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5일. 무슨 날일까? 친구의 생일이었던가, 아니면 결혼기념일? 모두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전 국민에 해당되는 날이 아니라는 점에서 틀렸다. 지난 5월 25일은 ‘차(茶)’의 날이었다. 1981년 지정돼 올해로 30년을 맞이한 셈인데 이를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차에 대한 관심, 왜 수면위로 떠오르지 못하고 있을까.

폐쇄적인 차문화 현대인 매력 못 느껴
국내 차 산업이 처음부터 부진하지는 않았다. 1970년대 중반부터 싹트기 시작해 1980년 들어서는 본격적으로 성장했다. 이 때가 보성과 하동, 제주도를 중심으로 제다산업이 점차 자리를 잡기 시작한 시점이다. 여기서 그칠세라, 1995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차 산업은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성장해 ‘전성기’를 누렸다.

시장이 확대됨에 따라 관련 교육기관 및 단체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본격적인 부흥기를 맞이했다. 전국지자체 행사에서는 차가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내기도 했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매년 20%이상 늘어나던 차 인구의 증가 폭이 급속히 둔화됐고, 차소비도 직격탄을 맞게 됐다. 불과 몇 년 새 발생한 일이다.

여연 차문화학회장(동국대학교 차문화콘텐츠학과 교수)은 이 같은 감소세의 원인을 내·외부적인 요소로 해석했다. 우선 외부적 요인으로는 중국차의 시장점유율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전통 덖음 녹차 중심의 한국차에 싫증을 느낀 소비자들이 다양한 종류의 중국차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는 분석이다. 또, 공격적으로 성장한 커피시장도 한몫했다.

내부적인 요인도 있다. 차문화가 다소 ‘폐쇄적’이라는 인식이 적잖다. 차문화에는 아무래도 ‘전통’과 ‘예절’이 불문율처럼 따라 붙는다. 긴 호흡이 필요한 이 같은 키워드는 ‘신속함’에 적응된 현대인들에게 맞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또, 문화로서 ‘즐길 요소’가 부족하다는 점도 걸림돌로 꼽힌다. 얼핏 딱딱하고 권위적인 ‘다도(茶道)’는 젊은 층을 끌어들이기에 매력적이지 못했다. 여 회장은 하향세를 띠게 된 데는 내부적인 요소가 더 큰 작용을 했다고 강조한다. 그는 “박제화된 커리큘럼과 차 시연은 더 이상 일반 대중들의 관심을 유발시키기 어려운 상태”라고 지적했다.

조기정 목포대학교 대학원 국제차문화학과 주임교수도 차산업이 ‘불황’을 맞게 된 이유에 대해 나름의 시각으로 설명했다. 조 교수는 차산업의 총체적 부진의 원인을 다섯 가지로 나눠 규명했다. 우선은 차나무 육종에 대한 지원과 연구부족으로 신품종 개발이 저조했다는 점이다. 이는 자연히 차 종류의 다양성을 꾀하는 것에 대한 걸림돌로 작용했다. 또, 다양한 차의 제조법을 가르치는 전문 교육기관이 부족한 것도 문제였다. 차 산업 자체가 영세하기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이 두 가지 요인이 생산부진의 원인이라면 소비부진에 따른 원인도 있다. 차 인들의 자세가 미정립 돼 차문화를 제대로 계승하지 못했던 점과 홍보부족 등이다. 마지막으로는 정책적인 문제다. 차문화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정책이 미미하다는 점이다. 사실 정책적인 시도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2010년 3월, 이명수 자유선진당 의원 등 10인이 차 관련 법안(전통 차 문화의 보존 및 진흥에 관한 법률)을 제안한 적이 없다. 당시 차 업계에서는 해당 법률이 본회의에서 통과되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빛을 보지는 못했다. 이에 따라 여러 차인들은 19대 국회에서 이 같은 법률이 제정될 수 있기를 다시 한 번 기대하고 있다.

여 회장은 “차문화를 어떻게 우리 문화 속에서 재구성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모두가 중심에 서고 싶어 했기에 누구도 중심에 설 수 없었다”면서 “우리는 차문화산업을 ‘다도’라는 한 차원 높은 곳에 지정하고, 차의 대중화를 외면했다. 즉, 차로써 문화의 뿌리가 되기보다는 ‘꽃’에 연연하고 말았다”고 탄식했다.

인터뷰 | 박희준 차문화학회 부회장
“다양한 문화코드 접목해 녹차 르네상스 이루자”

“차에 대한 일종의 ‘선입견’이 차 소비를 막고 있습니다. 한의학적으로 ‘차’는 ‘찬음식’으로 보통 약리학적 접근을 합니다. 한의학적으로 접근한다면, 건강에 도움이 되는 기호식품으로 자리잡아야 하는데 2007년을 기점으로 소비는 퇴행하고 있지요. 즉 차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정확한 방법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에요.” 박희준 차문화학회 부회장의 논조는 부드러우면서 강했다. 그는 현재 우리 차 산업이 직면한 과제와 타개책을 나지막이 풀어나갔다.

“뿐만 아니라 차를 단순히 농작물의 하나로 보는 정책도 문제라고 생각해요. 우리 의식 속에 뿌리내린 ‘먹는 것이 약이다’라는 의식동원(醫食同源), ‘몸과 땅이 하나’라는 하는 신토불이(身土佛二), ‘우리 것이 좋은 것이다’라는 소비패턴을 정책적으로 살려내지 못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이를 우리 차에 접목하면 차문화산업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 수 있을 텐데 말이예요.”

박 부회장은 인터뷰 내내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2007년 녹차 농약 파동이후 회생의 조짐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당시 차 산업 관계자들이 사건의 경위를 보다 철저하게 규명하고 대책을 마련했다면 소비자들의 외면이 지금과 같진 않을 것이란 게 박 부회장의 말이다. 그는 “후쿠오카 원전사고 이후 외국 바이어들은 일본산 녹차를 외면했지만, 일본 차관계자들은 더욱 활발하게 일본차의 안정성을 홍보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라고 언급했다.

그에게 우리 차 산업의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인지 물었다. “커피시장의 동향에서 차 산업의 걸림돌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어요. 커피의 경우 초기 봉지형과 자판기와 같은 대중적인 키워드로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어낸 다음 프리미엄급으로 상향조정을 했지요. 반면, 차는 고급적인 이미지를 버리고 티백시장으로 내려와 국민이 외면하게 된 것이지요. 즉 소비자 타깃팅이 잘못됐다는 얘기입니다.”

커피가 100년의 역사 속에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대중들과 결합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세련미와 간편성의 코드를 읽어냈기 때문이다. 한편, 차는 예절 또는 전통찻집이라는 무거운 분위기속에서 재빠른 소비자의 취향을 읽어내지 못하고 멈춰서면서 그 무게감을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전달했다는 게 박 부회장의 지적이다.

그렇다면 타개책은 없을까. 그는 차 시장이 커지려면 대중화와 함께 고급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강한 마실거리일뿐 아니라 차가 아우르는 다양한 문화적 코드를 함께 키워나가야 합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외형을 줄이고 내실을 기해야죠. 그리고 뭉쳐야합니다. 생산자는 생산자, 유통인은 유통인 그리고 소비자는 소비자를 중심으로 뭉치고 생산자와 유통인 소비자가 함께 모여서 차 문화산업을 정책적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대표단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선택이 향후 백년이상의 국민건강과 국가이익에 관련이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첫 걸음부터 실천해야 해요.”

박 부회장은 구체적인 해결안 또한 제언했다. 우선 유아와 청소년 학교급식과 사회단체 급식 속에 차 음료를 포함하는 방안이다. 급식을 친환경으로 전환하여 차 소비시장의 확대를 끌어낸다는 방침이다. 이렇게 되면 국민건강에 청신호를 보낼 수 있고, 그 결과 복지국가로 전화되면서 국민건강보험의 원천적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또, 어린 시절부터 차를 접하기 때문에 청소년의 학원폭력과 정서불안을 본질적으로 치유할 수 있다고도 그는 내다봤다.

중국과 일본의 茶산업 육성책 벤치마킹을

차 선진국이라 불리는 ‘중국’과 ‘일본’은 어떤식으로 국민들에게 차를 알리고 있을까. 우선 중국의 2007년 차 재배면적은 95만2천5백ha로 한국의 307배다. 일본은 4만8천500ha로 한국의 16배이고, 대만은 1만7200ha로 한국(2005년 3월 1000ha)의 5.5배다.
중국의 차시장은 넓은 면적과 저렴한 노동력, 다양한 차종과 지역별 명차 등을 바탕으로 최근 10년 동안 급속히 발전했다.

중국에서 추진되고 있는 차 산업 대책은 ①녹색식품, 유기농차 요건을 충족한 차 생산 ② 살충제 등 농약 사용량 줄이기 ③재해저항성 품종 육성 ④기계화로 노동력 절감, 생산비 절감 ⑤품질관리 강화 ⑥ 청소년들의 다화활동을 통한 학교다도교육으로 소비층 확대 ⑦진정한 다인 10% 추가양성 등이다.

일본은 차의 오랜 연구역사와 체계적인 다도생활 보급으로 인한 전 국민 차 생활화, 병충해 방제 및 친환경 재배 등에 대한 철저한 제도와 관리, 홍보에 의한 소비자의 신뢰확보로 생산과 소비 측면에서 자국 차 산업 보호를 위한 방어벽을 굳혔다. 1971년 홍차수입 자유화로 그 동안 수출해오던 홍차산업을 중단하고 바로 녹차산업으로 전환하여 수출이나 국내 소비, 포장작업기, 제다기 등의 기계화에 성공했다.

일본의 차 산업 발전 대책으로는 ①평지다원 자동화를 통한 생산비 절감 ②품종다양화로 노력분산, 조업기간 연장, 병충해 저항력 개선 ③ 비료시용기준 등 재배기술 정립 ④ 농약잔류 허용기준, 생산 이력제(공개의무) 도입 등 친환경생산 ⑤ 차 산업 후계자 양성학교의 차 산업 지도자 양성 등이 제안되고 있다. 특히 일본은 차 생산인이나 소비자들이 각종 조직을 만들어 당면한 문제에 대해 정부에 건의 하는 등 국민으로서의 권리 찾기를 원활히 수행하고 있으며 정해진 규정을 철저하게 준수하고 있다.
출처 : 정병춘 前농업진흥청 목포시험장 차연구실장

박지현 기자 jh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