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억달러냐 300억달러냐
한은 외환보유고의 비밀

현재 한국은행은 1800억달러에 달하는 미국 국채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를 놓고 정부과 시장관계자들이 견해를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외환보유액은 얼마일까. 즉시 현금화할 수 있는 외환보유액을 ‘가용 외환보유액’이라고 한다. 이 금액을 두고 정부와 시장은 서로 엇갈린 의견을 내놓고 있다. 정부에서는 2000억달러 안팎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시장에서는 300억~500억달러, 심지어는 300억달러 미만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유동외채가 2217억달러라는 점을 감안하면 시장관계자들이 추정하는 가용 외환보유액은 턱없이 부족하다. 유동외채를 일시에 갚아야 할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한다는 것이 현실성은 떨어지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와 관련 한성대 김상조 교수는 “경제학에서는 위기지수 1%만 발견돼도 바로 위기관리에 들어가야 한다는 조기경보를 보낸다”며 “외환위기 1년 전인 1996년 위기지수가 10%였다면 지금은 30%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외환보유액이 부족하다는 논란과 함께 ‘3월 위기설’도 대두되고 있다. 내년 3월 외국자금들이 일시에 회수되고 외환보유고도 탕진된다는 이야기이다. 9월 위기설이 해프닝으로 끝났기 때문에 3월 위기설도 해프닝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있지만, 실물경기가 악화되면서 외환시장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외환보유고와 3월 위기설의 진실은 무엇일까. 시장 관계자들은 “현재 정부가 (구조조정과 공적자금 투여) 결단을 내리지 않을 경우에 벌어질 상황”이라고 이야기했다.

가용 외환보유액이 과연 얼마냐?
가용 외환보유고를 놓고 정부와 시장관계자들이 큰 견해 차이를 보이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한두 푼도 아니고 1500억달러 이상 차이가 난다는 것은 분명 심각한 상황이다.
이처럼 금액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한은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 국채 때문이다. 현재 한국은행은 1800억달러에 달하는 미국 국채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를 놓고 정부과 시장관계자들이 견해를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미국 국채는 즉시 현금화할 수 있기 때문에 유동자산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하는 반면, 시장관계자들은 생각처럼 쉽게 팔 수 있는 자산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미국 채권을 팔면 금리가 올라가고 이 경우 미국이 부담해야 할 외채가 늘어난다”며 “이 경우 다른 나라들로 미국 채권을 팔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 관계를 고려하면 함부로 매각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2005억달러 전액을 사용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외환보유액은 즉시 가용할 수 있는 상황이라 팔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한국은행의 의견이다. 한국은행 국제국 하근철 차장은 “미국 국채를 못 판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최근 미국채의 수급 상황이 어떤지를 제대로 알아보고 따졌으면 좋겠다”고 반박했다.

프레디맥·페니메 투자채권도 논란
정부기관채인 프레디맥과 페니메에 투자된 금액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프레디맥과 페니메에 투자된 금액에 대해 지난 8월 약 370억달러라는 의견이 있었지만, 지난 9월1일자로 영국 <타임즈(The Times)>는 500억달러라고 밝혔다.
국내 시장관계자들은 500억달러 이상일 것이라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시장관계자들은 프레디맥과 페니메가 부실 모기지를 갖고 있어 매각해도 제값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선물업계 관계자는 “지금 페니메 채권을 팔 경우, 현저히 낮은 금액을 받을 것”이라며 “결국 정크(쓰레기)채권일 뿐”이라고 밝혔다. 팔아도 현금이 얼마 되지 않으니 가용 외환보유액을 늘리는 효과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한국은행은 프레디맥과 페니메가 부실화된 모기지 업체로 정부 공적기관으로 편입된 만큼 안정적인 채권으로 분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은행 하 차장은 “현재 프레디맥과 페니메가 얼마나 잘 팔리는지 보고 말하라”고 언급했다.
시장은 이러한 정부 의견을 불신하고 있다. 정부는 현재 외환보유액이면 충분하다는 말만 되풀이하지만, 지난 9월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외환보유액 여유 있다 말할 상황 아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시장은 말이 다른 정부에 대해 이미 신뢰를 잃은 지 오래”라고 말했다.
정부가 외환보유액에서 미국채와 프레디맥·페니메 채권이 얼마만큼 투자돼 있는지 밝히지 않는 것도 시장의 불신을 가중시키고 있다. 하지만 하 차장은 “외환보유액의 투자 비중과 내용을 알리는 것은 국제 관례상 금지사항”이라며 “어느 나라도 밝히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유동외채 갚을 수 있는 여유 있나
가용 외환보유고에 대한 논란은 시중은행들의 유동외채(단기외채+1년 안에 갚아야 하는 장기외채)에서 비롯됐다. 전체 유동외채는 2271억달러이며, 그 중 단기외채는 1757억달러이다.
단기외채가 급증한 것은 조선업의 수주와 자산운용사의 해외펀드 규모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2005년 말 834억달러에 불과하던 은행권 단기외채는 2008년 2분기 말 2105억달러로 늘어나 같은 기간 증가율이 150%에 달했다.
여기서 문제는 한은이 보유하고 있는 달러로 유동외채를 갚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현재 한은이 보유하고 있는 가용 외환보유액을 400억달러로 추정할 경우 한미·한일 통화스와프로 확보한 총 600억달러를 합쳐도 1000억달러밖에 안 된다.전체 유동외채의 반도 되지 않은 금액이다.
일각에서는 당장 갚지 않아도 되는 외국은행의 차입액과 환헤지용 선물환을 제외하면 실제 800억달러만 있어도 넉넉하다고 보고 있다. 시장관계자 중 긍정론자들은 “유동외채에 흔들릴 정도로 외환보유고가 부족한 편이 아니다”며 “경상수지에 따라 달라지는 외채인데 현재 상황만 따지면 모순”이라고 언급했다.

3월 위기설의 진실은 바로 ‘기업부실’
가용 외환보유고는 3월 위기설과 직결된다. 기업 부실이 은행 부실로 이어지고, 외채를 갚지 못하는 은행 때문에 외환보유고가 소진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3월 위기설은 3월 결산일을 앞둔 해외 은행들이 일제히 돈을 회수해 한국경제가 위기를 맞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한성대 김상조 교수는 “해외 금융사들의 자금 회수로 흔들거리기보다 내수 부실로 인해 3월 결산 외채를 갚지 못해 생기는 위기”라고 지적했다.
기업 부실과 관련해서 주목되는 것은 조선업체들이다. 선주가 발주를 취소할 경우 조선업체들은 배값을 받지 못한다. 받지 못한 달러(배값)는 조선업체들이 외환시장에서 매수해서 납부할 수밖에 없다. 선물환 매도 원·달러 환율이 900~1000원이었지만, 현재 원·달러 환율은 1300~1400원대이다. 환율 차로 조선업체가 무너질 경우에는 은행이 나서서 대신 달러를 메워야 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조선업계 부실은 선수금에서도 나타난다. 선수금이란 조선업체가 수주를 받으면서 미리 받는 배값의 일부이다. 선수금을 받기 위해서는 은행이나 보험사가 환급보증서를 발급해 줘야 한다.
이 환급보증서(RG, Refund Guarantee)는 조선업체가 부도날 경우 그때까지 받은 선수금을 대신 갚아준다는 약속이다. 현재 손해보험사들의 환급보증서 발급 규모는 1조원으로 파악됐지만, 은행은 아직 파악되지 못했다. 손보사들 규모보다 몇 배 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재 은행권의 외채 상환능력이 불안해 한국은행이 통화스와프로 달러를 공급해 주는 상황이다. 중소형 조선업체가 무너지고 업계가 부실화되면 그 몫은 은행으로 돌아온다. 김상조 교수는 “은행들이 달러를 공수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외환시장은 물론, 국가와 은행 신용등급도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를 표했다.
김 교수는 건설사와 은행들의 대주단(貸主團) 협약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심사등급을 나눠 대출상환 유예 등을 해준다고 해도, 부실화된 기업을 구조조정하지 않으면 부실이 은행에 감염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아무리 유동성을 공급한다 해도 기업들 중 옥석이 가려지지 않는 이상 효과가 없다”며 “중소기업의 부실이 은행에 감염돼 대기업들도 유동성을 공급받지 못한다면 결국 IMF 당시와 다를 바가 무엇이 있는가”라고 지적했다.
그는 덧붙여 “3월 위기설은 해외자금의 회수가 아니라 내수 부실이 외환시장으로 옮겨가는 것”이라며 “지금 정부가 결단을 내리지 못하면 3월 위기설은 ‘현실’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 현실은 최악의 시나리오로, 부실화된 은행과 기업들을 해외자본들이 아무도 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IMF 당시와 달리 지금은 국제적 금융위기이기 때문에 사줄 자본들이 없고, 세계 각지에 좋은 매물들이 많다는 것이 시장관계자들 이야기이다. 김 교수는 “금융위기에서 비켜나 있는 중국과 일본이 한국기업 매물을 인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그것이 3월이 될지 내년 중하반기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3월 위기설이 현실화되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가 지금이라도 결단을 내려 구조조정을 단행해 공적자금을 투여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은행들이 정부규제를 받기 싫어 스스로 BIS비율을 높이는 등 버티고 있지만 무모하다.”이라며 “이 때문에 정부도 공적자금을 투여할 명분이 없어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현희 기자 (wooang13@ermedia.net)

박스
이광주 한국은행 부총재보 인터뷰

“가용외환 300억달러 주장은 다 거짓말”

12월 말 외환보유액은 기획재정부 김동수 제1차관이 말했던 2000억달러 유지가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미채권의 매각 가능 여부는 여전히 논란이지만, 시장관계자들은 정부 이야기에 신뢰감을 갖고 있지 않다. 이에 한국은행 이광주 부총재보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외환보유고의 안전성을 알아봤다.

가용 외환보유액에 대해 논란이 많다. 가용 외환보유액은 2005억달러 전부라고 보면 된다. 외환보유고는 즉시 가용할 수 있도록 유동성과 시장성이 있어야 한다.
지난 2005년 외환보유액이 2000억달러를 넘었다며 한국은행을 비판한 기사들이 많았다.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내용이었다. 주식과 부동산은 타이밍을 따져야 하기 때문에 유동성이 부족하다.

미채권과 프레디맥·페니메 채권이 논란 대상인데. 앞서 말했듯이 외환보유액은 즉시 가용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미채권도 즉시 가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미채권 금리가 현재 제로금리다. 안전자산으로 인식돼 미채권을 사려고 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프레디맥·페니메 채권도 선순위채권이라 언제든지 현금화할 수 있다.

유동외채 만기 연장 비율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는지. 현재로서 따질 수 없는 문제이다. 경상수지를 적자로 예상했는데 흑자가 났다. 그만큼 유동외채도 줄어든다. 지금은 경상수지를 걱정했던 때와 많이 달라졌다. 몇 퍼센트가 될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지금 뭐라고 말할 수 없다.

한미 통화스와프 협정 중 내년 4월 만기 전에 300억달러를 소진할 경우에는 스와프 한도 확대를 위해 IMF를 거치고 FRB로 오라는 조항이 있다고 들었다. 말도 안 된다. 한국경제를 파탄내고 싶나. 모두 거짓말이다.

김현희 기자 wooang13@ermedia.net


키워드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