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장수기업 만들 CEO 없나요”

부천에 자리 잡은 가락전자는 앰프, 스피커 등의 음향기기를 주로 생산하는 연 매출 120억원의 중소기업이다. 이 회사의 장병화(62) 회장은 요즘 자신의 뒤를 이어 회사를 이끌어갈 후계자를 찾느라 정신이 없다. 지난해에는 TV 프로그램에까지 직접 출연해 후계자를 찾는다는 내용의 방송까지 했다.

“중소기업은 회사의 운명을 좌우할 변수는 많은데 이런 변수에 대응할 탄력이 떨어집니다. 따라서 장수의 선택 자체가 전쟁에서의 승패를 좌우하죠.”

그가 자신의 뒤를 이을 차세대 경영인 발굴에 온 정성을 쏟는 이유다. 장 회장에게 기업을 물려받을 자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아들이 둘이 있고 딸도 하나 있다. 그렇지만 후계자 선택에 들이대는 깐깐한 기준은 피로 맺어진 관계라고 해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아들은 믿을 수 있지만, 믿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기업 경영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며 “무조건 자식에게 회사를 넘겼다가 성공한 회사는 많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그래서 그는 이미 아들도 객관적인 심사 대상으로 올려놓고 세심하게 항목별로 평가를 내리는 중이라고 했다. “가락전자를 일본이나 독일의 중소기업처럼 100년 가는 장수기업을 만들어줄 후계자를 찾는다”는 장병화 회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견실한 중소기업이 후계자를 공개모집하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닌데요. CEO를 공개모집하게 된 배경은 무엇입니까.

장병화 가락전자 회장(이하 장병화)●중소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유능한 장수(將帥)가 있어야 한다고 봐요. 대기업에는 탄탄한 조직이 있고 그런 인재들이 꽤 많은 것 같지만 중소기업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인재 풀이 없어요.

대기업의 경우엔 1년 정도 경영을 맡겨서 실적이 좋지 않으면 다른 사람으로 바꿀 수도 있겠지만 중소기업은 그렇지 않습니다. 선택 자체가 결과예요.

왜 유독 중소기업이 그렇습니까.

장병화●경영자를 잘못 바꾸게 되면 문을 닫거나 경영에 큰 어려움이 생겨요. 아까 장수하고 비교했지만, 조직이 작고 결정이 결과와 직결되는 중소기업의 경우엔 장수가 전쟁의 승패까지 가르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CEO의 손에 회사의 흥망성쇠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렇다면 더더욱 혈연인 아들이 믿음직스럽지 않습니까?

장병화●믿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기업 경영이 이뤄지는 것은 아닙니다. 경영 능력이 있다면 자식에게 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겠지요.
하지만 우리 사회를 잘 들여다보면 자식에게 넘겨서 잘되는 기업의 비율이 높지 않아요.

물론 자식에게 물려주는 방법이 가장 쉽지요. 가업도 이을 수 있고요. 그러나 성공하기 어려워요. 그렇기 때문에 유능한 장수가 있다면 아들이든, 외부에서 영입하든, 내부 장기근속자든 기업에 유리한지를 보고 받아들이는 것이죠. 그것이 장수(長壽)기업을 만드는 것이고 그 장수기업은 결국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는 겁니다.

해방된 이후에 산업화가 이뤄져서 우리 세대가 산업을 일군 세대이고 처음으로 다음 세대를 걱정하는 세대입니다. 우리 세대에 첫 단추가 잘 끼워지면 100년 가는 기업이 나올 수도 있어요. 일본이나 독일 같은 산업 선진국을 보세요. 장수기업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도 가족들이 서운해할 것 같은데요.

장병화●집사람이나 아이들이 많이 서운해하긴 하죠. 주변에서도 자식들이 능력이 안 되면 회사를 넘기면 되지 괜한 짓을 한다고 말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워낙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너희들 갈 길을 알아서 가라’고 교육을 해놓아서인지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분위기예요.

제가 아들 둘, 딸 하나를 뒀는데 첫째는 대기업에 다니다 지금 회사에서 일하고 있고 둘째 딸은 수의사입니다. 셋째는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본부에 근무하고 있어요. 하고 싶은 길을 찾아서 밥벌이를 하고 있는 것이죠. 만약 하고 싶은 일이 경영이라면 언제든지 경영 공부를 해서 능력을 키우고 가능성을 검증받아야만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언제까지 후계자를 계속 찾을 생각 입니까.

장병화●마음에 드는 분이 나타날 때까지 해야겠지요. 앞서 말했듯이 중소기업의 CEO를 찾는 일이 단순하지 않아요. 계속 찾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공모 소식을 듣고 연락해 온 분들도 있고, 인재들을 추천해서 제안하는 외부 기관의 인재추천 보고서도 큰돈을 들여서 받아보고 있어요. 몇 천만 원이니까 우리 회사로선 적지 않은 돈입니다. 지난해부터 몇 분 면접을 했지만 마땅한 사람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만일 후계자를 뽑게 되면 그분의 지위는 어떻게 되나요.

장병화●우선 제 뒤를 이을 CEO로 발탁되면 5년간 저와 함께 공동 대표이사로 경영을 하면서 능력과 자질을 검증받게 될 겁니다. 혼자 검증받는 것이 아니라 저희 회사에 20년 이상 장기근속하신 두 분의 임원과 제 아들까지 포함해서 일종의 레이스를 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분이 저희 회사의 CEO로 알맞은 분이라고 생각되면 안정적인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회사 지분 10%를 줄 생각입니다.

현재 회사의 지분구조가 어떻게 되어있나요.

장병화●회사 지분의 70%를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만일 외부에서 영입한 CEO가 후계자가 된다면 그분에게 10%를 주고, 장기근속자에게 일부, 자식들에게 일부를 줄 생각입니다.

지분은 자녀분들에게 주고 경영권은 외부에서 온 CEO에게 주면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장병화●자식들에게 지분을 물려주게 되더라도 만일 외부에서 CEO를 모셔오게 된다면 경영권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장치를 만들어 둘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 자식들에게 49%의 지분을 주고 51%는 우리 사주를 만들어 직원들과 임원들이 나눠 갖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요.

무척 고민을 많이 하셔서 경영권 승계안을 짜셨는데 경영권 승계를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나 제도가 있으면 하는 생각은 안 하셨나요.

장병화●그런 생각 많이 했습니다. 당초 제 계획은 회사 창립 30주년이 되는 2007년에 경영권을 물려주고 은퇴할 생각이었는데 그게 여의치 않아 이렇게 시간이 흘러버렸습니다. 물론 중기협 중앙회나 기업은행 같은 곳에서 가업 승계 지원을 해주고는 있지만 경영권 승계라는 것이 워낙 장기간에 걸친 계획이 필요한 일이라 큰 도움이 안 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중소기업의 가업 승계나 경영권 승계를 돕는 여러 가지 세제 지원은 물론이고 장기적으로 제대로 된 경영권 승계가 이뤄질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회장님이 생각하시는 중소기업 경영자의 가장 큰 자질은 무엇입니까.

장병화●글로벌 시장을 보는 능력과 비전, 리더십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요즘과 같은 글로벌 시대에는 중소기업 역시 글로벌 경쟁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유능한 중소기업 CEO는 세계적인 시장의 흐름을 읽고 직원들에게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형구 기자 lhg054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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