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덕호 기자]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빗장을 걸면서 일반인들의 국가 간 이동이 사실상 차단됐다. 바이러스 전파 우려로 해외여행이 사실상 불가능해졌고,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의 수는 사상 최저 수준으로 급감한 상황. 국제선 운항이 급감하면서 4~5월 한 때 면세점 ‘큰 손’ 중국인 입국자가 ‘0’인 상황을 맞기도 했다.

전례 없는 위기에 중견·대기업 면세점들은 일제히 새 사업 계획수립에 나섰다. 고객 없는 불황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해 운영인력과 임대료 등 고정비를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고정비 부담이 심각한 것으로 알려진 ‘공항 면세점’ 사업권을 반납하거나 입찰을 포기하는 것도 일반화됐다.

▲ 한산한 인천공항 출국장 면세점. 사진=이코노믹리뷰 DB

역대 최악 실적 받아든 면세업계… 2분기 실적도 ‘잿빛’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호텔신라 연결기준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30% 가까이 줄어든 9437억원으로 집계됐다. 영업손실과 당기순손실은 각각 668억원과 736억원을 기록, 전년 동기 대비 적자 전환됐다.

이중 면세사업부인 TR부문 1분기 매출액은 8492억원이었다. 지난해 대비 31% 급감한 수준. 영업손실 또한 490억원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됐다.

신세계의 면세점 계열사 신세계디에프 또한 실적 악화를 피하지 못했다. 매출액(4889억원)은 전년 동기 대비 30.5% 급감했고, 영업이익은 –324억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롯데면세점의 1분기 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37.5% 감소한 8727억원을 기록했고, 영업이익은 42억원에 그쳤다. 지난해 동기 대비 96% 하락한 수준이다.

문제는 이 같은 상황이 올해 내내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19가 본격화된 2월 국내 입국자수가 급격히 감소했고, 이후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지난 2월의 경우 하루 평균 여행객 수가 12만95명으로 집계됐고, 이는 지난해 2월 대비 41.7% 급감한 수준이다.

지난해 5월의 경우 하루 평균 인천공항을 통해 출·입국한 사람은 18만7754명이었다. 반면 올해 5월에는 인천공항 1일 이용객이 4449명에 불과했다. 지난해 대비 98% 급감한 숫자다.

아시아나항공의 국제선 운항률은 당초 편성 계획의 9.5% 수준에 불과하다. 대한항공의 해외편 운항률 역시 20% 수준에 그쳤고, 저비용항공사(LCC) 운항률은 집계조차 되지 않는다. 면세점의 주요고객인 해외여행객들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 한산한 서울 시내 면세점. 사진=이코노믹리뷰 DB

사업 축소하는 면세업계… 중견·대기업 공항에서 발 뺀다

인천공항공사의 움직임이 바쁘다. 오는 8월 공항 면세점에 입점할 새 사업자를 찾아야 하지만 나서는 기업이 없어서다. 높은 임대료 부담, 코로나19여파로 인한 손실이 커지면서 면세점들이 공항 면세 사업권 연장을 포기했고, 일부 구역은 입찰에 나선 기업이 없어 유찰됐다.

업계는 기업들의 공항 입점 포기를 ‘약한 사업 수익 기반’ 때문으로 본다. 특히 전염병이나 외교 문제 등 외부 변수를 반영하지 못하는 현재의 임대료 체계는 10년 가까이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다. 장사가 잘 되면 9% 인상, 잘 안되면 9% 인하하는 연동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방문객 ‘0’이 현실화된 상태에서는 9% 인하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제는 코로나19 이전까지 면세업계가 성장해왔다는 점이다. 그만큼 고정비가 커졌고, 인천공항 매출에 기여하는 비중도 높아졌다. 전체 매출의 66.4%(2018년 기준)를 차지하는 ‘비(非)항공수익’ 중 적지 않은 비중이 면세점 임대료로 채워진 상태다.

그러나 입점 점포들을 위한 공사측 배려는 부족하다는 것이 업계 반응이다. 방문객 수 98% 급감이라는 ‘최악’ 사태에서 공항공사가 꺼낸 첫 지원책(임대료 20% 감면)은 업계 시선을 끌기에 미흡했다. 뒤늦게 임대료 인하 폭을 대기업 50%, 중견기업 70%로 늘렸지만 시행 시점과 논의가 너무 늦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 같은 이유로 업계 불만은 이미 극에 달한 상태다. 그리고 제4기 공항면세점사업자 선정을 앞둔 시점에서 코로나19 이슈가 더해졌다. 중소·중견 면세점인 SM면세점, 그랜드면세점, 시티면세점 등이 공항 면세 사업권을 포기했고, 대기업인 롯데면세점과 신라면세점 역시 해당 사업권을 연장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

현재 인천공항 제4기 면세사업자 입찰에서 주인을 찾지 못한 구역은 DF2, DF3, DF4, DF6, DF9, DF10 등 6곳에 이른다.

묘수 찾는 면세업계… 뾰족한 답 없어 ‘답답’

상황이 악화되면서 면세점 업계는 출구전략 찾기에 나선 상황이다. 다만 재고면세품 할인 판매 외에는 이렇다 할 묘수를 찾지 못했다. 그나마 지난 4월 결정된 ‘6개월 이상 재고 면세품’ 국내 판매에 희망을 걸고 있다.

전자공시에 따르면 롯데면세점은 지난 1분기 1조3130억원의 재고자산을 보유했고, 국내 자회사(롯데디에프리테일, 롯데면세점제주)와 해외 면세자회사를 포함한 총 재고자산은 1조6885억원이다. 호텔신라 역시 1분기 재고 9238억원을 보유하고 있다. 신세계디에프와 현대백화점면세점 역시 적지 않은 물량을 보유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면세업계는 재고면세 처분이 모두 이뤄질 경우 현금 부담이 다소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 바 있다. 실제로도 지난 6월말~7월초 롯데, 신세계, 신라면세점은 6개월 이상 보유한 재고면세품의 판매에 나섰고, 대부분의 물량이 완판 되면서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다만 재고면세품 판매로 면세점 3사가 얻을 수 있는 최대 수익은 약 1800억원 수준으로 전해졌다. 전체 실적을 끌어올리기에는 부족한 수준이다.

고정비 지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공항 상업시설(면세점 포함) 임대료 50~75%의 임대료 감면 결정에 대해서는 아쉬운 목소리가 나온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1분기에만 700억원, 400억원 수준 적자가 나는 현 상황에서 지금 임대료 인하 결정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수준”이라며 “코로나19 유행에 대한 장기 지원책이 없는 것이 아쉽다”라고 전했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DB

[르포] 텅 빈 시내 면세점, 큰 손 ‘따이궁’도 줄어

재고 면세 제품이 국내 소비자에게 판매되고, ‘완판’ 행진을 벌이면서 오랜만에 면세점업계에 화색이 돌고 있다. 지난달 결정된 공항 면세점 임대료 할인이 맞물리며 한 시름 놓은 상태. 다만 ‘본업’인 시내면세점, 공항면세점의 영업 정상화는 아직 요원한 듯 보인다.

지난달 29일 기자가 방문한 시내면세점은 전체적으로 한산한 모습이었다. 중국의 코로나19 확산세가 잦아들고, 한국 또한 안정을 찾은 상태지만 출입국이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면서 점포를 찾는 고객이 크게 줄어든 탓이다.

가장 한가한 곳은 구찌, 버버리 등 고가 명품매장 이었고, 수입브랜드 모자, 의류 매장에는 그나마 고객이 있었다. 시즌상품(선글라스) 매장에서는 한 명의 고객이 100여개는 돼 보이는 썬글라스를 구매했다. 이날 매장에서 본 유일한 대량매입자다.

인접 매장 직원에 따르면 코로나19가 본격화되기 전까지는 어떤 매장이든 정신없이 물품을 포장하는 일이 흔했다. 중국 큰손들의 경우 대량매입이 많아 현지 간편결제 시스템(위챗)을 매장에 도입했지만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단다.

또 다른 매장 직원은 따이궁들의 구입 품목도 달라진 듯 하다고 전했다. 예전에는 한 고객이 물건을 대량으로 구매해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인기 제품들만 콕 집어가는 패턴이 많아졌다고 한다.

따이궁들이 쉬는 장소라며 직원들이 알려준 장소 역시 한산했다. 1~2명의 따이궁이 휴대폰을 조작하고 앉았을 뿐이고, 주변에는 구매한 물건이 보이지 않았다.

한편 면세점 업계는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따이궁들의 이탈까지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를 보이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국내 면세점 매출의 70% 정도를 차지했을 정도로 없어서는 안 될 고객으로 여겨지고 있다.

문제는 입국이 어려워지면서 이들의 발걸음이 중국 하이난 섬으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면세업을 육성하려는 중국 정부의 의지와 코로나19라는 이슈가 맞물리며 이들의 움직임이 변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면세점들이 영업시간 단축, 매장 휴점을 결정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라며 “현 시점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고, 바이러스 확산 우려가 있어 따이궁들을 위한 혜택에는 신경쓰지 못하고 있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