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코로나19가 창궐하며 이혼률이 높아지는 한편 혼인 건수도 크게 낮아지고 있다. 실제로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4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코로나19가 창궐하던 4월 국내 혼인 건수는 1만5670건에 머물러 지난해 동기 대비 21.8%나 줄었으며, 이는 4월 중 역대 최저 수치다. 4월 이혼 건수는 9259건으로 집계되어 3월 대비 1961건이나 늘었다.

▲ 출처=픽사베이

사태가 장기화되며 소위 코로나 블루 현상이 심해졌고, 그 결과 스트레스가 커진 부부들이 결별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블루 현상이 부부관계도 위협하는 가운데, 이제는 기업들도 그 후폭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 블루로 인한 심리적인 요인이 아니라 코로나에 따른 업황 악화가 직격탄을 날렸기 때문이다.

그 연장선에서 몇몇 기업들은 한 때 행복한 동행을 꿈꿨으나 지금은 이혼을 넘어 서로 으르렁대고 있다.

예비 동반자에서 적으로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HDC현산은 모빌리티 기업으로의 도약을 꿈꾸며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뛰어들었으나 지금은 사실상 결별 수준이다.

최근 아시아나항공을 가진 금호산업은 HDC현산-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에 인수거래를 마무리하자는 내용증명을 보냈으며,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계약해지에 돌입한다는 배수의 진까지 친 상태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최악의 경영난에 처해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 저유가로 인한 항공유 가격 인하, 나아가 항공화물 수요가 커지며 FSC가 반등하며 조심스러운 실적 개선 가능성도 점쳐지는 중이다. 일각에서는 4분기 적자행진이 끝나고 조만간 흑자로 돌아설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아시아나항공의 기본적인 체력이 이미 바닥을 드러낸 상태에서, HDC현산은 금호산업의 내용증명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업계에서는 사실상 빅딜 무산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 출처=이스타항공

LCC의 결합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합병이 사실상 파탄난 상태에서 서로를 향한 진실공방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창업주인 이스타항공을 둘러싼 임금 체불 논란도 점입가경으로 흘러가는 가운데 노사, 노노, 심지어 회사 대 회사의 신경전까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제주항공은 최근 입장문을 통해 이스타항공에 대한 최후통첩을 날린 상태다. 제주항공은 “이스타홀딩스가 주식매매계약의 선행조건을 완결하지 못해 계약을 해제 할 수 있다”면서 3100만달러의 타이이스타젯 지급보증건, 250억원의 체불임금, 조업료와 운영비 등 총 1700억원 규모에 이르는 미지급금 해결이 이행되어야 인수합병 논의를 할 것이라 강조했다. 그러나 이스타항공은 “제주항공과 주식매매계약서의 선행조건은 완료했다”면서 “계약완료를 위한 대화를 제주항공에 요청한다”고 반박했다.

결혼을 앞 둔 예비부부가 이별을 선언하면서 각자 “결혼 전과는 이야기가 다르잖아” “이야기가 다른 것 없고, 숨기지도 않았어”라고 싸우는 모양새다. 간혹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예비부부 이별 스토리와 닮았다.

물론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합병이 100% 파탄난 것은 아니다. 제주항공이 최후통첩을 날리면서도 계약 해제를 최종 결정한 것은 아니라는 여지를 남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별은 이미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제주항공이 정부의 중재 노력이 진행 중인 점을 고려해 명확한 계약 해제를 거론하지 않았으나 업계에서는 인수합병이 파탄날 경우 불거질 책임소재를 털어내기 위해 일종의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으로 분석한다.

▲ 비어있는 공항. 사진=임형택 기자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하지만...”

서로 결합하려는 의지는 강하지만, 외부 요인에 따라 결합하지 못하는 기업도 있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그 주인공이다. 기업결합을 진행하는 가운데 유럽연합(EU) 심사가 최근 또 유예되며 혼란이 커지는 분위기다.

EU는 코로나19에 따른 여파로 심사자료 수집이 어렵다며 두 차례에 걸쳐 심사를 유예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다시 심사를 재개하며 기한을 오는 9월 3일로 제시했지만 또 유예 결정이 나왔다.

▲ 출처=현대중공업

코로나 블루, 극복할까

기업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신경전을 벌인다. 그리고 한 번 깊어진 감정의 골은 쉽게 메워지지 않는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지난달 말 LG화학은 산업 기술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과 부정 경쟁 방지 및 영업 비밀에 관한 법률 등을 위반했다며 SK이노베이션을 겨냥해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까지 제출했다. 현대차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주도하는 K-배터리 동맹이 부상하고 있으나 그 이면에는 2017년부터 이어진 배터리 기술 탈취 논란서 시작된 앙금이 남아있다는 뜻이다.

다만 HDC현산 및 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 사례는 다르다. 코로나19로 인한 파급효과로 인수합병이 난항에 빠지면서 서로를 향한 불신의 감정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을 가로막는 EU의 심사 유예 조치도 그 이면에는 한국 조선 역량에 대한 견제심리가 깔렸으나, 표면적으로는 역시 코로나19라는 패러다임이 자리하고 있다.

기업들의 인수합병도 코로나 블루를 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한 때 서로를 강렬히 원했으나, 이제는 갑작스러운 코로나 블루와 직면한 기업들의 향후 행보에 시선이 집중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