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는 이구택 전 회장의 갑작스런 사퇴를 계기로 회장 승계 전담 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사진은 정준양(왼쪽에서 두번째) 포스코 회장이 작업현장을 찾아 관계자들을 독려하고 있는 모습.

올초였던 지난 1월15일. 국내 산업계를 온통 시끌벅적하게 만든 한 ‘사건’이 발생했다.
국내 제일은 물론 세계 시장에서도 최상위 클래스에 올라 있는 철강기업 포스코의 회장이 임기를 1년이나 앞둔 시점에서 사퇴를 표명했기 때문이다.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고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새로운 젊은 피의 수혈이 포스코에 필요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구택 전 포스코 회장의 판단은 둘째 치고 언론계와 재계가 일단 들끓기 시작했다. 과연 철탑같이 버티고 서서 우리 산업계를 지탱해야 할 포스코가 갑작스런 회장의 사퇴에 과연 제대로 후계자를 낼 수 있을 것이냐는 게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시끌벅적한 시간이 한동안 계속됐지만 포스코는 아무런 문제 없이 정준양 신임 회장을 새로운 수장으로 맞아들여 위기 상황 속에서도 한 치 흔들림도 없는 굳건함을 보여주고 있다.

포스코의 이 사례는 단순히 한 기업의 CEO 교체 문제로 끝나지 않았다. 아직까지 초보 수준에 머물고 있는 우리 기업들에게 합리적인 CEO 승계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크게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한국형 CEO 승계 모델, 포스코가 만드나

지금까지 포스코는 철저히 전문경영인에서 전문경영인으로의 CEO 승계과정을 밟아왔다. 태생적으로 공기업으로 출발해 민영화 이후 뚜렷한 대주주 없는 ‘국민기업’의 성향을 이어가다 보니 당연한 결과였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포스코는 CEO 승계 절차에 있어서 재계 여러 기업들중 가장 앞선 노하우를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CEO 승계 시스템도 아직은 부족하다. 회장이 교체될 때마다 정권의 압력설 등으로 잡음이 있어왔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포스코는 원활한 회장직 승계 작업을 위해 회장 승계를 전담하는 위원회를 이사회에 설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현재 운영되고 있는 현행 사외이사 추천위원회, 최고경영자(CEO) 후보 추천위원회와 별도로 이사회 내에 또 하나의 위원회를 두는 방식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만인 포스코가 이런 프로그램을 완성시켜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정착시킨다면 CEO의 갑작스런 사퇴에도 경영공백을 최소로 줄일 수 있게 된다.

포스코의 사외이사들은 정 회장의 취임 직후부터 이런 방안을 활발히 논의했다. 이와 관련해 올 초 포스코 사외이사인 안철수 박사도 “이사회에서 회장직 승계 프로그램에 대한 논의를 중점적으로 할 것”이라며 “정식 위원회를 이사회 내에 만드는 방안이 논의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재계에서는 일종의 태스크포스팀의 형태로 사외이사들과 포스코 고위급 인사들로 구성된 위원회를 만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경영상의 투명성을 위해 주축은 사외이사들이 하되 실무를 낱낱이 꿰 뚫고 있는 포스코 내부인사들의 분석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승계 프로그램 핵심은 공백기 없는 것”

전문가들은 CEO 승계 프로그램의 핵심에 대해 “공백기가 없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인사컨설팅 기업 휴먼테크INS의 김철승 대표는 “CEO가 취임하면서부터 후임을 위한 준비에 들어가는 것이 해외의 선진 사례들이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기존 CEO의 입김을 최소화하면서 가장 객관적으로 후임을 고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기업 경영의 영속성을 위해 내부인사를 중심으로 고르되 그 과정을 투명히 하고 해당 기업조직에 전혀 동요가 없도록 안정적으로 승계하는 것이 방법론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국적인 상황에서는 아직까지 외국의 사례를 그대로 벤치마킹해서 현실로 옮기기에는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우리 기업들은 오너의 소유이고 경영은 오너 일가에서 하는 것이다”며 “공기업이나 공기업에 가까운 민영기업들이야 관계가 없겠지만 오너가 그룹을 움켜쥐고 있는 상황에서 그 자리를 전문경영인에게 내주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승현 기자 zirokoo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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