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올해 1분기 상장사 총차입금(운영과 투자를 위해 기업이 조달한(빌린) 자금)이 지난해 말 대비 20조원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기업들의 영업현금흐름이 마이너스로 전환됨에 따라 각 기업들이 차입금 확대, 자산 매각 등으로 유동성 위기를 견뎠기 때문이다. 이를 근거로 한국경제연구원(이하 한경연)은 코로나19의 여파가 본격적으로 반영되는 2분기 이후 각 기업들의 상황이 더 악화될 것으로 전망하며 정부 차원의 정책 지원을 요구했다. 
 

▲ 출처= 한국경제연구원

한국경제연구원은 올해 1분기 코스피 상장 623개사의 별도 재무제표를 분석한 결과를 22일 발표했다. 분석에 따르면 코스피 상장 623개사의 총 차입금은 올해 1분기 386조7000억원으로 작년 말에 비해 20조원 늘었다. 지난해 1분기당 평균 차입금이 약 5조원 가량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현재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조사 기간 내 각 기업의 차입금 의존도는 21.6%에서 22.5%로 올랐다. 상장사 차입금 구성은 회사채(39.9%, 2020년 1분기), 은행 등 차입(33.5%) 순이지만 올해 1분기 차입금 증가 중 은행 등에서의 차입금은 14.9조원 늘어 회사채를 통한 자금조달(5조3000억원)을 상회했다. 한경연은 “올해 2∼4월 회사채 시장 냉각으로 기업들이 은행대출 중심으로 자금을 조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업현금흐름 '마이너스', 자산 매각·차입금 확대로 버텨

한경연 연구에 따르면 코로나19 피해를 크게 본 항공, 대형유통, 관광·레저, 조선, 섬유의복 5개 업종은 올해 1분기 차입금의존도가 모두 상승했다. 특히 항공업(+5.3%p)에서 가장많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업종들은 영업현금흐름이 나빠지면서 차입금 확대, 자산 매각 등으로 현금을 확보해 위기를 어렵게 견딘 것으로 분석됐다. 

현금흐름표 상 영업현금흐름은 모든 업종에서 나빠졌는데, 항공, 대형유통, 관광·레저, 조선 4개 업종은 순현금흐름이 작년 1분기 유입에서 올해 1분기 유출로 악화됐다. 이는 영업활동으로 현금을 번 것보다 나간 게 더 많았다는 것의 의미한다. 영업현금이 올해 플러스인 업종은 섬유의복 뿐으로 규모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0분의 1에 그쳤다.

▲ 출처= 한국경제연구원

재무현금흐름은 항공, 관광레저, 조선 업종이 차입금 확대 등으로 올해 1분기 자금조달이 늘었다. 그 결과 해당 업종의 차입금 의존도는 급격하게 올랐다. 지난해 4분기 대비 올해 1분기 차입금 의존도는 항공 5.3%p(58.5%→63.8%), 조선 2.3%p(17.7%→20.0%), 관광레저 1.4%p(19.5%→20.9%), 대형유통 1.1%p(31.4%→32.5%), 섬유의복 0.8%p(19.1%→19.9%) 순으로 늘었다.  

투자가 활발할수록 마이너스 폭이 커지는 투자현금흐름은 올해 1분기 모든 업종에서 전년 동기 대비 마이너스 폭이 축소(투자규모 축소)되거나 플러스로 전환(투자자산 매각)됐다. 특히 투자활동 중 ‘지분, 금융상품 및 기타자산 투자’ 관련 현금흐름이 대형유통을 뺀 4개 업종에서 플러스였다. 이는 기업들이 영업활동에서 빠져나간 현금을 금융상품·지분 등 자산 매각으로 충당한 것이라 한경연은 분석했다.  

삼성전자 제외 시 현금흐름, 영업현금유입 줄고 투자지출 위축

한경연 연구에 따르면 국내 코스피 상장사(623개사)의 영업현금유입은 올해 1분기 20.1%(4.5조원) 증가하고 투자현금지출은 24.6%(5.1조원) 늘었다. 수치상의 증가폭이 나타난 것은 긍정적이지만 그러나 국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의미가 조금 달라진다.  

같은 연구에서 삼성전자를 제외한 상장사(622개)의 지난해 1분기 대비 올해 1분기 영업활동 현금유입는 13% (2.5조원) 줄고 투자활동 현금지출이 26.4%(5.2조원) 감소해 투자가 위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차입, 증자 등 재무활동을 통한 자금조달은 두 경우 모두 늘었다. 

한경연은 기업들이 “코로나19로 경제 불확실성이 커짐에 따라 현금 유동성 확보를 위해 투자지출을 줄이고 자금조달을 늘렸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올해 1분기 총자산 대비 현금비율은 영업현금흐름 축소에도 오히려 상승했다.

이번 연구의 분석결과에 대해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코로나19, 저유가 등 예상치 못한 경제충격으로 기업들의 현금흐름이 전반적으로 약해지고 차입금의존도가 늘었다”라면서 “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항공, 유통, 관광·레저, 조선 등은 영업현금흐름이 마이너스로 전환되어 자산 매각, 차입금 확대 등으로 위기를 어렵게 견디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덧붙여 추 실장은 “코로나 충격이 3월부터 본격화됐기 때문에 2분기 지표는 더 나쁠 것”이라며 “정부가 발표한 일련의 금융시장 안정화 대책에 힘입어 자금시장의 경색은 최근 다소 진정되었지만, 어려운 기업들은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이 많다”라면서 “이번 위기가 종식될 때까지 자금공급이 막힌 곳은 없는지 정부의 면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