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현대중공업

[이코노믹리뷰=이가영 기자] 현대중공업(267250)이 대우조선해양(042660) 인수의사를 밝힌 지 1년 7개월이 넘었지만 양사의 합병은 여전히 표류 중이다. 기업결합심사의 가장 큰 걸림돌로 꼽혀온 유럽연합(EU)의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다. 현대중공업그룹이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도 타진하는 등 상황이 복잡해지는 한편, 일각에서는 대우조선해양의 재무상황 개선 등을 이유로 들어 합병 필요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말도 나온다.

현대重, 대우조선해양 인수 속도 낸다

6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현대중공업은 유럽연합(EU) 반독점 규제기관인 집행위원회와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M&A) 성사를 위한 협상에 나섰다. 집행위가 지난 7월 양사의 기업결합심사를 일시 유예한 후 지금까지 심사를 재개하지 않고 있는 탓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협상에서 독점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일부 양보 조건을 내세운 것으로 알려진다. 집행위가 선호하는 자산 매각이나 기술이전 등 내용이 담겼을 것으로 업계는 추측하고 있다. 

길어지는 인수합병 절차에 현대중공업이 부담을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집행위는 양사의 기업결합 심사를 세 차례나 유예한 바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자료 수집이 어렵다는 게 주된 이유다. 3월 한 차례 유예 후 두 달 만에 재개된 심사는 지난 7월 또 다시 유예됐다. 결국 애당초 집행위가 심사기한으로 제시했던 9월 3일도 한 달여 가량 넘어서게 됐다. 

시장에서는 코로나19는 명목일 뿐 실상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시장 점유율 확대에 대한 견제로 보고 있다. 이전부터 EU는 반독점법이 강해 국외 기업결합심사의 핵심으로 거론돼왔다. 

실제 집행위는 지난해 12월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관한 심층심사를 개시할 당시 “세계 시장 점유율 21%가 될 두 조선소의 기업결합은 가격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고, 이에 최대 고객인 유럽 해운사가 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우려를 내놓기도 했다. 특히 양사 합병 시 LNG운반선 시장 점유율은 60%까지 올라갈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1월 30일 대우조선해양의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에 인수의향서(LOI)를 제출하며 메가 조선사 탄생을 예고했다. 

이어 3월 8일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필요한 기업결합심사를 국내 공정거래위원회에 신청했다. 당시 공정거래위원회를 이끌던 김상조 위원장이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기업결합심사의 결론을 빠르게 내리겠다. 다른 경쟁국이 참고할 수준의 합리적 결론을 내놓겠다”고 말하면서 양사의 합병은 신속하게 추진되는 듯 했다.

하지만 같은 해 7월부터 시작된 6개 해외 경쟁 당국의 기업결함심사가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양사의 합병은 2년가량 표류하고 있다. 현재 카자흐스탄과 싱가포르에서는 승인을 받았지만 EU를 비롯해 일본과 중국, 한국 공정위에서는 여전히 심사를 진행 중이다. 이에 따라 한국조선해양은 산업은행과 맺은 대우조선해양의 현물출자 계약 만료일도 연장했다. 업계에서는 최대 규제기관인 EU의 기업결합심사만 통과할 경우 사실상 인수합병 절차는 마무리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집행위와의 협상에 두팔 걷고 나선 이유다. 

현대重, 시너지 효과 자명… 글로벌 톱티어 조선 공룡 매김

양사 합병 시 현대중공업이 누릴 수 있는 효과는 자명하다. 우선 규모의 경제를 통한 조선사업의 시너지 효과다. 연구개발(R&D) 통합, 중복 투자 제거 등을 통한 재료비 절감은 물론 생산성 향상으로 수주 경쟁력 확보가 기대된다. 일례로 배를 건조하는 작업장인 도크만 놓고 보더라도 현대중공업 11개, 대우조선 5개로 총 16개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업계에서는 특히 고부가가치 선종으로 꼽히는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과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분야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출 것으로 보고 있다. 

군함, 잠수함 등 방산 분야에서도 시너지 효과를 누릴 수 있을 전망이다. 국내 조선사 중 특수선을 자체적으로 건조할 수 있는 곳은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뿐이다. 특히 대우조선해양은 특수선에 대한 기술적 노하우와 인력을 바탕으로 해외 군 특수선 수주에서 발군의 성과를 내고 있다. 

중국과 일본 등 경쟁국의 견제를 따돌리고 현대중공업이 글로벌 톱티어 조선사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양사의 합병법인 한국조선해양의 글로벌 조선 시장점유율은 21%를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대우조선해양 인수는 정기선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의 지렛대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정 부사장은 정몽준 현대중공업그룹 최대주주의 장남이다. 2014년 말 인사에서 상무보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상무로 승진한 데 이어 2015년 전무, 2017년 말 부사장에 오르는 등 3세 경영 승계를 위한 순서를 밟아가고 있다. 

정 부사장은 권오갑 현대중공업그룹 회장과 함께 대우조선해양 인수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30년 동안 전문경영인체제로 운영돼오던 현대중공업이 다시 오너경영체제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정 부사장의 성과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즉, 현대중공업 입장에서 대우조선해양 인수는 반드시 이뤄야 할 숙원인 셈이다. 

▲ 대우조선해양의 LNG운반선. 출처=대우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 경영 정상화 목전인데… “경쟁체제 유리할 수도”

하지만 대우조선해양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 일각에서는 2년가량 소요되며 상황이 바뀐 만큼 합병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대중공업그룹이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를 추진하며 막대한 자본을 동원할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최근 대우조선해양의 자금 사정이 좋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정부의 지원과 경영정상화 노력을 통해 차입금 감소, 부채비율 개선 등 재무상황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2017년 채무재조정 과정에서 이연법인세자산을 전액 상각한 바 있으며 재고자산과 계약자산 규모도 안정적인 수준을 회복해 대규모 잠재손실 우려가 있는 수주잔고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 8조3587억원, 영업이익 2928억원을 기록했다. 3년 연속 영업이익 흑자다.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3.3%, 71.4% 감소했지만 글로벌 선박 발주 감소, 선가 회복 지연 등을 고려할 경우 상대적으로 선방한 수준이다. 

아울러 부채비율도 2018년말 210%에서 2019년 말 200%, 올 상반기 175.8%로 점차 낮아지는 추세다. 2016년말 2500억원에 불과하던 현금 및 현금성자산과 단기금융상품의 합산은 올해 상반기 기준 1조9200억원으로 곳간도 다시 채워지고 있다. 

경쟁사 대비 안정적인 사업구조도 대우조선해양 매각 필요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 2014년 대우조선해양의 매출 60% 이상을 차지하며 재무리스크를 더했던 해양부문은 올해 대폭 축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동시에 고수익선종인 LNG선이 실적을 이끌고 있다. 2020년 7월말 기준 대우조선해양의 수주잔고는 척수 기준으로 LNG선(35%)이 가장 높다. 이어 특수선(24%), 탱커(18%), 컨테이너선(15%) 순이다. 통상 LNG선의 선가는 탱커의 2배, 컨테이너선의 1.5배 수준으로 알려진다. 환경규제 강화로 LNG선 수주는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경쟁력을 충분히 갖춘 기업을 매각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익명을 요구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의 3년간 실적을 보면 체질개선이 확실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과거에는 좀비기업이라는 평가를 듣기도 했지만 자생력을 갖추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매각 필요성이 있는지 모르겠다. 제 살 깎아먹기라는 평가도 있지만 LNG선과 특수선 등 분야 기술력 확보에서는 오히려 경쟁체제가 유리하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