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러화 약세에도 불구하고 신흥국 통화가치가 더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    출처= Market Watch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달러가 약세를 이어가면서 최악의 시기를 맞고 있지만 몇몇 신흥국 통화 가치는 더 가파르게 하락하면서 신흥국발 통화 위기에 비상등이 켜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8일(현지시간) 달러화의 최근 약세에도 불구하고 브라질 헤알화,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화, 터키 리라화는 올해 달러 대비 가치가 약 20% 하락해 2015년 이후 가장 큰 연간 하락율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 루블화와 멕시코 페소화도 약 15% 하락했다.

주요 세계 통화에 대한 달러화 가치(달러 인덱스)가 2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음에도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투자자들은 이들 국가들의 저조한 경제 성장과 높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율을 경계하고 있다. 코로나가 이들 국가들의 취약한 보건 시스템과 정부 재정 악화 같은 기존의 문제들을 더욱 악화시켰기 때문이다. 펀드매니저들이 지난 3월과 4월 이들 국가들의 주식과 채권시장에서 수십억 달러를 인출하면서 통화가치 폭락으로 이어졌는데, 아직까지 대부분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급격한 통화 가치 하락을 통제하지 않을 경우, 이들의 경제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다. 수입 비용과 외채 상환 비용을 모두 끌어올릴 뿐 아니라 이로 인한 물가 폭등으로 저축과 금융자산의 가치를 잠식해 국내 소비자들의 구매력을 크게 떨어트릴 것이다. 중앙은행이 통화의 하락을 막을 능력을 상실하게 되면 외국인 투자자와 채권자들의 추가 이탈을 촉발해 국가의 재정난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애널리스트들은 이들 국가들의 주력 수출품인 석유와 구리 같은 원자재에 대한 수요가 회복될 때까지는 통화도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국제 원유 벤치마크인 브렌트유는 4월 최저치에서 거의 3배 가까이 올랐지만 올해 전 세계 에너지 수요는 여전히 평년에 비해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경기회복 속도와 폭에 대한 불확실성도 구리 등 산업용 금속과 원자재 가격의 발목을 잡고 있다.

투자은행 티디씨큐리티(TD Securities) 마크 매코믹 글로벌 외환전략팀장은 "지금 신흥시장에 가장 필요한 것은 세계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는 실제적 신호"라고 말했다.

"그들이 정상적인 성장으로 되돌아가려면 그들의 주력 수출품인 원자재 수요가 먼저 회복되어야 하니까요.”

코로나 대유행은 세계 경제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심각한 불황으로 몰아넣었다. 세계은행이 지난 6월 내놓은 추정치에 따르면 신흥시장과 개발도상국의 올해 경제 성장률을 -2.5%로 전망했는데, 이는 60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는 것이다.

존스홉킨스대학교의 집계에 따르면 미국과 더불어, 브라질, 인도, 러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가 가장 많은 5개국이다.

코비드로 인한 사망자 수가 10만 명을 넘은 브라질 정부는 기업과 실업자들을 돕기 위한 지출을 크게 늘리면서, 이미 적자인 재정 상태를 더욱 악화시켰고 달러 대비 헤알화의 가치는 올들어 27% 하락했다.

신흥시장이 바이러스와 어떻게 싸울 것인지, 그리고 그러한 전략들이 얼마나 성공적일 것인지에 대한 불확실성은 투자자들을 이들 국가들 로부터 떠나게 만들었다. 글로벌 금융회사들의 연합체인 국제금융협회(Institute of International Finance)에 따르면, 지난 3월 외국인 투자자들은 중국을 제외한 신흥국 채권과 주식에서 약 770억달러를 회수했다. 그러나 6월까지 다시 되돌아온 자금은 230억 달러에 불과하다.

런던의 외환거래회사 모넥스 유럽(Monex Europe)의 통화 애널리스트 사이먼 하비는 “브라질, 러시아, 남아공, 멕시코에 대해 "코로나 유행 기간이 길어질수록 시장은 위험에 더 익숙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도 시장에는 위험 요소가 많습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코로나 감염자가 병원 수용량을 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지역간 이동 금지 등 엄격한 통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로 인해 올해 경제 성장이 -11%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신흥시장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애널리스트들은 말한다.

남아공 랜드화의 달러 대비 가치가 올들어 거의 5분의 1 하락했다. 투자자들은 7월 말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 채권시장에서 30억 달러 이상, 주식시장에서 거의 40억 달러를 인출했다.

하비 애널리스트는, 선진국에서 초저금리로 인한 낮은 수익률과 신흥국의 변동성 감소가 투자자들의 신흥시장 복귀를 부추길 수 있지만, 내년 상반기 전에는 그럴 것 같지 않다고 덧붙였다.

한편, 멕시코, 터키, 인도 등 다수의 개발도상국들은 신용 흐름을 강화하고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금리를 인하했다. 금리가 낮아지면 인플레이션을 부추길 위험이 있고 수익률도 높은 위험을 보상할 만큼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투자자들에게 이들 국가 자산의 매력은 그만큼 감소하게 된다.

선진국과의 금리차이가 낮아지면서, 달러나 유로, 엔화 등 저금리 통화를 사들여 고수익 통화에 투자하던 투자자들에게 신흥국 통화의 매력도 낮아지고 있다.

터키 같은 나라는 자국 통화를 떠받치기 위해 외환보유액을 소진해 통화 하락이 계속될 경우 중앙은행들이 움직일 여지가 거의 없다. 터키 리라화는 올해 달러 대비 19% 하락하며 2018년 이후 최악의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세계 경제와 금융 시장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많은 투자자들은 가까이 있는 주식에 투자하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미국 주요 주식 벤치마크들은 코로나로 인한 올해 초의 손실을 모두 상쇄했을 뿐 아니라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S&P 500과 나스닥이 이처럼 선전하고 있는데 투자자들이 굳이 먼 신흥국 시장에 서둘러 투자할 필요가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