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부터 새벽까지 일하며 수확한 참외는 선별과정을 거쳐 포장 판매된다.


때 이른 더위는 벌써 여름으로 달려가고 있다. 한낮의 더위가 예년의 기온을 한참 웃돈다. 이런 여름에 우리의 입맛을 시원하게 해주는 게 있다면 참외, 수박 같은 과일일 것이다. 수분이 많아 갈증을 해갈시켜주고 더위에 지친 몸을 보완해주는 제철 과일은 우리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활력소다. 금싸라기 참외의 고장 성주, 그 곳에서도 1등 참외농가인 성주읍 용산1리 김당림 이장 댁을 찾았다.

뜨거운 햇살을 뿜어내던 태양도 조금 지쳐서 쉬어갈 오후 6시, 경북 성주군 성주읍 용산1리에 도착했다. 하우스에서 온 몸이 땀에 흠뻑 젖은 채 환한 웃음으로 손님을 맞이한 김당림 이장은 밭에서 바로 딴 참외부터 건네준다. 먼 길 찾아온 사람에게 우선 목이라도 축이라는 배려가 고맙기만 하다. 손에 감기듯 잡히는 노란 참외가 싱싱하다. 아니 노랗다는 표현보다 황금색이라고 해야 할까? 노란색 껍질에 코팅이라도 해 놓은 듯 반짝이는 참외를 만지면서 사람들이 왜 ‘금싸라기’ 라고 하는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성주는 참외 농사짓기에 최적의 환경을 가지고 있어요. 겨울엔 대체로 따뜻하고 여름에는 태풍과 큰 비의 피해가 적어요. 가야산과 낙동강이라는 천혜의 자원을 선물 받은 곳이지요. 기후도 참외농사에 가장 적합하고요. 때문에 전국 참외 생산량의 70% 이상을 성주에서 생산하는 것이지요.”

경북 성주군은 1950년대부터 수박과 참외를 많이 재배한 것으로 유명하다. 낙동강을 기대고 있어 습한 땅이 많은 덕에 과채류 재배에 궁합이 맞기 때문이다. 참외 재배도 다른 지역보다 이른 1960년대에 시도됐다. 성주군은 대체로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는 태풍과 큰 비의 피해가 적기 때문에 지역적으로 매우 유리한 입지를 지니고 있다. 북쪽의 금오산과 서쪽의 가야산을 잇는 산줄기가 겨울의 찬바람과 눈, 여름의 태풍과 비를 막아주고 있기도 하다.

낙동강 너머에 있는 대구와의 사이에 다리가 놓이면서 특히 참외 재배가 크게 늘어났는데, 운송비 등에서 유리한 참외가 수박을 밀어냈다. 1990년대 초만 하더라도 ‘성주 수박·참외 축제’가 열렸으나 현재는 ‘성주 참외 축제’가 매년 4~5월에 열리고 있다. 김 이장은 “성주참외의 품종은 ‘오복’이라는 것인데 당도가 높고 아삭거리는 씹는 맛이 일품”이라면서 성주 참외가 왜 유명한지 설명했다.

현재 성주에서 재배하는 참외 품종은 대부분 ‘오복’이다. 금싸라기 계열의 품종이라 ‘오복금싸라기’라고도 불린다. 이 품종은 1957년에 들어온 은천에서 유래했다. 1970년대 중반 은천을 개량한 신은천이 나왔는데 이는 시설재배용이었고, 이때부터 시설재배가 본격화됐다고 한다. 1980년대 중반에는 참외의 대표 브랜드인 금싸라기가 등장했는데, 은천에서 개량한 것이니 은천금싸라기 또는 금싸라기은천이라 불렀다. 지금의 참외 품종은 거의 다 이 은천금싸라기에서 조금씩 개량한 것이라 보면 된다.

하지만 같은 품종이라도 어떤 사람이 어떻게 농사를 짓는가에 따라 맛과 품질이 다를 수밖에 없다. 같은 브랜드에서도 가격의 차이가 나타나는 큰 이유다. “우리는 퇴비를 기본으로 농사를 지어요. 금비(화학비료)는 아예 안 해요. 쌀겨 등을 혼합해서 만든 퇴비를 가지고 농사를 짓기 때문에 다른 집과 다르지요. 때문에 다른 농가에서 쓰는 보조 퇴비도 하지 않습니다. 보통 성주참외의 당도는 15블릭스 정도에요. 하지만 우리 하우스에서 나가는 참외는 훨씬 달고 맛있습니다. 당도가 높을 때는 20블릭스를 넘어가요. 마트에서 판매하는 유산균 음료가 보통 18블릭스 정도니까 그것보다 훨씬 달다고 할 수 있지요.”

김 이장의 아버지도 이곳에서 농사를 지었다. 도시에 나가 생활하던 김 이장은 90년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를 이어 참외를 경작했으니 오랜 노하우가 있을 법도 했다. “같은 품종이라도 맛과 향취 등이 다를 수 있어요. 결국 농사를 어떻게 짓느냐에 달린 것이지요. 남들보다 더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보다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노력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게 노하우입니다. 무엇이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요.”

김 이장은 성주군에서 참외농사의 대가(大家)로 이름이 높다. 2010년과 2011년에는 우수 농가로 선발돼 일본과 중국도 다녀왔다. 일종의 선진농업 견학이다. “재작년에 일본에 가보니 우리보다 농업이 한 10년 정도 앞서 있더라고요. 그 중에 특별히 눈에 띄는 게 소과(작은 과일)에 대한 것 이었어요. 최근에는 우리나라도 큰 과일보다 작은 과일에 대한 수요가 늘었어요. 우선 핵가족화의 영향도 있지만 음식쓰레기 문제 때문인 것 같았어요. 앞으로 과일 소비의 패턴이 중·소과 중심으로 변한다는 것을 예상해볼 수 있었습니다.”

김 이장의 얘기처럼 요즘 추세는 알이 큰 과일보다 중간크기나 작은 크기의 과일이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수출시장에서는 작은 크기의 과일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요즘 택배로 나가는 것을 보면 서울이나 대도시에서는 작은 크기의 참외를 주문하는 경우가 많아요. 반면 아직 지방에서는 크기가 큰 참외가 주로 나가고요. 최근 마트에 가면 수박도 쪼개어 팔잖아요. 식구가 적다보니 한 통을 다 먹기 부담스러운 것 이예요. 이런 흐름을 잘 알고 있어야 보다 높은 가격의 작물을 재배할 수 있습니다.”

김 이장은 이런 정보를 얻기 위해 발품 파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자신이 최고라는 자만에 빠지면 더 이상 발전이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농사는 평생 공부를 해야 합니다. 자신의 방법만이 옳다고 고집하면 안되는 게 농사예요. 특히 정보를 얻는 게 중요한데 바쁘다는 핑계로 소홀히 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김 이장은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항상 정보수집에 열을 올린다. 농사를 잘 짓는 사람들을 찾아가 물어보기도 하고, 도 농업기술센터 등에서도 정보를 얻는다. 끊임없이 연구 노력해야 하는 게 농사라는 생각 때문이다. 쉽게 짓는 농사가 없겠지만 참외농사도 고된 일 중의 하나다. 때문에 건강이 가장 걱정이다. 한해 두해 농사짓고 끝날 일이 아니기에 몸 챙기기도 쉽지 않다.

“요즘에는 하루 두세 시간 잠자기도 힘들어요. 특히 밤과 낮이 바뀌어서 살아야 하는 게 더 힘들게 하지요. 다른 작물과 달리 참외가 손이 많이 가는 농사거든요.” 김 이장의 일과는 오후 서너 시쯤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한 낮에는 높은 온도 때문에 하우스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보통 오후 네 시쯤 밭에 나와서 이것저것 준비하고 일을 시작해요. 하지만 이때도 하우스에 들어가면 온 몸이 땀으로 목욕을 할 정도로 땀을 쑥빼야 하지요. 때문에 본격적인 일은 저녁을 먹은 이후에 시작합니다. 그때부터 새벽까지 일을 하고 참외를 따지요. 보통 새벽 다섯 시 넘어서 참외를 따고 아침 아홉시 전에 성주 공판장으로 참외를 가져가야 합니다. 참외를 물에 씻어 크기별로 선별해 포장을 합니다. 경매까지 마치고 집에 오면 거의 점심때가 다 되지요.”

비닐하우스에서의 참외 재배는 11월에 씨앗을 뿌리면서 시작된다. 보름이면 싹이 나는데, 이 싹의 윗부분을 잘라 박이나 호박의 싹을 대목으로 하여 접을 붙인다. 접붙인 참외의 모종은 한 달 후 비닐하우스 안에 심게 되며, 이르면 3월 초순부터 수확을 할 수 있다. “올해는 작기가 좀 늦었어요. 원래 꿀벌 재배를 하려고 했는데 잘 안됐기 때문이지요. 지금은 90%이상 회복해서 문제는 없어요. 좀 더 일찍 작기를 맞췄다면 좀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을 텐데 좀 아쉬운 일이지요.”

[사진 이코노믹리뷰박지현기자]


김 이장은 용산1리 부근에 6000평정도 참외농사를 한다. 올해에는 4000평 정도만 모종을 심었다. 나머지 2000평은 내년에 더 많은 수확을 얻기 위해 땅을 쉬게 하면서 물을 집어넣는 작업을 한다.

“올해 매출 목표로 1억7000만원 정도를 잡았어요. 현재 예상 수확량의 40% 정도가 수확해서 팔려나갔지요. 생산량으로는 40%지만 금액으로는 1억원 남짓 돼요. 앞으로의 60%에서 날씨만 도와준다면 8000만원 정도의 수확을 더 할 수 있을 거예요.”
참외는 이제 노지재배가 거의 사라졌다. 때문에 이르면 3~4월에도 맛 볼 수 있는 과일이 됐다. 당연히 이때는 높은 가격대가 형성된다.

“재작년 4월에는 한 보름정도 15kg 한 상자에 20만원이 넘어갔어요. 올해에도 10kg 한 상자에 11만원도 받아봤고요. 이렇게 시기를 맞출 수 있으면 훨씬 비싼 가격에 팔 수 있지요.” 김 이장의 밭에서 나는 참외는 다른 농가보다 더 좋은 가격을 받는 경우가 많다. 공판장에서 경매할 때 그만큼 품질을 인정받는 것이다.

하지만 김 이장은 아쉬움도 많다. “예전엔 한 해 농사가 4000만원만 해도 부농이라는 소리를 들었어요. 하지만 이제 1억원을 넘게 해도 그때만 못해요. 단위만 커졌지 농가의 실질소득이 적어진 탓입니다. 농사를 지을 때 들어가는 재비용이 너무 많이 올랐어요. 매출은 늘었지만 실제로 농민 손에 잡히는 돈은 예전만 못한 것 이지요.”

이어 농민들을 힘들게 하는 것으로 교육비와 농기계를 꼬집었다. “큰 아들이 군대마치고 대학 2학년 이예요. 딸 아이는 4학년이고요. 취업 때문에 휴학을 하기도 했지만 모르겠어요. 요즘은 취업이 안 되면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유학을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아직 걱정이예요. 농촌에서는 먹고 사는 걱정이 아니라 이런 교육비가 걱정이지요. 한해에 대학등록금에 생활비 합치면 한 사람 당 2000만원씩 들어요. 우리 같은 경우 한해에 4000만원 정도 지출되는 것이지요. 웬만한 도시 근로자 월급 이상이 교육비로 나가는 것입니다.”

김 이장은 비싼 농기계도 정부에서 나서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요즘 젊은 농부들의 농가부채는 대부분 비싼 농기계 때문입니다. 콤바인이나 트랙터 등 농사지을 때 필요한 농기계가 1억원에서 몇 천만원이예요. 예전에는 정부에서 지원을 많이 해줬는데 이제는 그런 것도 없어요. 농기계 없이 농사지을 수도 없고 결국 이게 고스란히 빚으로 남는 것입니다.”

김 이장은 앞으로 ‘생산자 이력제’를 통한 직거래가 활성화되기를 강력히 희망했다.
“일본의 경우 이제 중도매인이 점점 줄어가고 있어요. 일본 농산물 유통이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거래를 하는 방식으로 변하기 때문이지요. 우리나라도 생산자 이력제 같은 게 시작은 됐지만 아직도 경매 방식을 택하고 있잖아요. 앞으로 농산물 유통의 흐름이 이쪽으로 변해야 잘 사는 농촌이 만들어질 겁니다. 아니면 지금처럼 유통마진 때문에 제값 받기가 어려울 테지요.”

김 이장은 올해 참외를 많이 먹으라고 권했다. “참외는 몸에도 좋고 다이어트에 그만 이예요. 특히 임산부들에게 특효입니다. 더운 여름을 나기에는 참외만한 과일도 없을 겁니다. 올해 참외 많이 먹고 다이어트 하세요.”

예부터 참외는 더위를 식혀주면서 피로를 회복시켜주는 저칼로리 과일로 인기가 높다. 일반적으로 참외의 익은 열매는 식용으로 활용하고, 덜 익은열매는 최토제(催吐劑) 등의 약재로 활용하고 있다. 참외는 ‘오이 보다 맛과 향기가 썩 좋다’는 의미를 지닌 과일로, 맛이 달고 성질이 차며 독이 없고, 진액(津液)을 생기게 해 갈증을 멎게 한다. 몸에 열이 나면서 가슴이 답답한 증상을 없애며, 소변을 잘 나오게 해 부종(浮腫)을 치료한다. 황달과 입·코에 생긴 부스럼을 없애주며, 잦은 감기와 손발이 차가운 증상, 변비 등의 치료에도 활용돼 왔다.

참외에 함유되어 있는 포도당과 과당은 인체에 흡수가 빨라 피로회복에 도움이 된다. 또 열량이 적고 비타민과 수분이 풍부해서 탈수(脫水)를 예방하며, 신장의 기능을 좋아지게 한다. 이뇨작용을 도와 몸속의 수분과 노폐물을 적절히 배출해서 몸의 부은 것을 가라앉히며,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활용된다.

한상오 기자 hanso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