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턴 보좌관의 터무니없는 폭로

존 볼턴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보좌관의 회고록과 관련된 뉴스가 연일 화제다. 2018년 4월부터 2019년 9월까지, 트럼프 대통령을 도와 미국의 대외정책 결정에 관여했던 볼턴 보좌관이 트럼프 대통령의 대외정책의 실상을 낱낱이 비판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은 ‘미국은 확실히 민주주의 국가라 다르다’라고 말하기도 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허점이 많은 지도자’라고 볼턴 보좌관의 주장을 수용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 일리 있어 뵈는 말이지만, 정말 그게 사실일까?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볼턴 보좌관의 비판은 사실 여부를 떠나서 개진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볼턴 보좌관의 주장 전체를 사실이라고 인정한다면, 더더욱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다. 미국 행정부의 기밀취급자가 기밀을 일방적으로 공개할 수 있겠는가?

업무상 취득한 국가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공무원의 원칙이다. 더구나 볼턴 보좌관이 언급한 북한 문제는 동아시아 질서를 바꿀 수 있는 혁명적 사건이다. 볼턴 보좌관이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문제를 제 맘대로 폭로할 수 있겠는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대통령 보좌관이 자신을 파면한 대통령이 얄미워서 앙갚음하려고 대통령의 대외 정책을 비판한다는 발상은 어떤 나라에서도 불가능한 일이다. 동아시아 질서를 바꾸려는 미국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특히 더 그러하다.

 

뒤늦은 백악관의 회고록 수정, 삭제 요구

더 재미있는 것은 미국 백악관의 대응 방식. 백악관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대응 방식을 취했다. 지난 6월 22일, 백악관은 570쪽에 이르는 볼턴 보좌관의 책 내용에서 414곳을 수정하거나, 삭제해야 한다는 17쪽짜리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 의견서는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가 볼턴 회고록을 사전에 받아 검토하고 만든 목록이라고 알려졌다. 그러니까 볼턴 보좌관은 회고록을 발표하기 전에 미리 백악관에 원고를 제출했고, 백악관은 회고록 내용을 전체적으로 검열했다는 뜻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볼턴 보좌관의 회고록 내용이 아니라, 백악관의 반응이다. 사전 검열을 받겠다고 원고를 미리 백악관에 제출한 볼턴 보좌관은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문제 될 부분이 있으면, 수정하거나, 삭제하겠다는 의사를 사전에 표명한 것이다.

볼턴 보좌관의 회고록에 대해서, 백악관이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백악관이 수정하거나, 삭제할 부분을 지적하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수정하거나, 삭제하라고 지적했는데, 볼턴 보좌관이 백악관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일까?

뒤늦게 414곳을 수정하거나, 삭제해야 한다는 17쪽짜리 의견서를 제출할 법원에 제출할 정도의 심각성 발견되었다면, 백악관은 볼턴 보좌관의 회고록 점검을 소홀히 한 것이다. 국익과 관련된 내용이므로, 백악관은 회고록 출간을 미연에 막을 수 있었다.

 

회고록을 둘러싼 볼턴 보좌관의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매파로 알려진 볼턴 보좌관. 이력을 놓고 보면, 회고록 출간과 관련된 백악관과 볼턴 보좌관의 법률 행위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하여튼 볼턴 보좌관의 작금의 행태는 예일대와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 출신답지 않다.

볼턴 보좌관은 미국 정통 관료 출신이다. 1948년생으로 올해 71세인 볼턴 보좌관은 1985년부터 1989년까지 레이건 행정부에서 법무부 차관을 역임했고, 1989년부터 1993년까지 아버지 부시 행정부에서는 미국 국무부 국제안보담당 차관을 역임했다.

이후 클린턴 행정부가 들어서자, 1993년부터는 러너 리드 볼튼 & 맥너스 로펌 경영자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아들 부시 1기 행정부에 다시 발탁되어서, 2001년 5월부터 2005년 5월까지 만 4년간 미국 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담당 차관으로 봉직했다.

볼턴 보좌관은 부시 2기 행정부에서 2005년 8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주유엔 미국대표부 대사를 역임했다. 그후 공직에서 물러나 변호사 활동을 하다, 2018년 4월부터 2019년 9월까지 트럼프 행정부에서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 보좌관으로 재임했다.

인생 대부분을 공직자로 살아온 볼턴 보좌관. 레이건 행정부에서 8년, 아버지 부시 행정부에서 4년, 아들 부시 행정부에서 6년, 트럼프 행정부에서 2년을 공무원으로 살아온 볼턴 보좌관은 공화당 주축 세력. 그런 볼턴 보좌관의 도발을 어떻게 해석할까?

 

볼턴 보좌관의 회고록 논란의 본질

미국 법무부는 볼턴 보좌관의 회고록 출간을 막기 위해서, 미연방 법원에 출판 금지 민사소송과 금지 명령을 신청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미 20만 부가 전 세계에 퍼졌고 주요 내용이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대부분 공개되었다는 이유를 이것을 기각했다.

미국 백악관이 볼턴 보좌관 회고록에 대해 수정과 삭제를 요구한 것은 414곳, 특별히 북미정상회담 등 한반도 사안을 다룬 두 개의 장에서만 무려 110개가 넘는 수정, 삭제 의견이 제기됐다. 그러나 법원이 기각했으므로, 수정과 삭제는 어렵게 되었다.

볼턴 보좌관은 오히려 미국 법무부의 소송으로 인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11월 3일 치를 차기 미국 대통령 선거일까지 겨우 4달 남은 시점에, 볼턴 보좌관은 자신을 발탁한 트럼프 대통령을 낙석시키려 바이든 후보 선거운동을 하는 것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볼턴 보좌관은 지난 30년간 미국 공화당 주류로 미국의 대외 정책을 주도해온 지도적 인물이다. 레이건 행정부와 아버지 부시 행정부에서 독일통일, 동구권과 소련 붕괴를 목도하면서, 이념전쟁은 이미 끝났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다.

그렇다면 볼턴 보좌관은 왜 미묘한 시점에 회고록으로 세계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일까? 다른 것은 몰라도, 한 가지는 알 수 있다. 볼턴 보좌관의 폭로로 인해,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 비핵화 원칙과 문재인 대통령의 개혁개방 의지가 분명하단 사실이다.

6.25 한국전쟁 종전 이후 지난 67년 동안, 북한 문제를 이렇게 심각하게 취급한 미국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 외에 아무도 없었다. 또 역대 어떤 한국 대통령도 문재인 대통령만큼 강력하게 북한 편을 들어주면서 미국 대통령을 설득한 대통령도 없었다. 미국은 볼턴 보좌관을 통해 지금 타이밍에 관해 말한다. 타이밍을 놓치면, 미국은 대화가 아닌 방식으로 북한 비핵화를 추진할 것이라고 암시한다. 북한에 대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