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각 사 로고. 출처=각 사

[이코노믹리뷰=박민규 기자]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간 배터리 소송전에 대한 국내 첫 판결이 오는 27일 나올 예정이다. 

국내 배터리 업계를 대표하는 기업들로 꼽히는 양사는 현재 국내외 무대를 막론하고 전기 자동차용 배터리 기술 유출 관련 공방을 벌이고 있다.

이들의 '배터리 전쟁'은 지난 2017년부터 시작됐다. 그 해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한 5명에 대해 영업 비밀 유출 혐의로 전직 금지 가처분 소송을 냈고, 지난해 1월 최종 승소했다.

갈등의 불꽃이 본격적으로 튀기 시작한 건 2019년부터다. LG화학은 작년 4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델라웨어주 연방지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을 영업 비밀 침해 혐의로 제소했고, 5월에는 경찰에 같은 혐의로 고소했다. 이에 SK이노베이션도 허위 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 훼손으로 손배소를 제기해 맞받아쳤다.

SK이노베이션은 이어 같은 해 10월 LG화학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 취하 및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앞서 양사는 2014년 배터리 분리막 특허 등에 대해 국내외 쟁송을 벌이지 않겠다고 합의했다는 것이다. 이에 LG화학은 다시 한국과 미국의 특허는 별개이며, 속지주의 원칙이 적용돼 각국 특허의 권리가 독립적으로 취득·유지 된다고 맞섰다. 

이틀 뒤 나오는 판결은 바로 SK이노베이션이 작년 10월 낸 소송에 대한 1심 결과다. 판결 선고 기일은 당초 이달 13일로 예정됐으나 한 차례 미뤄졌다.

사실 양사와 국내 배터리 업계가 주시하고 있는 건 국내 판결보다 오는 10월 발표될 미 ITC의 최종 결정이다. ITC 소송전은 SK이노베이션의 미국 사업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업계는 이번 소송 결과가 사실상 ITC의 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SK이노베이션은 이번 판결에 촉각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미국 상황이 SK이노베이션에 그리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이미 상황은 LG화학 쪽으로 유리하게 기울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해 2월 ITC는 SK이노베이션에 '조기 패소' 예비 결정을 내렸다. 이는 변론 등 절차를 생략하고 최종 결정을 내리겠다는 예고로, 통상적으로 최종 결정이 예비 결정을 뒤집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ITC가 기존 조기 패소 결정을 고수해 최종 판결한다면,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셀·모듈·팩 및 관련 부품과 소재 등의 미국 내 수입은 전면 금지된다. 이 같은 최악의 상황을 모면하려면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과 합의해야 하는데, 지적 재산권을 엄격히 수호하는 미국 특성상 배상금은 수천억에서 수조 원대까지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정유업 타격에 배터리 신공장에 투입되는 일회성 비용까지 재무 부담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SK이노베이션의 고민은 커질 수밖에 없다.

결국 SK이노베이션과 LG화학은 합의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전기자동차 산업과 함께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배터리 시장에서 소송을 오래 끄는 것은 양사 모두에 소모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실제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ITC의 최종 결정을 앞두고 이전부터 물밑 협상을 진행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협상은 좀처럼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양사가 생각하는 배상금 액수의 차이가 커 협상 타결이 어려울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LG화학은 그간 전기차용 배터리 사업의 성장 가능성 및 매출 손해 등을 고려하면 배상금이 수조 원대는 돼야 한다는 입장이고, 반면 SK이노베이션은 유출 정보를 사업에 활용한 증거가 없다며 수백억 원 규모를 배상액으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SK이노베이션이 최근 배상금 제시액을 수천억 원대로 올리는 것도 검토 중이라는 이야기도 나오나, 그럼에도 수조 원대와의 간극은 크다.

설상가상으로 SK이노베이션은 최근 미국 내 공장 건설 사업과 관련해 불법 취업 의혹 이슈까지 터졌다. 당국 정부는 현재 SK이노베이션의 현지 자회사인 SK배터리아메리카(SKBA)의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한국인들의 불법 노동을 적발된 것과 관련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 같은 의혹은 ITC 소송전과는 무관하긴 하나, 현지 여론이 좋지 않다는 염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실제로 폭스5 등 조지아주 지역 언론들이 해당 문제를 저녁 시간 메인 뉴스에서 5분 분량으로 다루는 등 심층 보도하면서, 파장이 커지는 모습이다.

한편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LG화학도 잊을 만하면 압박 카드를 빼들고 있다. LG화학은 지난달 SK이노베이션에 배터리 기술 유출 관련 사실 관계 규명을 재촉하기 위해 검찰에 고소했다. 지난해에는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가 강제 수사에 착수해 SK이노베이션 본사와 충남 서산 소재 연구소 및 공장을 압수 수색하기도 했다.

복잡다단한 상황이 얽혀 있는 가운데, SK이노베이션은 국내 첫 판결에서라도 승소해야 배상금 절감을 타진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또한 ITC의 최종 결정에 유효한 결과는 아니지만, 그동안 겹친 악재로 돌아섰던 여론을 일부 만회할 수 있는 기회로도 기대해봄직 하다.

수세에 몰린 SK이노베이션에게 동아줄이 될지, 배터리전에 대한 국내 첫 판결에 시선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