낮은 가입 니즈 등으로 성범죄 보험의 실효성은 낮다. 그렇다면 향후에는 어떨까. 성범죄 보험의 출시 가능성은 전혀 없을까. 서영수 교수에 따르면 가능성이 ‘제로’인 것은 아니다. 그는 “민영 보험사 차원이 아닌 공적보험의 형태라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를 테면 건강보험이나 고용보험 등과 같이 국가에서 선보이는 형태다.

서 교수는 “충분한 통계를 분석해 ‘경험생명표’와 같은 데이터를 도출한다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며 “거기에 수지상등의 원칙을 적용, 보험료를 책정하고 마이너스가 난 부분은 국가에서 지원한다면 복지차원의 보험 상품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관이 함께 선보이는 형태도 기대할 만하다. 국가 차원에서 사회공헌 등 명목으로 시행하고 민영보험사에서 판매하는 식이다. 비슷한 예로 농작물재해보험과 지식재산권소송보험을 들 수 있다. 각각 농림수산식품부와 특허청을 주관부처로 두고 손해보험사에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서 교수는 “성범죄 문제가 사회적으로 꾸준히 이슈화가 되고, 특정지역 뿐만 아니라 전 지역에 걸쳐 꾸준히 증가추세라면 국가차원에서 보험 상품으로의 타당성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민영보험사 관계자는 향후 출시 여부에 대해서도 고개를 저었다. LIG손해보험 관계자는 “성범죄 관련 보험의 경우 출시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활성화 측면에서 우려된다”면서 “취지는 좋으나 활성화 되지 못하고 수명을 다한 보험도 많다”고 말했다. 동부화재 관계자는 “위험률 통계 기반이 마련되면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성범죄 피해를 보상해주는 특정 상품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부정적”이라면서 “무엇보다 이 같은 상품이 출시될 만큼 사회가 피폐해 지면 안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용 상품은 없지만 특약으로는 보장
성범죄 피해를 주로 보장하는 단독 혹은 전용 상품은 없지만 각 보험사에서는 특약으로 이 같은 범죄에 대한 피해를 보장해 주고 있다. 삼성화재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손·생보험의 실손의료비는 질병·상해로 인한 치료비를 보장하며 성폭력 역시 상해의 일종으로 실손의료비 담보에서 입통원의료비 보장이 가능하다”면서 “회사에 따라 별도 특약에서 위로금을 지급하기도 한다”고 언급했다.

삼성화재의 경우 ‘강력범죄위로금’이라는 담보를 운영하여 성폭력 뿐 아니라 여러 범죄에 대해서도 위로금을 지급한다. 보험기간 중 피보험자가 살인, 상해와 폭행, 강간, 강도 등 강력범죄에 의해 사망하거나 신체에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가입금액 100만원을 지급한다. 동부화재 또한 ‘강력범죄피해보험금’이라는 특약을 둬 강간 및 살인, 강도, 폭행 등 불의의 사고를 당했을 경우 특약보험가입금액을 지급한다.

현대해상은 크게 강력범죄피해보장과 미성년성폭력범죄피해보장특약으로 나눴다. 강력범죄피해보장은 일상생활 중 강력범죄에 의하여 신체에 피해를 입은 경우 특약 가입금액(100만원) 지급한다. 또, 미성년성폭력범죄피해보장은 성범죄의 피해자가 되어 수사기관에 신고, 고소, 고발 등이 접수되고 검찰의 처분결정이 내려진 경우 특약가입금액(300만원) 지급한다.

LIG손해보험도 마찬가지로 특약을 통해 성범죄 피해를 보장하고 있다. 우선 폭력피해보장특약은 제3자의 물리적 폭력행위로(성폭력 포함) 인해 상해를 입은 경우 100만원 위로금 지급하고 있다. 또 강력범죄피해보장을 통해 형법에서 정한 살인, 강간 등의 강력범죄를 당했을 경우 300만원의 위로금을 지급하고 있다.

최근 성범죄가 증가함에 따라 이 같은 특약 가입률 또한 늘어나는 것으로 드러났다. 손해보험업계에 따르면 강력범죄 특약 가입 건수는 올해 6월 유효계약 기준으로 삼성화재 81만2721건, 현대해상 127만3592건, LIG손해보험 77만건, 동부화재 114만1047건, 메리츠화재 149만7022건으로, 상위 5개사의 가입자 수만 약 550만 명에 달한다.

박지현 기자 jh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