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령(口令)은 예령 + 본령이다.

“아빠, 저기 부대 앞에 있는 차 타고 가는 사람들이 입대하는 거 아냐?” 휴일 날 오전 초등학교 5학년인 막내와 등산을 가던 중에, 등산길 초입에 승합차와 자동차 몇 대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고 질문을 했다. “군인아저씨들이 이런 부대에 개별적으로 입대하지는 않아. 일단 훈련소로 들어가서 기본적인 훈련을 받고 난 뒤에, 부대로 함께 이동 해. 그리고 군인들도 오늘 같은 휴일은 쉬어.”

늘 주변이 철조망이나 높은 철제 펜스로 둘러싸여 있고, 사람이 드나드는 정문마저도 총을 든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군부대 안쪽이 초등학교 입장에서는 모든 게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그럼 훈련소에서는 뭘 해?” “군대 가기 전에는 사람들이 총을 제대로 쏠 줄도 모르고, 줄 맞춰 걷는 것도 잘 못해. 그런 기본적인 것들을 미리 훈련해야 부대로 가서 제대로 임무를 수행하게 돼.” 한 두 마디로 설명을 한다고 해서 다 이해 할 수는 없었지만, 나름 열심히 설명했다.

하지만 뭔가 부족했다. 퍼뜩 떠오르는 생각이 제식훈련이었다. “군인들은 사람들이 엄청 많아도 모두 줄을 잘 맞춰서 멋지게 걸어가잖아. 그런 것도 훈련을 엄청 많이 해. 학교에서 좌향좌나 우향우 같은 것도 애들이 어려워하지? 군인들이 잘 하는 것은 훈련소에서 그런 훈련을 엄청 많이 해서 그런 거야. 그 담엔 사격도 하고, 총을 분해하고 조립하는 것도 배우지.”

 

일사불란 군인들, 준비할 수 있는 예령 때문

군 복무를 해서 이미 경험했지만, 사실 훈련소 입소 초기에는 엉망진창이라 훈련보다 얼차려 시간이 더 많다. 3~4주차 정도에 접어들면 밖에서 제 아무리 개념 없이 살던 사람들도 칼 같이 움직인다. 4열 종대 또는 횡대로 함께 이동하면서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된다. 다 함께 내는 함성 소리도 그 때쯤이면 전체가 한 목소리처럼 울리면서 연병장을 가득 채우는 공명이 생긴다.

동일한 행동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구성원 모두가 집중해 있는 것이 제일 큰 이유겠지만, 사실 구령은 예령과 본령으로 이루어져 있어, 미리 준비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예령은 구령의 처음 부분으로 어떤 동작인가를 알려서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말이다. ‘앞으로 가’, ‘열중 쉬어’ 같은 구령에서 ‘앞으로’, ‘열중’과 같은 것을 말한다. 짧은 ‘차렷’ 같은 구령에도 항상 ‘부대’ 또는 ‘중대’ 같이 그 무리를 지칭하는 예령을 앞세운다. 예령을 듣고 준비하고 있다가, 본령이 떨어지면 모두가 동시에 움직이게 된다.

오합지졸이 모여 있는 부대라면, 구성원들의 자질도 문제겠지만, 그 조직을 이끄는 리더의 명령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점이 더 크다. 사전에 준비할 여지를 전혀 주지 않고 무턱대고 ‘이래라 저래라’하는 지시를 제대로 따를 수 있는 사람들은 없다고 봐야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도 마찬가지이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 또한 마찬가지다.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우스꽝스런 말이나 몸짓으로 일관하던 사람들이 어떤 때에는 그의 지식이나 생각 수준은 보통이 넘을 때를 볼 때도 있다. 우리나라 말도 서툴고 억지웃음이라도 자아낼 요량으로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되던 사유리라는 일본인이 의외로 보기와는 달리 인상 깊은 말들을 한 적이 여러 번이다. 그 중의 하나가 ‘살다 보면 연락해오는 사람이 달갑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부탁을 들어주기 싫은 것이 아니라 부탁할 일이 있을 때만 연락하는 게 싫다’는 말이었다.

인간관계를 축약해서 이보다 더 잘 표현한 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충분히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며, 적확한 표현이라 생각한다. 그녀는 의외로 책을 세 권이나 썼고, 서울 G20, 제주도와 경주시 홍보대사로 활약을 하기도 했다. 예능에서는 생각 없어 보여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그 외에도 포털에 검색해 보면 어록이 주르륵 펼쳐진다. 4차원적인 사고방식으로 유명한데, 방송이 끝나면 갑자기 똑똑해지는 이상한 특성이 있다고 한다.

한동안 연락 없던 후배가 저녁이나 먹자며 연락을 해왔다. 가끔씩 생각은 났지만 바쁜 핑계로 다음에 하면서 연락을 미뤘는데, 어찌 살고 있냐며 연락을 해 온 것이다. 반가운 마음으로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눴는데, 어째 서론이 좀 길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조만간 저녁에 소주나 한잔 하잖다 그러면서 ‘줄 것도 있고’라는 말을 덧붙였다. ‘추석?’하는 생각도 잠시, ‘청첩장’이었다. 늦장가를 가는 후배를 축하해줘야 마땅하건만 훅하고 들어오는 그 말에, 반가웠던 마음이 쑥 들어가버렸다.

다 마찬가지겠지만, 이십대 후반이나 삼십대 초반에야 연락 없던 친구들이 갑자기 반가운 척 연락해오면 그건 뻔하다. 서로 어떻게 살아가는 지 연락도 없다가 마치 수금이라도 하듯이 연락 해오기 때문에 사람들이 부담을 가진다. 그런데 오십이 넘은 지도 꽤 되었는데, 비슷한 경험을 했다.

다른 친구들도 많다. 자주 보지는 못하더라도 때가 되면 전화해서 안부를 묻고, 살아가는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 서로 살아가는 처지에 대한 대화를 나눈 뒤라면, 똑 같은 청첩장 얘기라도 달라지게 된다. 일생의 한 번뿐인 혼인지사가 사람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계기도 되지만, 사실 반대인 경우가 우리 주위에 더 많은 것이 바로 그 때문이다.

예고 없이 훅 치고 들어오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어른이나 아이나 똑 같이 느낀다. 얼마 전에 버스에서 본 동영상이었는데, 내용은 아이들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마련한 서프라이즈 선물이 오히려 아이를 대성통곡하게 만들었다는 내용이었다. 미국의 어느 한 가정에서 꼬맹이 둘에게 깜짝 선물을 해줄 요량으로 일요일 오전에 늘 가던 교회 대신에 디즈니월드로 향했다. 차를 타고 즐겁게 교회로 향하던 꼬마가 가던 도중에 엄마가 ‘지금은 디즈니월드로 간다’고 밝히자, 디즈니월드에 대해 알지 못하던 꼬맹이가 대성통곡을 하면서 ‘교회에 가고 싶다’고 말하며 폭소를 자아냈다.

결국에는 해피엔딩으로 끝이 났지만, 심지어 어린 꼬맹이 조차도 본인이 생각하고 있는 일정이 뒤틀리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서프라이즈 선물이 노리는 효과이겠지만, 선물이 아니라 희생과 손실의 악순환이 예고 없이 들어온다면 그건 악몽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 악몽 같은 상황이 드물지 않다. 그것도 전혀.

 

기계는 누르면 작동하지만, 사람은 공감해야 움직인다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예전에 함께 일했던 경영진들은 늘 ‘난 깜짝 뉴스 같은 거 싫으니, 미리 얘기하고 진행하라’고 당부하곤 했다. 문제는 보고를 해도 흘려 듣고 기억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얘기된 사항에 대한 피드백도 전무 하다시피 하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스무개 가까이 되는 국내외 계열사 임직원들이 여간 곤욕을 겪은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정작 본인은 시도 때도 없이 뜬금포를 날리는 통에 소화불량을 달고 있지 않은 임원들이 없을 정도였다.

노련한 고참 임원들은 이런 뜬금포 같은 지시가 나올 때면 그 자리에서는 환하게 웃으면서 “즉시, 시행하겠다”고 읊조렸지만 돌아서선 무사태평으로 일관하곤 했다. 그 비결이 너무 궁금하던 차에 넌지시 물어봤다.

“지난 번에 말씀하신 그 사안에 대해 준비하지 않으세요?”

“뭘 불쑥 말씀하신 그딴 걸 준비씩이나 합니까?”

“그러면……..?”

“그때는 느닷없이 생각나서 얘기하신 거고, 지나면 다 잊어버려요.”

“잊지 않으시면요? 그럼 한번 야단 맞고 그때부터 하면 돼요.”

지나고 보면, 예고 없이 불쑥 던진 그 지시를 고지식하게 그대로 따르고 있던 내가 멍청했다는 결론일 때가 더 많았다. 그 순간만 넘어가면 일은 흐지부지 되기 일쑤였고, 악착같이 달려들어 어떻게든 일을 매듭지으려는 태도가 오히려 조직에서는 이상한 일이었으니, 조직이 제대로 나간다고 볼 수가 없었다.

많은 조직들이 수없이 많은 회의와 회의를 거듭한다. 하지만 안건도 모르고 참석한 회의, 안건에도 없는 사안으로 질질 끄는 회의, 회의 중엔 한번도 거론되지 않은 사안을 불쑥불쑥 지시하는 조직들이 허다하다. 고귀하신 윗분들이야 ‘자신은 깜짝 플레이 싫어한다’고 공공연하게 얘기할 수 있지만, 사실 아랫사람들이라고 예고도 없이 훅 들어오는 지시를 좋아할 리 만무하다.

그럼 어떻게 지시하냐고? 길지 않더라도 배경에 대해 그리고 언제까지 어떤 결과가 필요한지에 대한 전제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공감이라는 것이 뒤따르게 된다. 좋은 얘기도 서프라이즈는 거북한데, 하물며 희생을 강요하는 일이라는 문제는 더더욱이다.

조금 각도는 다르지만 니체가 한 말이 있다. “나는 네가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화가 난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는 너를 믿을 수 없기 때문에 화가 난 것이다.” 거짓말 자체가 문제라기 보다는 그로 인한 불신이 더 큰 문제라는 말이다. 아무리 악의가 없는 거짓말이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기는 쉽지 않다. 관계에 불신의 싹이 자라면, 결국 관계를 망치게 된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사전 설명이나 예령 없이 훅 날려버리는 지시도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 싶다. 악의 없이 일을 맡기는 것이라 할지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도 않았는데 즉각적이면서도 제대로 이행하기를 바라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기계에 대한 것이다. 일을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무너뜨릴 뿐이다. 기계는 누르면 작동하겠지만, 사람은 공감해야 작동한다는 것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