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한국의 스타가수 나훈아 씨의 형인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는 격언을 남겼다. 그 깊은 뜻을 풀이함에 있어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지만, 테스형의 말에 지식의 탐구에 대한 본능적인 성찰이 깔려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실제로 인류는 때로 실수하고 때로 뒷걸음치기도 했으나 문명의 발전이라는 운명의 나선을 걸으며 끊임없이 지식을 갈구하고 원했다. 이를 바탕으로 번성하거나 무너짐을 반복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 지금에 이르렀다.

그 연장선에서 인터넷은 지금까지 인류가 발명한 지식에 대한 무한의 열정을 함축시킨 대표적인 사례다. 시공간을 초월해 인류가 직접 지식을 공유하고 나눌 수 있도록 만들었으며, 그 결과 새로운 연결의 힘을 바탕으로 하는 지금의 시대가 창조됐기 때문이다.

여기서 또 다른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웹과 앱으로 대표되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연결을 전제하는 수준까지 이른 인터넷의 시대가 끝을 맞이하고 있으며, 이제 5G 및 클라우드와 인공지능 등을 바탕으로 초연결 시대가 폭풍처럼 다가와 우리의 모든 것을 이세계에 통째로 소환하려고 한다는 말이 나온다. 

선각자들이 가리킨 갈라진 홍해의 너머에 주목하자. 우리는 그곳을 기술의 가나안, 젖과 꿀이 흐르는 메타버스라 부른다.

▲ 세컨드 라이프. 출처=갈무리

"The Metaverse is coming"
인공지능 시대의 철학자,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지난 5일(현지시간) GTC 2020 기조연설을 통해 "지난 20년을 압도하는 앞으로의 20년에는 공상과학영화에서 보던 일이 시작될 것"이라며 "메타버스가 오고 있다"고 말했다. 

메타버스라는 용어는 현실세계를 의미하는 Universe(유니버스)와 가공 및 추상을 의미하는 Meta(메타)의 합성어다. 닐 스티븐슨의 1992년 소설 ‘스노 크래시(Snow Crash)에 처음 등장했다. 가상현실(Virtual Reality)과는 다르게 초월적 하이브리드 세상을 의미하며 3차원 가상공간에서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장면을 연출한다. 쉽게 말해 3D 공간에서 아바타를 통해 자아를 복제한 후 이를 통해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개념이다. 

물론 아직 메타버스에 대한 정확한 정의는 내려지지 않았다. 3D 공간에서 활동하는 자아를 가진 유저의 아바타가 서로 상호교류를 하는 것을 메타버스로 부르거나, 혹은 기기를 착용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3D 공간으로 넘어가는 것을 메타버스로 보는 시각도 있다. 혹은 가상의 공간과 현실의 공간을 연결하는 점에 집중하는 개념도 존재하며 자아를 가진 아바타가 가상의 공간에서 생산적인 활동에 집중하는 것을 메타버스의 본질로 보는 시각도 있다.

결론적으로 메타버스의 개념이 아직 완전히 잡히지는 않았다. 그러나 가상의 공간에서 자아를 가진 아바타가 활동한다는 공통분모는 선명하며, 이를 기점으로 메타버스의 개념을 활용하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속속 공개되고 있다.

▲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출처=엔비디아

세컨드 라이프에서 포트나이트까지
대표적인 사례가 린든랩이 만든 게임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다. 유저는 게임을 통해 새로운 아바타를 만들어 말 그대로 가상의 세계에서 '세컨드 라이프'를 즐겼으며, 생산활동을 해 돈을 벌거나 서로 감정적인 교류를 느끼기도 했다. 한국에서 도토리를 통해 싸이월드 아바타를 꾸미던 시기와 비슷하다.

다만 싸이월드도 마찬가지지만, 세컨드 라이프는 2008년 페이스북 등 1세대 SNS의 등장과 함께 사실상 몰락하게 된다. 메타버스의 개념을 활용한 최초의 세계가 무너지는 순간이다. 

몰락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으나, 업계에서는 '소통의 방식 희귀'에 주목한다. 세컨드 라이프가 메타버스의 개념을 창출하는데 성공했으나 당시 기술로는 완벽한 몰입감을 제공하지 못했고, 이런 상황에서 인터넷 기술의 발전으로 강력한 소통의 플랫폼을 원하던 대중들에게 다소 원초적이지만 직관적인 '텍스트'를 매개로 한 1세대 SNS가 어필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세컨드 라이프. 출처=갈무리

만약 세컨드 라이프가 기술적 고도화를 완벽하게 끌어내어 완벽한 메타버스를 창조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당시의 기술은 메타버스의 개념을 현실로 끌어내는데 성공했으나 완전한 몰입감을 주는 수준은 아니었고, 이러한 균열은 1세대 SNS의 등장과 더불어 2010년대 초부터 시작된 모바일 혁명 직격탄을 맞아 더욱 벌어지게 됐다. 

세컨드 라이프의 실패 중 하나로 PC에서 모바일로 이행하던 단계의 기술적 지원 실패가 지목되는 것이 의미심장한 이유다.

그러나 세컨드 라이프는 실패했어도, 메타버스의 이미지는 지속적으로 대중들에게 소구됐다. 그 자체만으로 호기심과 흥미를 끌어내는 개념이 엔터의 지속적인 관심을 끌어왔기 때문이다. 영화 <아바타>는 같은 기원을 가진 메타버스의 개념을 더듬으며 재미있는 상상력을 자랑했고, <레디플레이어원>은 비록 "게임 너무 빠지지 말아라"는 꼰대스러운 결말로 끝나지만 메타버스의 제대로 된 개념을 대중들에게 소개한 사례로 회자된다.

여기에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도 큰 역할을 한다. 보는 시각에 따라 기기를 착용하는 순간 메타버스의 입장권을 박탈당한다는 주장이 존재하기에 명확한 메타버스로 인정받지 못하는 구석도 있지만, 홀로렌즈는 물론 게임 마인크래프트를 통한 MS의 메타버스 도전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특히 가상현실 수준이 아닌 증강현실의 확장판을 노렸다는 점에서 메타버스의 기술적 현실성이 더욱 선명해지는데 공을 세웠다.

▲ 홀로렌즈 착용. 출처=갈무리

최근 앱 수수료 문제로 애플과 정신없이 싸우고 있는 게임 '포트나이트'도 대표적인 메타버스 사례다. 방탄소년단의 신곡이 흐르는 가운데 유저들은 포트나이트의 파티로얄에서 아바타의 몸을 뒤흔들며 축제를 즐겼고, 그 덕분에 포트나이트는 글로벌 OTT 플랫폼 넷플릭스의 경쟁자이자, 앱스토어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투사이면서 지난해 매출 18조원을 올린 거대 게임사이자, 이제는 유저들의 라이프스타일이 투영된 플랫폼으로 정신없이 활동하는 중이다. 

이 외에도 닌텐도의 '모여봐요 동물의숲'이나 네이버제트의 '제페토'도 메타버스의 연장선에 있다 볼 수 있다. 특히 제페토의 경우 엔터사들과의 협업으로 지식재산권과 기술의 시너지를 더욱 극대화시킬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SK텔레콤도 비슷한 꿈을 꾸고있다. 현실세계를 가상으로 복제하는 이스페이스(eSpace) 하이퍼 스페이스 플랫폼을 공개한 적 있다. 박진효 SK텔레콤 보안사업부장 겸 ADT캡스 대표(당시 SK텔레콤 ICT 기술원장)은 2018년 10월 홍콩에서 열린 퀄컴 4G 5G 서밋 현장에서 이스페이스를 소개한 후 <이코노믹리뷰>와 만나 "가상의 세계에서 다양한 활동이 펼쳐지는 사업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보여줄 것"이라 말한 바 있다.

▲ 메타버스의 구현. 출처=갈무리

메타버스를 찾아서
아직 메타버스의 개념은 명확하지 않고, 이를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는 기술력도 충분하지 않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메타버스의 시대가 온다고 말하고 있으나, 코로나19가 새로운 시대의 등장을 빠르게 당겨오는 상황에서 영국의 암을 인수해 반도체 시장의 큰 손이 되는 한편 GPU의 강자로 활동하는 엔비디아의 CEO라면 그 누구라도 '막강한 반도체 기술력과 GPU가 필요한 메타버스의 시대가 올 것'이라 말하지 않을까.

다만 메타버스가 강력한 잠재력을 가진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전 세계에서 단 한 사람만이 웹의 시대에서 모바일의 시대로 이어지는 순간을 예측하고 준비했던 것처럼 시대의 변화는 사고의 속도를 넘어서며 빠르고 급격하게 몰아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인터넷의 시대에 힌트가 있다고 본다. 

인터넷은 세계를 시공간의 한계에서 벗어나게 만들었으며 지식의 교류를 촉발시켰다. 물론 거대 플랫폼 사업자인 구글 및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 등 큰 손들이 그 중간에서 다양한 게인정보를 빼가는 일이 벌어지고 있으나 일반적으로 인터넷의 시대는 연결에 따른 지식의 공유와 이에 기반한 생활의 혁명을 전제로 한다.

인터넷이 모바일로 변하며 O2O, 즉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순간도 마찬가지다. 이제 우리는 단순히 지식을 갈구하거나 공개하는 수준이 아니라 거대한 생태계에서 모든 것이 '하나로 뭉쳐지는' 경험을 하는 중이다. 전단지를 집어드는 대신 배달의민족앱을 통해 배달음식을 주문하고 카카오T앱으로 택시를 호출하는 시대다.

여기까지 이르는데에는 인류의 욕망이 큰 역할을 했다. 지식을 습득하는 한편 기술의 발전으로 더욱 편리하면서 나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을 고민하려는 욕망이다. 스마트폰으로 전 세계의 소식을 순식간에 파악하고 내 일상이 더욱 편리해짐을 바라는 욕망.

▲ 메타버스가 구현된 게임 마인크래프트. 출처=갈무리

메타버스는 그 욕망의 교차로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현실세계에서는 절대 체감하기 어려운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공간, 혹은 우리가 현실세계에서는 절대 해내지 못하는 일들이 메타버스에서는 일상이 된다.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가상의 바다에 뛰어드는 순간 우리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언제든 그곳에 머물 수 있게 된다.

그 투영된 세계에서 새로운 삶을 살거나 두 개의 삶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면, 우리는 기꺼이 웹과 모바일의 시대를 관통했던 지식에 대한 욕망을 넘어설 수 있다. 다른 아바타와 소통하거나 새로운 세상의 법칙을, 그것도 시공간의 초월이라는 마법과 함께 누리게 되는 셈이다.

아직 메타버스가 언제 실현될 것인지는 모른다. 이 역시 지식장사꾼의 농간일 수 있다는 현실적인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세컨드 라이프의 2000년대가 아니며, 애플이 아이폰12에 라이다 스캐너를 탑재하는 시대다. 기술은 발전하고 있으며 새로운 시공간 초월의 소통 인터페이스는 언제든 우리의 삶을 관통할 수 있다. 그것이 꼭 메타버스일 이유는 없지만, 메타버스가 될 가능성은 상당히 농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