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전현수 기자] 망중립성을 완화하더라도 ISP(인터넷서비스제공자)가 투자를 늘리지 않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ISP가 일반 망과 속도가 빠른 프리미엄 망으로 이원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전체 망 투자는 줄이고 프리미엄 망 투자에 집중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병철 앨라배마주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23일 열린 네트워크 정책 컨퍼런스에 온라인 방식으로 참여해 이처럼 밝혔다. 이날 발표는 김병철 교수가 학술지 랜드(RAND) 저널에 게재한 논문  ‘망중립성과 투자유인(Network Neutrality and Investment Incentives)’의 내용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다.

▲ 23일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글로벌 디지털 강국 도약을 위한 네트워크 정책’ 행사가 열리고 있다. 출처=전현수 기자

망중립성 완화 여부를 두고 전 세계에서 ISP와 CP(콘텐츠제공자)의 대립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실상 둘의 주장은 양 극단에 있기 때문에 완만한 타협을 보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국내에서는 '관리형 서비스'라는 명목으로 차별적인 네트워크 제공을 허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5G 이동통신 시대에 접어들며 추가적인 관리형 서비스 지정에 대한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ISP가 주장하는 망중립성 논쟁의 핵심은 무임승차 문제다. 무임승차란 자원을 대가 없이 사용하게 하면 결국 필요한 재화가 부족하게 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네트워크 환경에서도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고 ISP인 통신사는 주장한다. 통신사가 폭증하는 네트워크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차별적인 사용료를 CP에게 부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쉽게 말하면, 속도가 10인 일반 망과 속도가 100인 프리미엄 망을 구분, 트래픽이 많은 사업자에게는 더 비싼 프리미엄 망의 이용료를 받는 식이다.

반면 콘텐츠·앱 서비스를 제공하는 CP는 망중립성 완화는 ‘홀드업(Hold-Up Problem) 문제’가 있다고 맞선다. 홀드업은 본래 ‘꼼짝마’라는 뜻인데, 경제학적으로는 투자를 하면 그 투자가 오히려 자신의 입지를 약하게 만드는 문제를 말한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가 자체 콘텐츠를 생산하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했는데, ISP가 프리미엄 망사용료를 부과하면 넷플릭스의 투자 유인이 줄어들 수 있다. 때문에 CP는 공격적인 투자와 콘텐츠 생산을 위해서는 트래픽을 유발하는 사업체간 과금의 차이가 없어야 한다는 망중립성 원칙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병철 교수는 “망중립성을 지키면 홀드업 문제는 해결되지만 무임승차 문제가 발생하고, 완화하면 그 반대의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망중립성 완화가 ISP의 투자 유인을 증대한다는 점에 회의적인 입장을 밝혔다. 기본 망과 프리미엄 망이 나누어져 있다고 가정할 때, 김 교수는 망 수요와 가격은 ▲기본망의 절대 품질 ▲프리미엄 망과의 성대 품질 ▲ISP간의 경쟁 정도에 의해 결정된다고 전했다.

핵심은 기본 망의 품질이 나쁘면 프리미엄 망의 품질은 상대적으로 좋아진다는 것이다. 반대로 기본망의 품질이 좋으면 고급망의 수요가 줄어들기 때문에 망중립성이 완화되면 ISP가 기본망에 투자해서 품질을 높일 이유가 없어진다는 설명이다.

▲ 통신망은 차선에 비유되곤 한다. 출처=픽사베이

김 교수는 “예를 들어 미국 차도에는 ‘익스프레스 레인’이라는 유료 차선이 있는데, 이곳의 요금은 (차가 붐비는)출퇴근 시간에 올라가고 한산한 낮 시간에는 하락한다. 익스프레스 레인의 가치를 결정하는 건 일반 차선의 상대적인 속도가 결정하는 것이다(통신망도 이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망중립성을 완화하면 ISP가 전체 망 투자를 줄이고 프리미엄 망에 대한 투자를 높이는 결과를 낼 것”이라고 지적했다. ISP는 프리미엄 망 서비스를 상품의 다각화와 차별화 관점으로 바라보지만, 김 교수의 경우 그보다 기본 망의 품질 보장 여부를 중요하게 봐야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김 교수는 “특히 망중립성 완화는 중소 영세 스타트업에 불리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김 교수는 홀드업 문제를 호소하는 CP의 주장에도 객관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경계했다. 김 교수는 “CP 또한 홀드업 문제가 정말로 심각하게 시장 진입과 투자 요인을 감소시키는지, 망중립성 문제가 콘텐츠 산업 성장에 필요한 핵심 정책인지 묻고 싶다. 망중립성 문제가 얼마나 자신들의 투자를 막고 있는지를 실질적으로 알아봐야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