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가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 위기 대처 실패와 고립주의 정책으로 달러가 더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오고 있다.     출처= Business Today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지난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투자자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자 그들은 세계 최고의 안전 자산인 미국 달러를 싹쓸이하려는 듯 달려들었다.

그러나 미국이 코로나 19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경기 침체의 암운이 가시지 않으면서 달러화가 휘청거리고 있다. 이제 월가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 위기 대처 실패와 고립주의 정책으로 달러가 더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오고 있다.

노무라 증권은 이번 주 초에 고객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는 미 달러화가 장기적으로 지배력 감소와 약세의 길을 따를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미국의 세계적 지위에 대한 중요한 상징인 달러는, 전세계에서 다양한 자산을 거래하는 투자자들에게 주된 통화다. 달러는 또, 각국 정부, 중앙은행 그리고 주요 금융기관들이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세계 최고의 준비 통화다. 그러나 달러 지지론자들과 회의론자들 모두 현재로선 실질적인 대안이 없다는 점에 의견이 일치되고 있다고 CNN이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투자자들은 대체로 달러화 전망에 대해 낙관적이지 않다. 늘어나는 채무 부담과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달러 리스크를 가중시켰다는 것이다. 세계무대에서 미국의 역할 축소는 동맹국들로 하여금 다른 기축 통화의 보유를 강화하도록 장려할 수 있다.

블랙록(BlackRock)과 같은 세게 최대 자산운용사들은 고객들에게 유럽에서의 투자기회를 살펴볼 것을 권유하고 있다.

세계 통화체제의 실질적인 변화는 향후 수십 년이 걸리겠지만, 달러 가치는 몇 달 안에 심각한 수준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약세 전망 지배적

달러화가 빠르게 약세를 보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코로나 19 확진 건수가 340만 건으로 증가한 미국의 경제 전망 악화를 지적하고 있다.

미국의 코로나 확진자가 겉잡을 수없이 다시 늘어나자, 많은 주들이 엄격한 봉쇄 조치를 다시 취하기 시작하면서 4월부터 그나마 미미하게 보였던 경기 회복을 다시 위협하고 있다. 세계에서 5번째로 큰 경제를 자랑하는 캘리포니아의 개빈 뉴섬 주지사는 지난 13일, 식당, 극장, 동물원, 박물관, 술집의 실내 영업을 다시 금지했다. 적어도 27개 주가 재개를 보류하거나 바이러스의 확산을 늦추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노무라의 조던 로체스터 전략가는 "미국이 경제 재개를 너무 일찍 서둘렀다"고 지적하고 “코로나에 대응하느라 달러화는 중기적으로 약세를 보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실업률이 계속 상승할 것이라고 지적했는데, 미국의 대형 은행들도 같은 예상을 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 환경은 미국 금리가 예상보다 더 오랫동안 제로(0)에 근접할 것이라는 견해를 뒷받침하고 있다. 또 급증하는 재정적자도 달러화에 좋은 징조는 아니다. 미국 연방정부의 부채는 올해 GDP의 101%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정부는 경제를 부양하기 위한 대규모 경기 부양 프로그램 자금을 대기 위해 차입을 늘리고 있다. 재무부는 이번 주 연방 정부의 재정 적자가 6월에 8640억 달러(1042조원)로 급증했다고 발표했다. 경상수지도 큰 적자를 보이고 있는데, 이것은 미국으로 들어오는 돈보다 상품, 서비스, 그리고 해외 투자에 더 많은 돈을 쓴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다른 선진국들도 많은 돈을 빌리고 있지만, 미국의 경우 정부가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채권을 사들이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채권을 발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무라의 로체스터 전략가는 시장에 그렇게 많은 채권이 있다는 것이 달러 가치를 위태롭게 한다고 설명했다.

▲ 7500억 유로의 경제회복기금이 이번 달에 합의되면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유로화표시 채권의 새로운 공급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Mises Institute

유로화로 눈길

한편 유로화는 투자자들에게 점점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유럽의 극심한 불황에도 불구하고 유로화는 올해 들어 지금까지 달러 대비 약 2% 상승했다.

로체스터 전략가는 서둘러 경제 재개에 나선 미국에서는 코로나 확진자가 계속 늘어나며 경기 호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지만, 더 일찍 봉쇄에 들어갔던 유럽에서는 경제 활동 재개가 순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아직 이견이 있지만 2021-27 예산을 통해 금융시장으로 7500억 유로(1000조원)를 수혈할 경제회복기금이 이번 달에 합의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론도 있다.

골드만삭스의 자크 판들 전략가는 지난달 고객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경제회복기금은 이 지역에서 재정정책 조율을 강화하는 중요한 단계가 될 것이며,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유로화표시 채권의 새로운 공급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판들 전략가는 유로화가 달러화에 대해 점차적으로 평가절상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더 빨리 상승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메모에서 "최근 유로 지역으로부터의 소식은 분명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썼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지난 14일, 자산운용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를 발표했는데, 이들의 유럽 기업 주식 보유량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자의 40% 이상이 유로 지역의 투자를 늘릴 것이라고 대답했다.

마땅한 대안 없지만

그러나 신중해야 할 이유가 하나 있다. 미 달러화의 하락은 여러 차례 예견되어 왔지만 항상 예측이 너무 빨랐다는 것이다.

달러의 강점은 그것이 석유와 같은 상품 거래를 포함한 전 세계 많은 거래의 통화로 선택되고 있다는 것이다. 달러는 전 세계 통화 보유량의 62%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 세계 통화 거래의 88%에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적어도 중기적으로는 달러 위상이 급격히 변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라보뱅크(Rabobank)의 제인 폴리 통화전략팀장은 "달러가 그 매력을 잃을 지경까지 이르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폴리 팀장은 세계 경제 전망이 악화되면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세계 최대 경제국인 미국의 문제만으로도 달러 수요를 충분히 소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 러시아와 중국이 원유 거래를 결제할 때 달러화를 점점 피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출처= Foreign Policy

미국 우선주의 우려로 달러 기피 추세 늘어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미국의 부채 우려와 취약한 경제, 그리고 유럽의 응집력 강화가 달러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으며 향후 5년 동안 20%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노무라는 지적했다.

지정학적 요인도 변수다. 노무라는 트럼프가 연임에 성공할 경우 지속적인 탈세계화가 미국 고립을 가져와 미 달러를 훼손하고, 무역 결제에서 중국의 위안화를 더 많이 사용하도록 부추길 수 있다고 예상했다.

각종 연구도, ‘미국 우선주의’가 장기적으로 달러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지지한다. 미국경제조사국(NBER)이 2017년에 발표한 연구 논문은, 미국이 더 이상 동맹국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을 경우 달러화에 대한 외국인 수요가 감소할 수 있으며, 이들 국가의 외환 보유고를 유로화, 엔화, 위안화로 대체할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했다.

폴리 통화전략팀장은 러시아와 중국이 원유 거래를 결제할 때 달러화를 점점 피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미국이 이란 핵 협정에서 탈퇴한 후 EU 고위 관리들이 원유 거래에서 유로화를 더 많이 사용하게 하기 위한 로비를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이란에서 아직 철수하지 않고 영업을 계속해온 기업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달러화 접근을 막는 제재를 시행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근 디지털 화폐에 대한 관심 증가도 달러의 주권을 빼앗을 수 있다. 페이스북은 리브라(Libra)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고, 중국 중앙은행은 위안화 디지털 버전을 시험하고 있다. 유럽과 일본도 속속 디지털 화폐 연구를 가속화하고 있다. 디지털 화폐는 사기와 금융범죄에 대한 우려가 큰 장벽이지만, 노무라는, 특히 위안화의 세계적인 사용을 촉진하려는 욕구가 강한 중국의 노력에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