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바이러스가 전세계를 휩쓴 가운데 한 때 시들해진 것처럼 보였던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리더십이 돋보이며 그녀를 화려하게 부활시켰다.    출처= Foreign Policy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서구 유럽에는 코로나바이러스가 다른 나라에 비해 늦게 시작됐다. 그러나 정부가 이를 부정하거나 피해 발표를 지연시키지 않고 초기부터 공개적으로 적극 대응에 나선 국가가 있다.

이 나라는 처음부터 코로나바이러스의 진단과 추적을 과감하게 실행함으로써 감염자 확산 곡선을 빠르게 완화시켰고 사망률을 서방의 어느 나라보다 낮은 수준으로 억제했다. 이 나라는 바이러스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어느 나라보다 먼저 봉쇄 조치를 단행하면서도 실업률을 6% 이하로 유지했다. 국제적인 찬사가 이어졌고, 너무 오래 정권을 유지해 온 까닭에 국민들이 식상해 했던 이 나라 지도자의 지지도는 40%에서 70%로 크게 상승했다.

코로나에 대한 초동 대처에 실패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하의 미국과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이 나라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 휘하의 독일이다.

메르켈 총리의 치솟는 인기는 정치적 극우파와 극좌파의 극단적 주장들이 설 자리가 없게 만들었다. 독일 노조들은 공장 가동을 계속하고 노동 조건을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국가 지도자와 뜻을 같이하며 긴밀하게 협조했다(육가공 포장 산업만 제외하고). 메르켈 정부는 코로나 대유행을 억제하기 위해 정파를 초월해 독일의 모든 주들과 협력했고,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국가들을 위한 복구 기금을 설립하기 위해 유럽연합 회원국들과 협력했다.

모건스탠리 투자운용의 수석 글로벌 전략가이자 최근 <성공한 나라들의 10가지 규칙>을 발간한 루치르 샤르마는 1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즈(NYT)에 기고한 글에서, 코로나 대처 과정에서 독일이 보여준 힘이 포스트 코로나 세상에서 가장 번성할 가능성이 큰 국가로 그 위상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내향적 전환의 새로운 시대

코로나바이러스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시작된 국가 경제들 사이의 내향적 전환 현상을 가속화하고 있다. 각국 정부들은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 공공 부채를 늘리고, 해외 무역과 이민에 새로운 장벽을 부과하면서 경제 생활의 모든 측면을 점점 더 통제하고 있다.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일하고, 놀고, 쇼핑하면서, 지금 세계 경제는 가상 시장만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이처럼 재편된 경제 지형에서 과연 어느 나라가 번창할 것인가? 월등한 기술 지배력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중국은 너무 많은 부채를 지고 있고, 정부는 대유행에 잘못 대처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1500만 명 가까운 확진자가 발생하고 60여만 명이 사망한 가운데, 확진자 300여명에 사망자 제로로 통제한 베트남이 유망한 신흥 수출 강국으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경제의 향방도 관심 거리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수년 동안 외국의 금융 위기로부터 러시아를 격리시킨 방어 조치들이 급속한 탈세계화가 가속화되는 요즘 시대에 오히려 효과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승자는

그러나 가장 큰 승자는 독일일 가능성이 높다. 독일은 코로나 대응 과정에서, 이 나라가 효율적인 정부, 낮은 부채, 세계 무역 감소 추세에도 불구하고 수출을 장려하는 산업적 우수성에 대한 명성, 미국과 중국의 인터넷 대기업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국내 기술 기업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유일한 국가라는 강점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다른 나라들은 코로나로 인한 일련의 해고가 영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지만, 대부분의 독일 근로자들은 위기 기간 동안 기업들에게 단축 근무를 통해 고용을 유지하도록 하는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정부 시스템인 쿠어츠아르바이트(Kurzarbeit)에 힘입어 대량 실업 사태를 면했다. 또 독일 특유의 검소함은 쿠어츠아르바이트의 효과를 극대화해 주었고 사회복지사업 확장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메르켈 총리가 유럽연합(EU) 회원국들에 대해 긴축정책을 압박하던 긴 세월 동안, 메르켈 총리를 케케묵은 빵도 아껴서 만두를 만드는 검소한 독일인의 전형인 ‘스와비아 주부’ (Swabian housewife)라는 별명을 붙이며 조롱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무도 메르켈 총리를 비웃지 않는다.

▲ 독일 정부는 독일 수출의 주역인 자동차 회사들의 현대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출처= Wired

독일은 정부 흑자 상태에서 코로나 대유행을 맞았기 때문에, 가계에 대한 직접 지원, 감세, 기업대출, 그리고 국내총생산(GDP)의 55%(미국의 4배)에 달하는 부양책으로 봉쇄 경제에 대응할 수 있었다. 독일은 또, 독일의 인색함이 유럽 대륙 전체를 해친다고 오랫동안 불평해 온 이웃 국가들에게 사상 처음으로 긴급 부양 자금을 제공할 능력과 강력한 의지도 보였다. 독일의 이웃 국가 지원 계획은 기민했고 관대했다. 이웃 나라들의 독일 수출에 대해 수용력은 과거보다 훨씬 더 좋아졌다.

그러면서도 독일은 균형 예산에 대한 약속을 철회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지출의 상당 부분이 저축에서 빠져나갈 것이기 때문에 독일의 공공 부채는 증가하긴 하겠지만, GDP의 82%를 넘지 않을 것이다. 이는 경기부양 패키지에 훨씬 적은 돈을 쓰고 있는 미국을 비롯한 다른 선진국들의 부채 부담에 비해 훨씬 더 가벼운 것이다.

코로나 위기에 약점 없고 충분히 준비된 나라

회의론자들은 독일이 세계 무역이 둔화되는 시기에 산업 수출, 특히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독일도 그런 취약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수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자동차 대기업들의 현대화를 추진하고 있다. 규제와 대중적 비난을 통해 수익성이 높은 연소 엔진에서 미래의 전기차로 전환하도록 자동차회사들을 압박하고 있다. 포르쉐와 메르세데스 벤츠의 본거지인 슈투트가르트는 도시 내 노후 디젤 모터를 금지했다.

독일은 또, 비록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보다 경쟁력 있는 기술 강국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국 못지않게 연구개발에 많은 돈을 투입하고 있으며(GDP의 약 3%), 벤처캐피털이 유망 스타트업에 힘을 실어주는 실리콘밸리와 유사한 기업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독일의 이번 코로나 경기부양책에는 인공지능(AI) 등 신기술을 활용해 전통 산업을 디지털화 할 수 있는 스타트업에 560억달러(67조원)를 지원한다는 계획도 포함되어 있다. 또 미국과 중국의 인터넷 클라우드와 경쟁하기 위해 유럽 인터넷 클라우드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른 바 ‘디지털 문샷’(digital moonshot) 계획을 프랑스와 공동으로 추진한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독일이 고령화되고 있는 보수적 사회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독일의 변화가 너무 늦다고 비판한 사람들은 이전에도 틀린 적이 있다. '유럽의 골칫덩어리'로 치부되었던 2000년대 초, 독일은 노동 시장 개혁을 과감히 채택함으로써 유럽에서 가장 안정된 국가로 발돋움했다. 코로나 대유행으로 전세계의 디지털화와 탈세계화 속도가 빨라지고 세계의 부채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독일은 이러한 도전에 대한 상대적 약점이 없다는 것이 드러난 국가이자, 그런 도전에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는 국가로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