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라면가격 담합을 했던 식품업체 중 삼양식품이 담합사실을 인정하며 리니언시 제도(자진신고자 감면 제도)로 과징금 면제 혜택을 받자 대기업들의 ‘리니언시 악용 문제’가 다시 도마위에 올랐다. 오랜기간 담합으로 부당이익을 챙겨도 먼저 자진신고를 하고 나면 모든 징벌제를 감면해주는 리니언시제도의 문제점과 대기업들의 악용사례, 공정위 및 법조계의 근절 움직임을 조망해봤다.

지난 3월,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김동수)가 9년간 라면가격을 담합해온 농심, 삼양식품, 오뚜기, 한국야쿠르트 등 4개 식품업체에 134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식품업체들의 담합 사실을 공표하자 소비자들은 생필품 가격을 담합했던 식품업체들에 큰 배신감을 느꼈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들 라면회사 4곳은 2001년 5~7월 가격 인상부터 2010년 2월 가격 인하 때까지 총 6차례에 걸쳐 각사의 라면제품 가격을 공동으로 인상했다. 공정위는 업체별로 가격 인상의 선도적 역할을 한 농심에게 과징금 1077억6500만원, 삼양 116억1400만 원, 오뚜기 97억5900만원, 한국야쿠르트 62억7600만 원의 등 식품업체 사상 최대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그런데 농심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과징금을 부과받은 삼양식품이 공정위에 담합 사실을 자진신고해 116억 원이 넘는 과징금 전액을 면제받으며 논란이 됐다. 바로 담합 사실을 스스로 신고하면 과징금을 면제해 주는 ‘리니언시(leniency)’ 제도를 '활용'한 것인데 9년간 라면업체들이 수조원으로 추정되는 부당이익을 챙겼음에도 대표주자격인 삼양식품이 리니언시제도를 통해 면죄부를 받자 사람들은 ‘삼양식품의 꼼수’라는 비아냥과 함께 리니언시 제도의 개편을 요구하은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대기업들의 담합, 이득은 챙기고 처벌은 면제받고
사실 ‘담합’은 내부고발이 있기 전에는 적발하기가 매우 어렵다. 워낙 교묘하게 진행되기 때문인데 지난해 10월 적발돼 총 3653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된 16개 생명보험사의 이자율 담합의 경우도, 금융당국이 업계 의견을 듣기 위해 소집한 회의에서 담합합의가 이뤄졌다. 별도 회의를 소집하면 의심을 살 수 있으니 정부가 마련한 회의 자리에서 범죄를 공모한 것이다.

이렇듯 담합 자체가 은밀히 이뤄져 적발의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정부는 먼저 신고하면 면죄부를 주는 '리니언시제도'를 1997년 국내에 도입, 2005년부터 활성화시켰다. 2005년부터 1순위로 자진 신고한 기업에는 과징금을 전액 감면해 주고, 2순위로 신고한 기업은 50% 감면해주는 내용으로 법이 개정되며 과징금 감면 비율이 확실해지자 자진 신고가 급증했다. 2004년까지는 10%도 채 안되던 자진신고율이 2005년 28%, 2010년에는 68%로 훌쩍 뛰었다.

그러다 보니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시장 선도기업이 담합을 주도해 부당이익을 얻고 난 뒤 자진신고로 제재를 피하는 방식, 소위 '먹튀형' 담합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다.
실제 지난해 12월, 브라운관 유리가격을 담합한 ㈜삼성코닝정밀소재 등 한국과 일본 4개 제조업체가 공정위에 적발됐다. 이들 업체는 1999년부터 2007년까지 최소 35회 이상 담합회의를 열어 가격설정과 거래 상대방 제한, 생산량 감축 등을 합의하고 실행한 혐의를 받았지만, 주도적 역할을 한 ㈜삼성코닝정밀소재는 담합사실을 자진신고해 과징금 324억원을 전액 면제받았다.

지난 3월 삼성전자와 LG전자 역시 평면TV와 노트북, 세탁기 등 백색가전 제품의 가격과 공급량을 담합해 공정위에 적발돼 각각 과징금 258억여원과 188억여원을 부과받았지만 적발 직전 담합사실을 신고한 LG전자는 과징금을 전액 면제받았고, 삼성전자도 뒤이어 자진신고해 과징금을 절반으로 감면받았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지난 3월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이정희 의원, 박선숙 의원과 공동으로 ‘담합 근절을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있다.


소비자 피해 많아도 기업소송 현실적으로 힘들어
‘리니언시 제도’ 악용은 고스란히 국민들의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지난 2006년부터 2010년 7월까지 공정위가 심의, 의결한 담합사건들을 분석한 결과, 담합에 관련된 매출액은 총 50조280억원이었고 추정된 소비자 피해액도 7조5042억원에 달했지만 이들 기업들에 부과된 과징금은 1조230억원에 불과했다. 담합 관련 시장규모가 클수록 소비자 피해액이 그만큼 증가하는 구조인 셈이다.

그러나 담합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대다수 소비자들은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는 엄두도 못 내는 형편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오욱환, 이하 서울변회) 인권이사인 오영중 변호사는 “담합 피해자회복소송은 LPG담합, 유가담합, 밀가루, 교복, 생명보험사 이자율 담합관련 피해소송 등 10건 미만으로 그 동안 담합사건에 비해 미미한 수준에 머문다”고 말했다.

실질적인 행정소송에 들어가도 “소비자들의 1인당 청구금액이 5만~6만원 정도로 적고 구체적인 손해 입증의 어려움 등으로 소송 제기를 포기한 사례”도 있다며 현실적인 소송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담합 과징금액도 2001년 277억원이었던 것이 2005년 2493억원, 2011년 5710억원으로 최근 2년간 과징금이 5000억 원대로 훌쩍 뛰었음을 지적하며 “과징금의 사용처에 대해 소비자들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야 함”을 지적했다.

현재 과징금은 국고로 귀속돼 일반 재원으로 쓰이고 있지만 담합으로 인한 피해가 소비자에게 고스란히 돌아갔으니 가격 할인이라든지 담합 상승분 환원 같은 직접적인 혜택은 소비자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습 리니언시 이용 관행 제동장치 마련해야
최근 담합으로 인해 여론이 악화되자 공정위 역시 담합 규제를 강화하고 나섰다. 먼저 리니언시 혜택을 받은 기업은 향후 5년간 재혜택을 받을 수 없도록 규정을 개정해 지난 1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또한 두 업체가 담합을 한 경우에는 먼저 자진신고한 1순위 사업자에게만 과징금을 감면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법조인들 역시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지난 1월 서울지방변호사회는 기업담합 척결성명을 내고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생명보험사들의 이자율 담합 피해자 30명을 대리해 공익소송을 진행 중에 있다.

기업들 역시 작은 변화가 일고 있다. 삼성은 지난 2월29일 담합 근절을 선언하고 담합 연루 임직원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횡령. 뇌물 등 부정행위와 동일한 차원에서 해고 등 엄정 징계할 것을 선언했다. 이는 최근 1년 사이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한 36건의 담합사건 중 삼성관련 사건이 8건으로 22.2%에 달할 정도로 위험수위를 넘어섰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LG역시 지난 2월3일 구본무 회장이 신임 임원 교육에서 직접 담합행위 근절을 선언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삼성과 LG의 담합근절 선언은 다른 대기업들에도 큰 영향을 미쳐 담합 근절 분위기 조성에 도움을 줄 것”으로 전망했다.

미니인터뷰 | 오영중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이사
대기업 담합건수 무려 60%달해… ‘시장점유율 연동 감면제도’제안

리니언시 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대기업 주도의 담합 행위가 줄지 않고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년간 공정위가 발표한 33건의 담합건수 가운데 대기업 관련건수가 20건으로 60%에 이르렀다. 대기업들이 참여한 매출액도 90%를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이들은 자신들의 정보력을 활용해 신속하게 자진신고를 해 과징금을 비롯한 행정제재뿐 아니라 형사고발까지 면제받고 있다. 공정위의 행정제재 후 가격환원명령 등 사후관리시스템 부재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담합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를 무엇이라 보는가?
국내 시장특성상 대기업 중심의 독과점 시장이다 보니 당연히 업계 선도기업들이 이득을 보는 구조다. 또 담합으로 얻는 이익이 처벌로 입는 손해보다 훨씬 크다. 예를 들어 지난해 10월, 16개 생명보험사들이 개인보험상품의 이율을 낮게 책정해 17조원에 이르는 부당이익을 보았지만 삼성생명은 1578억원, 교보생명은 1342억원, 대한생명은 486억원 등 전체의 93%에 이르는 과징금 중 각각 100%, 50%, 30%씩 면제혜택을 받았다.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음에도 담합에 대한 행정소송이 힘든 이유는 무엇인가? 담합 건수가 늘어나고 있음에도 관련 소송은 10건 미만으로 미미하다. 이유는 대부분의 담합사건 소비자별 피해 액수가 매우 적기 때문이다. 일례로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지난해 16개 생명보험사들을 대상으로 시민단체와 모 법무법인과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진행했지만 서울변회를 제외하고 모두 소송 제기를 중도포기했다. 손해액이 1인당 5만~6만원 선으로 너무 적고 수많은 소비자들의 손해액을 입증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인에게는 5만~6만원인 피해액이 100만명, 1000만명으로 계산하면 기업의 이익은 수조원의 거액이 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리니언시 제도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현 제도가 어떻게 수정돼야 한다고 보는가?
현재 시행중인 증권관련 집단소송법과 유사한 형식으로 일명 ‘담합피해 소비자 집단소송법’ 제정이 필요하다. 담합피해 소비자들이 보다 쉽게 집단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소송 비용도 대폭 낮춰야 할 것이다. 또 3배 이상의 징벌적 과태료와 벌금을 납부하는 징벌 손해배상제도를 광범위하게 도입하고 현재 공정위의 전속고발제도를 폐지해 피해 소비자들도 형사고소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점유율이 높은 시장 선도기업이 1순위로 자진신고를 하더라도 100% 감면되지 않도록 ‘시장점유율 연동 감면제도’를 제안한다. 감면비율을 시장 점유율에 반비례하도록 하는 것인데 시장점유율이 높은 기업의 감면 혜택을 줄여 시장선도기업이 담합에 참여하는 것을 방지하자는 취지다.

용어설명
리니언시(leniency) : 담합 신고를 유도하기 위해 담합사건에 연루된 기업이 위법 사실을 자진 신고하면 과징금ㆍ검찰 고발 등을 면제 해주는 제도로 자진신고자 감면제라고도 불린다.

최원영 기자 uni35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