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유럽은 항공기 제조업체에 대한 보조금 문제로 WTO에 맞제소하면서 오랫동안 대립해 왔다.     출처= Supply Professional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미국과 유럽연합(EU)간 무역전쟁 전운이 다시 감돌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이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이 지난 주 디지털세 협상 결렬을 선언한데 이어 이번에는 에어버스 보조금과 관련해 추가 관세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미·EU, 에어버스·보잉 보조금으로 맞제소

미국과 유럽은 항공기 제조업체에 대한 보조금 문제로 WTO에 맞제소하면서 오랫동안 대립해 왔다. 선공은 미국 몫이었다. 미국은 프랑스, 독일, 스페인, 영국 등 4개국의 에어버스에 대한 보조금 지급으로 자국이 피해를 입고 있다며 2004년 세계무역기구(WTO)에 EU를 제소했고 WTO는 지난해 10월 미국의 손을 들어주었다.

WTO는 유럽 국가들의 보조금 지금이 인정된다며 미국이 연 75억 달러 규모 EU 상품에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EU산 농산물에 25%, 항공기에 10% 관세를 부과할 것을 결정했다. 항공기에 대한 관세율은 이후 10%에서 15%로 올렸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23일(현지시간) 관세 부과 대상 규모를 75억 달러에서 더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미 관세를 부과한 모든 상품에 대해 최대 100%까지 인상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맥주, 커피, 올리브 등 추가 부과 대상 30개 품목을 제시했다.

독일 맥주에서부터 올리브, 케이크, 진, 보드카, 프랑스 명품업체가 만드는 캐시미어 스웨터, 영국산 몰트 위스키, 비알코올성 맥주 등 31억 달러어치 품목이 포함됐다.

유럽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EU 집행위원회는 “미국의 방침은 기업 불확실성을 높이고, 대서양 양안에 불필요한 경제적 손상을 야기한다"면서 새로 관세를 부과할 제품의 공급망에도 차질을 빚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디지털세 더 부추길 수도

그러나 USTR은 보복관세 실행을 차근차근 준비해가고 있다. 미국은 7월 26일까지 의견을 수렴하고 의견 수렴이 끝나면 언제든 30개 품목에 대해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미국이 실제 보복관세를 부과할 지 아니면 EU와 무역협상을 유리하게 끌고가는 카드로만 활용할지는 알 수 없지만 이날 미국의 추가 보복관세 검토 발표로 미국과 EU의 무역 긴장은 더 높아지게 됐다.

외신들은 최근 상황이 코로나로 타격을 받은 지구촌 경제에 또 다른 커다란 위협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뉴욕증시의 급락과 달러화 강세는 코로나19 확진자 증가에 대한 우려와 함께 미국과 유럽의 긴장 고조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지난주에는 전세계적인 단일 기준을 만들기 위한 디지털세 협상도 좌초됐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 미 정보기술(IT) 대기업들을 겨냥한 디지털세 도입에 반대했던 미국이 코로나19에 집중해야 한다며 사실상 협상종료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디지털세 협상 결렬로 EU를 비롯해 디지털세를 시행하는 나라들이 있다면 이들에게도 보복관세를 물리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실제로 USTR은 중국과 무역전쟁에 동원한 슈퍼301조를 근거로 이달초 디지털세를 적용하는 국가들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미국의 이번 추가 관세 추진은 양측의 디지털세를 더욱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동맹 압박, 대선에 도움될까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미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마이너스 8.0%로 제시한 가운데 추가 관세는 물가 상승과 소비 위축 등으로 미국 경제에 더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미국의 EU 무역수지 적자는 최근 수 년간 확대됐다. 지난 2016년 1460억달러로였던 대(對) EU 무역수지 적자 규모는 지난해 1780억달러로 불어났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 대표는 지난주 의회 청문회에서 “유럽과의 협상이 단기적으로는 좋아 보이지 않는다"면서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기업을 위해 공정한 악수를 해야 한다면 관세를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유럽 등 교역상대국들에 대한 미국의 전방위적인 무역 압박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전략으로 활용하고 있어 최소한 11월 미 대통령 선거까지는 계속 강화될 전망이다.

그러나 많은 의원들이 전략적·경제적 경쟁자로 비치는 중국과 맞서기 위해 관세 사용을 지지한 것과는 달리, 유럽연합(EU)과의 유사한 대립은 결코 같은 정치적 지지를 보내지 않고 있다.

한편 EU 역시 미국의 보잉이 불법 보조금을 받고 있다며 WTO에 제소한 상태이다. WTO가 불법 보조금 판정을 내릴 것이 거의 확실하지만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아 EU를 애태우고 있다. WTO는 당초 6월 안에 결론을 낼 전망이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판정이 늦어지고 있어 오는 9월 이후에나 판결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