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코노믹리뷰 DB. 출처=각 사

[이코노믹리뷰=박민규 기자] 올해 2분기 경영 실적 발표가 마무리된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도 호실적을 거둔 화학사들이 이목을 끌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기 침체와 저유가 흐름은 화학사들의 실적 부진을 불러올 것이라는 예상이 일반적이었으나, 코로나19 감염을 막기 위한 방역·위생 용품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코로나 특수'를 누리는 업체들이 등장했다.

금호석유화학은 코로나19 사태의 반사 이익을 본 대표적 기업으로 꼽힌다. 지난 2016년부터 과감히 투자해 온 NB라텍스 사업이 위기 상황에서 진면목을 발휘했다는 평가다. 

금호석화는 2분기 연결 기준으로 매출액 1조263억원과 영업이익 1201억원을 기록했다. 최대 주력인 범용 고무 사업의 부진 탓에 매출과 영업익은 각각 전년 동기 대비 20.6%와 13.0% 줄어들긴 했으나, 이는 시장 예상치를 웃도는 감소세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한때 자동차 업계가 멈추면서 타이어용 합성 고무를 생산하는 범용 고무 사업은 정체됐지만, 의료용 장갑의 폭발적인 수요로 수혜를 입은 NB라텍스 사업이 '어닝 서프라이즈'를 견인했다는 분석이다. 금호석화는 세계 NB라텍스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금호석화 관계자는 "코로나19로 범용 고무 부문의 판매량 및 매출액이 감소했지만, 위생 용품에 대한 수요 증가로 NB라텍스 수익이 좋았다"고 설명했다.

▲ SK케미칼의 '스카이그린(PETG)' 소재로 만든 안면 보호대를 중남미 지역 의료 관계자가 착용한 모습. 출처=SK케미칼

SK케미칼의 경우 연결 기준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24.1%와 42.0% 감소해 2884억원과 176억원을 기록하는 등 바이오에너지 사업 매각에 따라 외형이 다소 쪼그라들었으나, 코폴리에스터·유화 사업 만큼은 2019년 2분기의 2배 가까이에 달하는 영업익을 냈다.

SK케미칼은 코폴리에스터 사업을 통해 안면 보호대와 방역창, 소독제 용기 등에 쓰이는 투명 소재 '스카이그린(PETG)'을 생산하는데, 코로나19 사태로 방역용 물자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수혜를 보게 된 것이다.

SK케미칼은 지난 6월 극심한 코로나19 확산세를 겪고 있던 멕시코와 콜롬비아 등 중남미 국가들에 스카이그린 공급을 확대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올해 4월과 5월 두 달 동안 두 나라에 수출된 스카이그린은 지난해 전체 판매량의 5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SK케미칼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코폴리에스터 사업의) 신규 수요가 발생했고, 판매가 하락에도 물량 증가에 힘입어 매출이 10% 늘었다"며 "매출 상승에 따라 이익률도 개선됐으며, 3분기 역시 양호한 수준의 성장세가 이어질 것"이라 예상했다.

소재 전문 기업인 SKC는 2분기 499억원의 영업이익을 남기며, 시장 전망치를 상회하는 성적을 시현했다. 전분기 대비 65.2%나 늘어난 수치다. 모든 사업 부문의 수익성이 개선된 와중, 특히 글로벌 화학 합작사와 자회사의 활약이 견조한 성장세를 이끌었다는 평가다.

전체 영업익 중 SKC와 쿠웨이트 PIC의 합작사인 SK피아이씨글로벌이 낸 이익이 약 45%를 차지한다. SK피아이씨글로벌은 화장품 및 의약품 원료가 되는 프로필렌옥사이드(PO)를 바탕으로 프로필렌글리콜(PG)을 만드는데, 이는 손 소독제 등을 제조하는 데 사용된다.

원기돈 SK피아이씨글로벌 대표는 이달 7일 SKC 콘퍼런스 콜을 통해 "PG 생산량은 17만톤으로, 현재 코로나19 사태에 따라 위생·보건 분야의 수요가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SKC 관계자는 "올 하반기에는 PG의 신규 고객을 확대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할 방침"이라 언급하기도 했다.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관련 소재인 동박을 생산하는 SK넥실리스의 선전도 빼놓을 수 없다. SKC의 100% 투자사인 SK넥실리스는 모빌리티 동박 사업에서 매출액 763억원과 영업익 131억원을 기록했다. 코로나19 확산도 전기차 시장의 팽창은 막지 못하면서, 관련 산업들의 호조 역시 이어지는 모습이다.

비슷한 사례로, SK이노베이션 역시 전기차용 배터리 분리막(LiBS)을 조달하는 자회사 SK아이이테크놀로지를 통해 소재 사업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코로나19가 한창 확산하던 당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셧다운'을 거듭했던 여파로 자동차 전장용 엔지니어링 플라스틱(EP) 업계가 부진을 면치 못했던 점을 감안하면, 전기차 관련 소재들의 이 같은 '동반' 호황은 더욱 두드러진다.

▲ 이코노믹리뷰 DB. 출처=각 사

한편, 타이어용 고무의 원료인 부타디엔(BD)과 일반 플라스틱 원료인 폴리에틸렌(PE) 등 범용 소재를 주로 생산하는 롯데케미칼의 실적 부진이 사뭇 다른 관점에서 주목 받고 있다.

롯데케미칼의 2분기 영업이익은 전분기 대비 흑자 전환에 성공했으나, 2019년 2분기에 비해서는 90% 넘게 격감했다. 10분의 1도 안되는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코로나19 상황에 대산 공장 사고 등 악재가 겹치면서 손실 폭의 확대는 불가피했다는 설명이나, 코로나19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아쉬운 평가도 나온다. 전방 산업의 약세를 대신해 실적을 견인할 만한 활로를 찾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되고 있는 만큼, 관련 제품들을 생산하는 화학사들의 향후 실적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모습이다. 이제 하반기 생존 전략은 코로나19의 영향력을 줄이는 게 최대 관건으로 꼽힌다. 코로나19를 기회로 활용하든 이와는 상관 없는 신사업을 뚫든, 위기를 타개할 묘수의 선점이 곧 경쟁력으로 이어지리라는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