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재를 다루는 산업 중 가구 산업은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것으로 꼽힌다. 특정한 재료에 기능을 담고, 독창적인 디자인 차별화 요소를 갖춘다면 제품의 가치는 극단적으로 높아져서다. 이탈리아는 이 점에 주목, 고부가 가구 산업을 선도하는 국가가 됐다. IT산업에 비유하자면 모래알에서 뽑아낸 실리콘을 반도체로 만드는 과정을 해냈다.

한국의 가구시장은 2000년대 이후에서야 가구의 디자인과 상품성, 그리고 부가가치에 집중하는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소득이 증가하며 휴식에 대한 가치가 부각된 영향 때문이다.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면서 가구 산업은 제2의 호황을 맞았다. 하지만 대기업이 주도한 기존 가구시장에 중견·중소 기업들까지 공격적으로 뛰어들며 올해 가구시장은 그야말로 ‘대혼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전통 가구대기업이 소형 및 1인 가구 제품에 관심을 기울이는가 하면, 중견 가구기업들은 품목을 초월한 신상품을 출시하며 대형기업들과 전면전을 선포하고 나섰다.

 

한국 가구산업의 역사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벌목, 합판(合板) 산업의 발전과 함께 근대적 의미의 가구 기업이 등장한다. 1970년대에는 주택건설산업 호황에 맞춰 내수 시장이 급격히 성장했고, ‘88 서울올림픽’ 호황을 전후해 수많은 가구 기업들이 등장한다. 한샘, 리바트, 까사미아 등 국내 가구업계를 상징하는 기업들도 이 시기 자리잡았다.

이후의 시장 변화는 경제 이슈에 따라 움직인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전후해 가구 산업 전체에 대한 구조재편이 이뤄졌고, 이때 상당수의 기업이 도산했다. 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 현금 유동성이 급격히 확대된 2007년(글로벌 금융위기 후) 이후에는 가구의 가격보다 디자인, 품질, 사후관리에 집중하는 고객이 늘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DB

메가트렌드의 변화…혁신 못한 가구단지

1990~2000년대 초반. 기자는 경기도 용인의 염광 가구단지, 어정가구단지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한 중소 브랜드들이 가구단지에 있었고 분당, 용인 수지 등 신도시 입주를 앞둔 소비자들은 이곳에서 혼수, 이사 가구를 찾았다. 저렴한 임대료와 인건비, 상대적으로 가까운 소비시장. 이 세 가지 이점을 바탕으로 제조·유통을 동시에 하던 가구 직매장들이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이후 가구단지들은 점차 규모가 축소된다. 가장 큰 원인은 도심의 확장, 그리고 이에 따른 지대 상승이다. 인건비가 오르면서 중소가구브랜드들은 설 자리가 좁아졌다.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높지 않다는 점도 꼽힌다. 동종업체 간 높은 경쟁 강도, 과다한 유통비용, 불투명한 가격 등이 발목을 잡았다.

이에 수도권의 일부 가구단지는 재개발되거나 도심 창고로 활용되고 있다. 특정 단지는 슬럼화되기도 하는 등 지역과 형태에 따라 가구단지들은 다양한 단면을 보인다. 그리고 속칭 ‘잘 나가는 자리’에는 브랜드 가구들이 대리점을 늘렸다.

문제는 자체 브랜드나 디자인을 보유한 중소기업이 전체의 46% 수준(2017 한국가구산업체총람)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제품 개발 역량이 타사 제품 모방, OEM 생산에 그치기에 유통, 가격경합에서 경쟁력이 낮을 수밖에 없다. 트렌드에 맞춘 디자인을 공급하지 못하는 점, 부족한 사후처리 시스템과 복잡한 유통망 등 다양한 요인이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미래 성장 가능성도 낮다. 인테리어 산업에 유입되는 신규인력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생산 현장과 설치 분야 종사자의 90%는 외국인력으로 채워지고 있고, 생산 현장의 내국인은 50세 이상의 고령자가 대부분이다. 인적자원이 취약하다.

문제는 영세기업들의 현실이 앞으로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한 기업은 자체 분석한 보고서에서 한국 가구시장의 규모는 2017년 이후 매년 6%씩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과다 경쟁 상황이 지속되고, 몸집 큰 기업이 살아남는다는 시나리오다.

▲사진=이코노믹리뷰DB

점유율 늘리는 한샘·리바트·이케아… 빅3의 성장

한국가구산업체총람에 따르면 최근 5년(2010~2015년)간 출하액 1000억원 이상 가구업체들은 연 평균 16.1%의 성장을 기록했다. 10억원 미만 기업들의 매출이 연평균 3.4%씩 떨어진 것과 대조된다. 국내 가구산업이 대기업을 중심으로 급속하게 재편된 것으로 풀이된다.

그리고 지난 3년 사이 한샘, 리바트, 이케아 등 가구업계 빅3는 역대 최고 매출을 기록하는 등 성장 가도를 달렸다. 비 브랜드 가구 점유율이 높았던 국내 가구 시장에서 점차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며, 점유율을 확대하는 중이다.

주목해 볼 만한 부문은 부엌 및 빌트인 가구다. 관련 자료가 거의 없는 국내 가구산업 통계에서 유일하게 규모를 확인할 수 있는 부문이다. 한샘 매출의 41.6%, 현대리바트 매출의 23.8%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도가 높은 시장이이기도 하다.

한샘에 따르면 이 부문은 비브랜드 제조사가 전체 시장의 70% 정도를 점유하고 있는 상황. 그러나 최근 한샘, 현대리바트, 에넥스 등이 발을 넓히면서 양상이 변화하고 있다. 부동산에 돈이 모이며 소비자들은 보다 고급 자재를 사용한 제품들에 몰렸고, 영세업체들의 점유율은 낮아졌다. 가구의 품질, 마케팅 요소, 디자인, 사후 AS에 대한 니즈가 높아진 영향이다.

또한 부엌가구, 식기세척기, 가스오븐레인지, 냉장고 등의 가전 제품을 빌트인(Built-In) 설치하는 시스템 주방가구 시장이 등장하면서 브랜드들의 경쟁력이 강화된 것도 원인이다. 이 시장을 공략한 한샘, 현대리바트 등이 급격히 사업 규모를 키웠다.

두 회사 모두 미래 먹거리로 낙점한 것은 리모델링이다. 올해 기준 건축 30년 이상 노후 아파트는 181만 세대, 아파트 신규분양이 감소한 만큼 기존 주택에 대한 리모델링 수요가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에 따른 조치다.

이케아는 홈퍼니싱 시장에 집중한다. 경기 광명점, 고양점, 기흥점, 동부산점 등 주거지와 가까운 곳은 물론 백화점 입점 등을 통해 소비자와의 접점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지난 4월 오픈한 첫 도심형 매장인 ‘플래닝 스튜디오 천호’가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