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중국 반도체 굴기가 거대한 존재감을 발휘하며 꿈틀대고 있으나, 그 이면에는 여전히 불안한 신호가 감지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특히 미중 갈등에 따른 미국 정부의 압박이 상당한 가운데 메모리 반도체 자급 전략에 경고등이 들어오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다만 중국 반도체 굴기는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으며, 특히 메모리 반도체 자급율을 올리려는 중국의 전략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는 반론도 여전하다. 그 연장선에서 대만과 일본, 한국 등 아시아 반도체 주요 국가의 행보에도 시선이 집중된다.

여전한 오성홍기
미중 무역전쟁이 한창이던 지난해 10월 2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이 34조원의 반도체 펀드를 조성해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한다고 보도했다. 중국 국영 담배회사 및 개발은행이 참여한 본 반도체 펀드는 액수 기준으로 메모리 반도체 2개 라인을 건설할 수 있는 비용이다. WSJ는 이를 두고 “중국의 반도체 군자금”이라고 표현했다. 중국 반도체 굴기의 단면이다.

다만 중국이 처음부터 자체 인프라 강화를 통한 반도체 굴기를 시도한 것은 아니다. 반도체 굴기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외부의 역량을 확보해 인수합병을 통한 인프라 확충에 나서려는 시도가 먼저였다. 그러나 칭화유니 등의 샌디스크 인수시도 등이 무위로 끝난 상황에서 중국은 반도체 굴기의 핵심을 ‘자강론’에 집중시켰고, 이를 바탕으로 막대한 투자에 나서는 중이다.

그 연장선에서 칭화유니가 움직였다. 칭화유니그룹은 2017년 7월 XMC를 인수합병하며 세운 창장메모리를 통해 국가반도체산업투자기금, 후베이성 지방펀드, 후베이성 과학투자 공동투자건설 등과 공조하기 시작했다. 메모리 반도체 전반에 대한 야망도 넘실거린다. 당장 중국 정부는 13차 5개년(2016~2020년) 계획에 따라 후 10년간 약 170조원을 반도체 산업에 투자할 방침이다. 이후 중국 반도체 굴기는 비록 미국의 제재에 푸젠진화가 D램 생산을 포기하는 등 부침을 겪었으나 꾸준히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 출처=갈무리

창신메모리는 D램 기술력을 끌어올리고 있고 지난 4월 양쯔메모리(YMTC)는 128단 QCL 3D 낸드플래시 생산을 성공한 데 이어, 샘플 테스트까지 통과하기에 이르렀다.

공격적인 지원책도 나왔다. 홍콩 SCMP에 따르면 15년 이상 사업을 해온 중국 반도체 제조기업이 28나노 이상의 미세공정을 가질 경우 10년간 법인세를 면제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그 외 공정에는 5년간 면제, 이후 5년간 세율을 조절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여전한 인재 빼가기도 성행하는 중이다.

반도체 자급률 전략 ‘경고등’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강해지며 자급률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그 성과는 다소 미진하다는 말이 나온다.

실제로 중국은 2014년 1차 펀드를 조성했을 당시 메모리 반도체 자급률을 크게 올린다는 방침을 정한 바 있다. 4% 내외에서 움직이는 자국의 메모리 반도체 자급률을 2020년 40%, 2025년 70%로 올리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반도체를 ‘산업의 쌀’로 표현하며 자급률 상승에 사활을 걸었으나 성과는 지지부진하다. 업계 등에 따르면 중국 메모리 반도체 자급률은 여전히 5% 내외다.

중국 정부의 막대한 자금이 투입된 반도체 프로젝트가 좌초될 위기에도 직면했다. 

실제로 중국 우한에서 가동되고 있는 우한훙신반도체제조(HSMC) 프로젝트에는 무려 22조원의 자금이 투입됐으나 현재 프로젝트가 중단될 위기에 직면했다. TSMC의 최고인재를 영입하며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 중국 반도체 자급율을 올리는 회심의 한 방을 준비했으나 프로젝트 자체가 휘청이며 심각한 파열음을 내는 분위기다.

그 원인을 두고 다양한 이유가 거론되지만, 중국 지방정부가 당장의 실적에만 매몰되어 장기 반도체 프로젝트를 무리하게 끌어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반도체 업계에 정통한 관계자는 “중국 반도체 굴기가 그 자체로 경쟁자들에게 상당한 위협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중국 지방정부 단계에서 정책 자체가 졸속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있어 군소 프로젝트는 벌써부터 입지가 흔들리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미중 갈등이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지난 미중 무역전쟁 당시 중국의 푸젠진화가 D램 생산에 도전했으나 미국의 압박으로 뜻을 접은 가운데, 최근에는 화웨이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이 진행되는 중이다.

당장 미 상무부는 17일(현지시간) 미국의 소프트웨어 기술이 들어간 반도체의 중국 화웨이 공급을 차단한다는 제재를 발표했다. 최근까지 화웨이가 설계를 주문한 반도체만 차단했다면, 이제는 화웨이로 흘러가는 모든 반도체 공급을 막겠다는 초강수다. 대만의 TSMC가 화웨이와의 거래를 중단한 상태에서 벌어진 최악의 위기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21일 발간한 '트럼프 행정부의 대(對)화웨이 반도체 수출규제 확대와 전망' 보고서를 통해 “화웨이가 사실상 모든 종류의 반도체를 공급받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22일 O-RAN(Open Radio Access Network)이 부상하고 있다 보도해 눈길을 끈다. 가상 및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하는 방식이며, 일본 유통업체 라쿠텐이 오는 9월 관련 인프라를 공개할 것으로 전망된다. 화웨이의 반도체 수급을 막고, 화웨이의 5G 존재감도 완전히 꺾을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전략이다.

미국 주도로 △클린 캐리어(Clean Carrier) △클린 스토어(Clean Store) △클린 앱(Clean Apps) △클린 클라우드(Clean Cloud) △클린 케이블(Clean Cable)을 핵심으로 하는 클린 네트워크 발족도 화웨이는 물론 중국 반도체 굴기에 대한 압박으로 볼 수 있다.

대만, 일본, 한국의 길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미국의 압박 등으로 그 로드맵이 격렬한 공격을 받는 분위기가 반복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주변국 기업의 대응에도 시선이 집중된다.

대만의 TSMC는 화웨이를 ‘손절’하고 완벽하게 미국의 손을 잡았다. 오랫동안 화웨이와 협력했던 TSMC는 지난 4월 미국 공장 증설을 기점으로 화웨이와 신규 거래를 중단했으며, 현재 다수의 미국 팹리스 기업들과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그럼에도 TSMC의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3분기 기준 53.9%가 유력할 정도로 승승장구하고 있으며 호실적 행진도 이어가는 중이다.

2나노 공정에 속도를 내며 다양한 가능성도 타진하고 있다. TSMC는 최근 기술 포럼을 통해 2021년 신주 2나노 연구개발(R&D) 센터 운영을 가동한 후 인근에 2나노 생산기지를 건설할 것이라 밝혔으며 차세대 트랜지스터 구조인 'GAA(Gate-All-Around)'가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전체 공정에는 약 22조원이 투입될 전망이며 양산은 2024년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 출처=갈무리

일본은 미중 반도체 전쟁의 반사이익을 일부 거두고 있다. 

미국이 중국 화웨이에 흘러가는 반도체를 모조리 틀어막는 한편, 세트 중심의 완제품 구입도 막아서자 중국 정부는 SMIC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는 등 플랜B에 나선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기술이 들어가지 않은 반도체 장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이는 자연스럽게 일본의 도쿄 일렉트론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압박과는 상관없이 오랫동안 반도체 자급을 키워갈 생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압박이 시작되자 미국 기술이 들어가지 않은 반도체 장비를 모색했고, 그 대안이 올해 EUV 공정까지 준비하는 도쿄 일렉트론인 셈이다.

한국 반도체는 메모리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탄탄하게 가져가는 전략을 구사할 전망이다. 

삼성전자가 업계 최초로 EUV 공정을 적용한 3세대 10나노급(1z) 16Gb 모바일 D램을 양산을 위해 평택 2공장을 가동한 점이 눈길을 끈다. 평택 2공장은 D램 양산을 시작으로 차세대 V낸드, 초미세 파운드리 제품까지 생산하는 첨단 복합 생산라인으로 활동할 전망이며 삼성전자는 이에 따라 평택 1라인에 이어 이번 평택 2라인에도 총 30조원 이상의 대규모 투자가 집행할 예정이다.

여기에 파운드리와 같은 다양한 가능성 타진이 벌어질 전망이다. 

지난해 4월 2030년까지 133조원의 투자를 단행, 시스템 반도체 산업의 최강자를 노린다는 삼성 반도체 비전 2030이 발표된 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시스템 반도체 영역에는 2030년까지 총 133조원을 투자하며 연구개발에 73조원, 생산 인프라에 60조원을 투입한다. 규모적 측면으로는 ‘역대급’이다. 2030년까지 연평균 11조원의 연구개발 및 시설투자가 집행되고,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42만명의 간접 고용유발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직접 고용 인력은 1만5000명에 이른다.

최근 삼성전자는 IBM의 파운드리 물량을 수주받으며 파운드리 가능성을 입증하기도 했다. 실제로 IBM의 차세대 서버용 CPU '파워(power) 10‘ 물량을 수주하며 7나노 본색을 보여줬다. 삼성전자는 2021년부터 IBM의 CPU를 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바탕으로 다수의 팹리스들과 협력해 파운드리 시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는 분석이다. 아직 TSMC의 아성을 넘기는 어렵지만 충분한 가능성은 입증했다는 평가다.

결론적으로 한국 반도체 업계는 중국 반도체 자급을 경계하는 한편, 당분간 메모리 중심의 시장 점유율 전쟁에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뚜렷한 실적을 내지 못하고 점유율도 낮지만, 중국이 방대한 내수시장을 중심에 두고 자급 전략의 틀을 메모리에 위치시킬 경우 한국 반도체 업계에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질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그런 이유로 중국의 공습에 대비하기 위한 메모리 반도체 대응은 물론, 파운드리를 착실하게 키우면서 시스템 전반에 대한 침착한 전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여기에 파운드리 인프라를 중심으로 AI 반도체 전략을 키울 필요성도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6월 AI 분야 최고 석학인 승현준(세바스찬 승)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교수를 삼성전자 통합 연구조직인 삼성리서치 소장(사장)에 내정한 바 있다. 승 소장은 뇌 신경공학 기반 인공지능 분야의 최고 석학중 한 명으로 꼽힌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이론 물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벨랩(Bell Labs) 연구원, MIT 물리학과 교수를 거쳐 2014년부터 프린스턴 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삼성과의 인연도 있다. 2008년 인공지능 컴퓨터를 구현하는 토대를 만든 공로를 인정받아 호암재단에서 수여하는 ‘호암상’ 공학상을 받기도 했다.

▲ 세바스찬 승 소장. 출처=삼성전자

업계에서는 그를 중심으로 삼성전자가 AI 반도체 시장을 정조준한 것으로 본다. 시스템 반도체와 AI의 시너지가 상당한 상황에서, 파운드리를 중심으로 하는 AI 퍼스트 전략이 가동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다양한 반도체 전략을 한 곳에서 가동할 수 있는 삼성전자만의 인프라를 적절히 가동해야 한다는 말이 나옴과 동시에 ‘포스트 나노 공정 경쟁’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삼성전자는 최근 7나노 EUV 반도체에 3차원 적층 패키지 기술인 X-Cube(eXtended-Cube)를 적용한 테스트칩 생산에도 성공한 바 있다. X-Cube는 전공정을 마친 반도체의 ‘원료’라 할 수 있는 복수의 웨이퍼(Wafer) 칩을 위로 얇게 쌓아 하나의 반도체로 만드는 기술이다. 

이러한 기술 발전은 나노 공정 경쟁의 의미가 사라지는 순간, 삼성전자만의 강력한 경쟁력이 되어줄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등 국내 반도체 업계는 중국 반도체 굴기에 정면대응하지 말고, 차분하게 반사이익을 얻거나 기술 격차에 나서는 방법 외에는 없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